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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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8호 목차 › 붕우칼럼

진정한 용기

1188호 · 2023-02-12

작년 말, 나는 단에서 성도들에게 사죄했다. 내가 부모에게 효도하라고 설교하면서 부모를 나 몰라라 하는 불효자들에게 ‘이놈~~~~, 개보다 못한 년놈들’이라고 말했는데, 어느 성도가 이 말에 시험이 잔뜩 들었다는 것이다. 나는 단에서 “죄송합니다. 내 말에 시험이 들었다면 나를 용서해주십시오.”라고 고개를 숙여 사죄했다.

누군가는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닌데 굳이 단에서 용서를 빌어야 하느냐고, 그것도 고개까지 숙여야 하냐고 했다. 그러나 나는

“저가 이 작은 자 중에 하나를 실족케 할찐대 차라리 연자맷돌을 그 목에 매이우고 바다에 던지우는 것이 나으리라”(눅17:2)는 하나님 말씀을 안다. 나로 인해 실족하는 자가 있었다면 무릎인들 못 꿇겠는가.

나는 일본교회의 주의 종이 잘못했을 때

‘미안합니다. 나를 봐서 용서해주십시오.’라며 건물주 앞에서 무릎을 꿇은 적도 있다. 목회 초 어느 목사님이 주신 웅담을 소주에 타서 먹는 것이 탄로가 나서 교회가 시끄러울 때도 단에서 ‘미안합니다.’라고 사죄한 적도 있다.

사람이 실수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목사는 실수 안 하는가? 목사는 신이 아니다. 목사도 실수할 때가 있고,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다. 그러나 용기 있는 자는 그 잘못을 성도 앞에서 시인하고 용서를 구한다. 절대 핑계나 변명하지 않는다. 변명은 살아남기 위한 조잡한 수단이니까.

아담이 잘못했을 때 ‘잘못했습니다’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울이 잘못을 지적받았을 때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다윗은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빌어 죄 사함을 받았지 않은가.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고 시인하는 것이 진정한 용기다. 그러나 요즘은 누구를 막론하고 사과하는 것에 인색하다. 끝까지 버티는 것이 용기인 줄 안다. 아니다. ‘잘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라는 말은 약자의 언어가 아니다. 사과(謝過)는 진정 용기 있는 자의 언어임을 깨닫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요일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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