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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하는 자를 이길자는 없다

1190호 · 2023-02-26
깊은 곳에서의 울림

노력하는 자를 이길자는 없다

‘Nothing is impossible in Jesus!’(예수 안에 불가능은 없다!)라는 주제로 4월 1일 토요일 3시, KBS스포츠월드 아레나홀에서 열리는 월드프레이즈(World Praise)의 제3차 찬양부흥회가 약 한 달여를 앞두고 있습니다.

작년 7월 말, 3년 만에 열린 수련회가 기점이 되어 시작된 월드프레이즈의 9월 24일 대구 집회와 11월 5일 인천 집회를 되돌아보니 모든 것이 에벤에셀 하나님의 은혜였고, ‘기도는 부도나지 않는다’라고 외치시며 39년간 본이 되신 총회장 목사님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또한 ‘필사즉생(必死則生)’,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산다는 정신으로 수많은 난관을 뚫고 온 이월드 목사님을 필두로 찬양으로 복음 전하길 원하는 열정적인 팀원들, 기도와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전국의 목회자분들과 성도님들의 한마음 한뜻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이 모든 것이 가능하였습니다.

교회로 모이지 않는 것에 익숙해져 가는 젊은이들로 인한 안타까움에 작년 1월 초, 3일간 금식하며 부르짖었던 이월드 목사님에게 주님은 전국 각지의 찬양을 사모하고 재능있는 청년들을 모아 첫사랑의 회복과 교회의 부흥을 위해 헌신하는 ‘월드프레이즈’ 찬양팀을 결성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월드프레이즈는 우리를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멋진 추억담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의 물질과 시간을 아끼지 않으며 매주 대구에 내려와 연습하는 팀원들. 세계로 나가 찬양으로 복음 전하는 것을 꿈꾸며 영어와 악기, 카메라와 편집을 배우는 팀원들. 각 분야에서 자신이 가진 전문 지식을 가르쳐주며 팀이 성장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팀원들. 또한 월드프레이즈에 동참하면서 문제를 해결 받고 복 받은 간증을 들을 때마다, 찬양하면 육체, 가정, 사업에 병과 귀신이 들어오지 못하며, 자녀들이 복을 받고 손을 대는 일마다 만사형통이라는 총회장 목사님의 말씀을 몸소 깨닫게 됩니다.

찬양을 통해 젊은이들이 일어나 빛을 발하여 교단의 부흥까지 이어지길 소망하는 이월드 목사님과 팀원들의 기도와 노력이, 그렇게 되길 바라고 응원하시는 총회장 목사님 이하 목회자분들과 성도님들의 뜨거운 기도가 4월 1일 ‘월드프레이즈 서울 찬양부흥회’에서도 결실을 볼 것을 믿습니다.

김진실 사모

오늘의 메시지

뒤로 물러나지 말라

미국은 1930년대에 경제대공황으로 인해 은행, 공장, 심지어는 학교까지 문을 닫고, 수많은 경영주들은 자살하며, 실업자가 1억 명이나 생기는 등 엄청난 혼란에 빠졌다.

이러한 때에 ‘J. J. 라스코’라는 사업가는 자신의 전 재산을 투자해 많은 실업자들을 동원하여 뉴욕 맨해튼에 거대한 빌딩 공사를 시작했다. 사람들은 “라스코는 미쳤어, 저 사람은 망할 거야.”라고 빈정거리고 조롱했지만, 그는 끄떡도 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힘있게 건물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과 410일 만인 1931년 4월 30일, 당시에는 세계 최고층인 102층 건물로 준공한 이 빌딩이 바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다. 이 빌딩은 오늘날 미국의 자존심으로 자리하고 있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딸이 죽은 것을 보고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했더니, 그곳에 있던 모든 자들이 비웃고 조롱했으나 그 딸을 살리시는 기적을 이루셨다.

홍해 앞에 백성들은 ‘이제는 끝이다, 죽었다’라고 두려움에 떨었으나 모세는 하나님을 의지한 믿음으로 홍해를 갈랐다.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모두가 골리앗에게 겁에 질려 두려워 떨고 있을 때, 하나님을 의지한 다윗은 골리앗을 죽이고 승리의 개가를 불렀다.

우리 이제 깨닫자! 모두가 힘들다, 두렵다, 안 된다 할 때에 도전하는 자가 기적을 만들 수 있다.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위인들은 세상의 멸시와 조롱 가운데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기적을 이루었다.

환난 날에 낙담하면 힘의 미약함을 보임이다(잠24:10).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지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 불가능은 없다. 불가능이라는 생각이 있을 뿐이다!

김상욱 목사

생명의 말씀

목숨값

최근에 우리 교회 성도들과 함께 작정하고 성경 일독 중이다. 교회 성도들과 여러 번 해왔던 통독이지만, 이번에는 조금 다른 마음가짐을 가지게 되었다. 이유인즉슨, 어느 탈북자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였다. 그 사람이 말하길 북한과 비교해서, 남한의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가 안 계신 것 같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에서는 목숨 걸고 보는 성경을 남한에서는 그리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만큼 북한에서의 신앙생활이 얼마나 절실한지를 느끼게 해주며, 우리네 신앙이 얼마나 방만해졌는지 깨달음을 주는 말이었다.

남한에서 들고 있는 성경책은 3~4만 원 값일 수 있겠지만, 북한에서 들고 있는 성경책은 그야말로 목숨값이다. 목숨 걸고 보는 성경책이며, 목숨 걸고 드리는 비밀예배이다. 숨어서 보는 성경 말씀의 한 구절 한 구절이 얼마나 간절한가 말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 시대는 신앙의 자유가 넘쳐나다 못해, 이제는 하나님의 권위를 넘어서려는 도전들이 즐비하다. 또한 말씀의 능력 자체보다는 유려하고 세련된 현대적 성경 해석에 눈길을 더 둔다. 하나님의 목숨값인 성육신과 그 말씀이신 성경을 제대로 대하고 있는가 말이다. 그 성경을 예수중심이 아닌 자아 중심적으로 해석하거나, 이해 가능한 합리적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것은 그 값을 무시하는 것이다.

우리 신학교에서 첫날 조직신학을 가르치기 전에, 총회장 목사님께서 단단히 경고하셨다. 성경의 권위를 넘어서려는 현대 자유주의 신학을 절대로 가르치지 말라고 선을 그어주셨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이란? 말씀과 신학을 현대성 앞에 무릎 꿇리는 작업이다. 현대의 인본주의, 과학, 역사, 고고학 등의 해석들이 하나님 말씀의 권위 위에 있도록 드높이니 성경의 모든 기적적 실제 사건들을 신화로 여겨 제거하며, 귀신의 역사도 상징으로 치부한다. 하나님으로 하여금 하나님 되시도록 만들어 드리지 못함이 안타깝다. 요즘 많은 설교들이 성경 해석의 세련됨과 수준을 자랑하는 듯하다. 절제되고 차분한 언어로 매끄러운 강의를 듣는 것 같아 지성은 만족시킬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투박하고 원색적인 설교여도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는 영성이 간절한 요즘이다.

송직화 목사

프롬인터넷

바보 같은 삶, 그러나 어둠을 밝히는 빛이 된 삶

누군가 여러분에게 ‘바보’라고 하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기분 나쁘고, 자존심 상하고, 불쾌할 것입니다. 그런데, 평생 바보라는 소리를 듣고 살았지만 많은 사람의 존경을 받았으며 바보 같은 삶이 오히려 성공한 삶이라는 말을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의사였지만 집 한 채 없이 평생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겸손한 삶을 사셨던 ​바보 의사 장기려 박사입니다.

​“제가 밤에 뒷문을 열어 놓을 테니 어서 집으로 가세요.”

장기려 박사는 어느 생활이 어려운 사람이 병원에 입원했다가 퇴원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어 막막해하고 있으면 이를 눈치채고는 병원 뒷문으로 몰래 빠져나가게 해주었습니다.

​“이 환자에게는 닭 두 마리 값을 내주시오, 원장.” 병이 나으려면 무엇보다 잘 먹어야 하는 환자에게 장기려 박사가 써준 처방전입니다.

​서울대, 부산대 의대 교수, 부산 복음병원 원장을 지냈지만,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에게는 방 한 칸 없었습니다. 자신의 소유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 나누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1947년, 김일성대학 의과대학 교수 겸 부속병원 외과 과장으로 부임할 때 주일에는 일할 수 없다는 조건으로 부임했고, 환자를 수술할 때는 항상 기도하고 시작했습니다. 월남 후인 1951년 5월부터 부산에서 창고를 빌려 간이 병원을 설립하고 피난민들과 전쟁 부상자들을 무료로 진료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복음병원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는 1968년 당시 100원 하는 담뱃값만도 못한 월 보험료 60원에 뜻있는 사람들과 ‘청십자 의료보험 조합’을 설립하여 1989년 전 국민에게 의료보험이 확대될 때까지 20만 명의 영세민 조합원에게 의료 혜택을 주었습니다. 국가보다 10년 앞선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의료보험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그를 이렇게 불렀습니다.

‘바보!’, 그러나 그는 “바보라는 말을 들으면 그 인생은 성공한 것이다. 그리고 인생의 승리는 사랑하는 자에게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철저히 청지기의 삶을 살았고, 주님만을 섬기며 겸손하게 살았습니다. 그는 평생 가난했지만 다른 사람들을 부유하게 했고, 집 한 채 없었지만 사람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베풀었고, 뇌경색으로 반신이 마비될 때까지 무의촌 진료를 다녔습니다. ​그는 자신을 드러내기 싫어했고, 자신이 칭송받는 것을 싫어했고, 오직 주님을 높이고 섬기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는 이웃과 나누며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아내에 대한 그의 극진한 사랑은 육체나 환경을 초월한 영혼과 영원의 사랑이었습니다. 1950년 12월 평양의대병원 2층 수술실에서 그가 밤새워 가며 부상당한 국군장병들을 수술하고 있을 때 갑자기 폭탄이 병원 3층에 떨어졌습니다. 국군들은 모두 재빨리 철수해야 했습니다. 그 바람에 그는 사랑하는 아내와 생이별을 하게 되었고, 일평생 빛바랜 가족사진 한 장을 가슴에 품고 아내를 그리워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이 그에게 재혼을 권했지만, 그는 언제나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한 번 사랑은 영원한 사랑입니다. 나는 한 여인만을 사랑하기로 이미 약속을 했습니다. 나는 사랑하는 나의 아내와 영원히 살기 위해서 잠시 그저 혼자 살겠습니다!”

​그가 부인을 그리며 1990년에 쓴 망향편지는 우리들의 가슴을 에는 듯합니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당신인 듯하여 잠을 깨었소. 그럴 리가 없지만, 혹시 하는 마음에 달려가 문을 열어 봤으나 그저 캄캄한 어둠뿐… 허탈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불을 밝히고 이 편지를 씁니다.”

​미국에서, 북한을 많이 도운 그의 제자가 북한당국과 합의하여 중국에서 장기려 부부를 만날 수 있도록 주선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기어코 그 기회를 사양하였습니다. 그런 특권을 누리면 다른 이산가족의 슬픔이 더 커진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그는 결국 빛바랜 사진을 보면서 아내를 그리워하다가 만나지 못하고, 1995년 12월 25일 성탄절 새벽 1시 45분, 85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한국의 언론은 ‘한국의 슈바이처’, 또는 ‘살아있는 작은 예수’가 우리 곁을 떠났다고 아쉬워했습니다. 그는 어두운 밤과 같은 그 시대에 밝은 빛을 비추며 주님과 병든 사람들을 섬기면서 겸손하고 가난하고 따뜻하게 사신 분이었습니다. 그가 죽기 전에 남긴 유언은 “내가 죽고 나거든 나의 비문에는 ‘주를 섬기면서 살다간 사람’이라고 적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장기려 박사님처럼 우리도 바보가 되어보면 어떨까요?

생활 속의 잠언

응답 없는 기도는 ‘내 탓’

요즘 주님께서 허락해주신 행복이 있습니다. 신혼에도 누리지 못했던 남편과의 생활은 상상 이상의 시간입니다. 술을 좋아하고 잔소리가 심한 남편을 멀리하고 피해 다녔지만, 언젠가 때가 되면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한 기도의 응답이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고 어떤 능력도 없었습니다. 때가 되니 그 기도의 응답 덕분에 지상에서 최고로 행복한 시절을 보내는 것 같습니다. 이초석 목사님께 전수받은 강력한 영적 권능은 기도였습니다. 삼십 년 훨씬 웃도는 세월 동안 기도를 쉰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수많은 기도의 응답으로 주님께서 늘 함께하신다는 믿음은 누구도 흔들거나 뺏지 못합니다. 그러나 가끔 기도의 응답을 못 받고 엄청난 시련의 시간을 보낼 때도 있습니다.

얼마 전 사업장이 비수기로 접어들면서 매출이 떨어지자 기도보다는 걱정과 염려로, 주님을 찾기보다는 내가 주관해서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건 이렇게 해결하고 저건 저렇게 해결하고, 평생을 동행하신 주님을 의지할 생각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급한 문제는 해결이 되었지만 주님은 계시지 않았고, 불안과 고통의 시간은 나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나의 의지가 가동되어 해결된 문제를 보면서 매일 주님께 간구를 드렸던 ‘주님만 의지하겠다’는 기도가 머쓱해졌습니다. 원하고 바라는 주님 의지하는 삶은 소소하고 사소한 것 하나도 기도로 구하고 주님의 지시대로 살아가는 것인데, 유독 돈(물질)의 문제는 기를 쓰고 직접 계산하고 머리를 굴리고는 합니다. 여전히 온전히 주님을 의지하는 삶과는 동떨어지고 믿음 또한 흔들리고 있습니다.

확실한 주님의 약속을 믿고 살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작은 것 하나도 내 뜻이 아닌 주님의 뜻을 구하며 살아갈 수 있는 능력도 있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주님 주신 작은 인생의 배 안에서 틈만 나면 돗대질도 하고 삿대질도 하며 순풍이 아닌 역풍을 맞으면서 내 뜻대로의 행적을 만들어갑니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다시 한번 애통하며 간절히 구하는 것은 주님의 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입니다. “주님, 자신 없는 삶의 부분뿐 아니라 내 평생 전공인 삶의 모든 것들도 십자가 앞에 내려두고 주님만 의지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주시옵길 다시 한번 눈물로 애통합니다. 주님, 당신의 권능의 손길 안에서 영원히 살고 싶습니다. 아멘.”

오자유 집사

신앙에세이

1440 포인트

매일 내게 주어지는 1440 포인트가 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주어지지만 받는 순간부터 조금씩 사라져 하루의 끝에는 모두 없어진다. 그래서 당일 어디에든 모두 사용해야만 하고, 아무 데도 사용하지 않을 경우 다 허무하게 사라져 버린다.

저축하듯 쌓아놓고 싶지만 그럴 수 없고, 단지 내가 사용하는 곳에서만 다른 가치로 전환되어 쌓이게 된다. 조금 사용한 곳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거나 작은 변화만 생기고, 많이 사용하는 곳에서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난다. 다만, 좋은 의도로 잘 사용했을 때 그러하고, 올바르지 않은 생각으로 사용한 곳에는 오히려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난다. 그래서 나를 천국으로, 성공으로, 행복으로 향하게 할 수도 있고, 반대로 지옥으로, 실패로, 불행으로 향하게 할 수도 있다.

그 1440 포인트의 사용처는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하나님, 성경, 가족, 연인, 친구, 공부, 사업, 운동, 게임, 놀음, 방탕 등등. 하나님께 사용하면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고, 공부에 사용하면 박사가 되고, 놀음에 사용하면 폐인도 될 수 있다.

맞다, 그 포인트는 바로 시간이다. 우리에게는 모두 동일하게 매일 1440분이라는 시간이 주어진다. 누군가는 그 시간을 기도에, 사랑하는 이에게, 자신의 발전과 성공을 위해 사용하고, 누군가는 쾌락에 사용하거나 그저 허무하게 보내버린다.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그 포인트.

올해 나는 어디에 사용해야 할까?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5:15~16).

박찬영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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