기도라는 대화
기도라는 대화
라이프 성경 사전에 따르면 기도는 ‘마음으로 바라는 바가 이루어지기를 하나님께 비는 일이나 그 의식, 성도와 하나님과의 교제 혹은 대화.’ 라고 한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며 바라는 것이 하나씩은 꼭 있다. 이 땅에서의 생은 유한하고 세상일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며 두렵기 때문이다. 사람은 항상 부족하고 아쉬운 점이 많다. 많은 경우
“이렇게 저렇게 해주세요.”라는 요청과 같은 기도를 드린다. 그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거나 부정적인 응답을 받거나 자신이 바라는 방식대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좌절하거나 고통스럽고 하나님께 불평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모든 기도가 다 이루어지는 세상을 상상해보면 굉장히 혼란스러운 세상일 것 같다.
라이프 성경 사전에 나온 것처럼 기도는 성도와 하나님과의 교제, 그리고 대화이다. 대화를 하면서 어떤 사람은 듣기만 하고, 어떤 사람은 말하기만 한다면 그것은 올바른 대화라 하기 어렵다. 어린아이가 부모님께 하는 요청이 거절당하면 때로는 들어줄 때까지 울고불고 떼쓰고 조른다. 부모님은 못 이기는 척 무언가를 들어줄 때도 있겠지만 그것은 자식을 사랑해서이지 마음에 들어서가 아닐 것이다. 성경은 말씀하신다. “여호와께서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찌라도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시106:15).
떼를 쓰는 것 자체가 떼를 쓸 상대방이 있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요청을 들어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기도할 수 있는 복이 있다. 떼를 쓰는듯한 일방적인 요청도 침묵으로 들어주시는 하나님이시지만 범사에 기도하여 주님을 바라보고 함께한다면 우리가 변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하나님께서도 더 기뻐하지 않으실까. 자식도 원하는 게 있을 때만 부모님께 요청하는 자식보다 평소에 부모님과 대화를 하는 자식이 이쁘듯이 말이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7).
김성일 집사
말의 힘
같이 공부하는 동료 부부가 가까운 동네에 살고 있다. 새 학기부터 시작한 강의 일정이 그들과 같아서 월요일과 수요일에는 함께 공부하고 함께 퇴근한다.
학기가 시작되기 전, 나는 다소 불안정한 상태에서 처음 시작하는 대학 강의를 앞두고 이런저런 걱정에 짓눌려 있었다. 그리고 연중행사로 중요한 연구계획서를 작성하는 중이었다. 전력투구해도 모자랄 판에 불안한 마음으로 지내니 강의 준비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연구계획서도 산으로 가는 중이었다.
그런 나를 다시 평온한 상태로 회복시킨 것은 다름 아닌 동료 부부였다. 그 부부는 대화 중에 말이 끝날 때마다,
“훌륭하십니다.”, “대단하네.”, “정말 멋지십니다.”, “언니는 잘할 거라 믿어요.” 등등의 말을 습관처럼 내뱉는다. 그들은 한 번의 대화 속에서 최소 12번 이상의 칭찬을 쏟아낸다. 너무 많은 칭찬을 들어서 어질어질할 정도다.
처음에는 너무 반복되는 긍정의 말들을 흘려들었다. 입에 발린 소리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혼자서 문득 그들과의 대화를 되새기게 되는데, ‘내가 훌륭하구나.’, ‘내가 한 일이 그렇게 대단한 거였구나.’, ‘나는 잘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렇게 그들과 함께 공부하며 어울린 지 세 달째에 접어들었다. 요즘의 나는 불안장애약을 세 번에서 두 번으로 줄였고, 안정적으로 강의 준비를 하고 있으며, 연구계획서도 무사히 제출하였다. 그리고 밤마다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고, 하나님 은혜로 내 인생 평안하다고, 천국이 바로 이곳이라 말하며 퇴근하는 남편을 꼭 안아주고 있다.
지난 3개월간 그들과 지내면서 “혹은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잠12:18)는 말씀처럼, 양약과 같은 그들의 말에 내가 치유되었다. 또 하나님은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엡4:29)고 하셨는데, 나는 선한 말을 하는 동료 부부에게 동화되어 나 역시 남편에게 선한 말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말의 힘은 정말 놀랍다. 매일 선한 말과 살리는 말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기를 희망해본다.
전훈지 집사
happy_holl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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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는 스승을 닮는다
목회성장학 강의 시간에 2003년 싱가포르에서 진행하셨던 목회자 세미나 영상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깨달았습니다.
영상 초반부터 목사님께서는 세미나에 참석한 목회자들을 향해 호되게 호통을 치십니다. 여러분 모두가 들어서 잘 알고 계시는, ‘사람의 자녀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 이라 말씀하시고 세미나에 참석한 목사님을 향해 질문하셨는데, 그분이 사람의 자녀가 사람이라는 질문에는 시원하게 대답해놓고, ‘하나님의 자녀는?’ 하고 물었을 때 대답을 자신 없이 했기 때문입니다. 주변에 있는 목회자들이 그분을 보고 웃자, 이에 총회장 목사님께서 ‘왜 웃어요!’ 하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다들 머릿속에 그 모습이 그려지시지 않습니까? 목사님께서는, ‘왜 마귀에게 속고 있음을 모르는가, 예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우리도 그 권세를 회복하고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여 능치 못할 일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러고 나서 목사님의 18번 설교 중 하나인 마이크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마이크를 팔 때 사는 사람의 외모나 어떤 조건을 보고 파는 것이 아니라 돈만 보고 파는 것이다. 그리고 돈을 주고 마이크를 산 사람은 그 마이크를 사용할 수 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외모를 보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만 보신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믿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행동으로 나타내면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영상을 보며 하나님께서 40년 가까이 우리 목사님을 사용하시는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기도의 부족은 모든 것의 부족이다.’라고 말씀하시며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또한 2003년에 하셨던 말씀을 2023년이 된 지금도 여전히 전하고 계십니다. 그런 한결같은 모습이 있기에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 목사님을 사용하신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고, 또 한 가지 깨달은 것은 총회장 목사님이 담대하실 수 있는 이유였습니다. 총회장 목사님께서는 당신이 전하시는 하나님의 복음에 엄청난 확신과 자신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영상에 총회장 목사님께서는, ‘제자는 스승이 하는 것을 가감하지 말고 그대로 따라 하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께서 하신 것처럼 ‘모든 일에 기도로 준비하고, 사람의 자녀가 아닌 하나님의 자녀이니 그 권세를 사용할 수 있는 주의 종이 되자!’ 다짐해봅니다.
지금은 너무나도 부족한 저이지만, 그런 저이기에 목사님의 말씀대로 하나씩 행동과 생각을 바꿔 현실에 만족하지 않고 저를 더욱 레벨업 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올해 남들이 비웃을 만한 목표를 세워보자’고 해서 세운 목표가 두 가지 있는데, 그 두 가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첫걸음을 뗐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그 목표가 무엇인지 말할 수는 없지만, 목표가 이루어지는 날 당당히 선포하고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총회장 목사님을 통해 제게 감동을 주셨고 그 감동을 따라 목표를 세우고 목표를 위해 뛰었더니, 지금의 제가 그 목표를 이루고 이 자리에 있노라.’하고 말입니다.
윤에녹 생도
v-777@naver.com
그릿(GRIT)
나는 책을 통해 ‘그릿(Grit)’이라는 단어를 처음 접한 후 이 단어를 좋아하게 됐다. 누군가에게 그릿이 있다고 말할 때 그것은 열정적 끈기가 있다는 의미고, 불굴의 의지가 있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이 단어에는 무언가 생동감이 느껴진다.
2004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심리학자인 앤젤라 더크워스(Angela Duckworth)는 정해진 목표를 이루게 해주는 품성을 연구하기 위해 미국 육군사관학교 생도들과 시카고 공립학교 학생들, 특수부대원들까지 연구대상자를 방대하게 설정했다. 어떤 생도가 끝까지 훈련받고 누가 중도에 탈락하는지, 문제아들만 있는 학교에 배정된 초임 교사 중 누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아이들을 가르치고 성과를 끌어내는지 연구했다. 그 결과, 남다른 성공을 달성한 사람들의 비결은 재능이 아니었다. ‘그릿’이라고 부르는 열정과 끈기의 조합에 있음을 발견했다. 다시 말해, 인맥, 뛰어난 토익/토플 점수, 리더십 경험, 운동 실력, 타고난 재능 등 그 어떤 것도 아닌 중요한 것은 ‘그릿’이었다.
‘그릿’은 재능이나 교육, 능력, 기회와 다르다. 인맥, 실력, 경험 등 그 모든 것이 바닥이 난 뒤에도 끝까지 남아있는 요소다. 교육은 돈으로 살 수 있다. 부모를 잘 만나면 특정한 재능에서 남보다 앞설 수 있고, 스승을 잘 만나면 부족한 능력도 기를 수 있다. 하지만 ‘그릿’은 지식이 바닥나고 기술적 한계에 부딪히고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에서도 목표를 향해 꿋꿋하게 전진하게 해주는 품성이다. ‘그릿’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품성이고, 열정과 끈기의 결합이다. 이 결합이 원하는 삶을 향해 우리를 밀어주는 추진력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주변의 그리스도인을 생각하면 이런 단어가 떠오르는가? 아니 자기 삶을 돌아볼 때 이런 단어가 떠오르는지 말이다. 우리에게 ‘그릿’과 같은 품성이 있다면 우리 삶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 삶이 만족스럽지도, 풍성하지도 않다면, 그것은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릿’, 열정과 끈기가 없어서일지 모른다. ‘그릿’이야말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필자를 비롯해 많은 그리스도인이 삶 가운데 범하는 오류 중 하나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열정과 끈기를 잊어버린다는 것이다. 한 번은 필자의 지도 학생이 자기 성적과 취업 등을 상담하며, “내 삶의 상황 회복과 성적 향상, 그리고 취업을 위해 수많은 밤을 눈물로 기도하며 기다렸는데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약 2년의 세월 동안 학생을 지켜봐온 필자는 ‘기다리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만약 이 학생이 하나님의 회복을 바라는 자기 삶의 변화를 위해 목표를 설정하고 작은 행동 하나라도 했다면 뭐라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그런 행동이 쌓이고 쌓였다면 좋지 않은 성적,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 하나 없이 나를 찾아올 일은 없었을 것이다. 기도하면서 좋은 기관에 취업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은 좋았다. 하지만 이 학생에게는 ‘그릿’이 없었다. 말한 대로 된다는 생각으로 말로만 뿌렸고, 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킨다는 말에 의지만 했을 뿐,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향해 꾸준히 나아갈 끈기가 없어 결국 현실에 불평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만 했다.
사실 “나는 좀 달라!”라고 말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필자 역시 전혀 그렇지 못하다. 말은 항상 남에게 나눠주고 베푸는 사람이고 ‘싶다.’ 예수님처럼 온유하고 사랑이 많은 사람으로 살고 ‘싶다.’ 내 분야에서 엄청난 능력이 있는 전문가로 인정받고 ‘싶다’. 하지만 솔직히 필자도 원하는 결과가 저절로 이루어지길 바랄 때가 많다. 생각과 의도는 좋지만, 좋은 의도만으로는 우리가 약속받은 삶을 얻을 수 없다. 좋은 의도로 자동차 운전대를 잡아도 시동을 켜고 액셀을 밟지 않으면 어디도 갈 수 없다. ‘그릿’이란 한 번에 한 걸음씩 목표를 향해 열정과 끈기를 가지고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는 ‘그릿’으로 하나님의 약속의 삶을 향해 나아갈 때 비로소 변화가 찾아온다는 것을 잊지 말고, 2023년 새롭게 세운 목표가 있다면 그 의도를 결단하고 열정적 끈기로 발전시켜 나가자.
Dr. 권정미
jmgood77@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