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初心)
초심(初心)
결혼을 앞둔 남녀가 있었다. 어느 날 사랑하는 여인이 감기에 걸려 기침을 하자 남자는 놀라 말했다. “자기야! 당장 병원 가자. 종합검진 받아야 돼. 감기는 만병의 원인이거든.”
그 후 그들은 결혼했는데 여자가 환절기에 감기에 걸리자, “여보, 내가 약국에 가서 약 지어올게.”하며 약국으로 향했다.
결혼한 지 한 해가 지나고 여자가 이번에도 감기에 걸리자, “아니, 감기약이라도 한 알 먹지?” 하며 짜증을 냈다.
아이가 하나 생기고 여자가 감기에 걸려 콜록대자, “이러다 아이한테 옮기면 어쩌려고 그래?” 하며 남편은 핀잔을 준다.
세월이 조금 더 흐르고 여자가 감기가 걸리자, “아니, 집안 꼴이 왜 이래? 아무리 감기 걸렸다지만 할 일은 해야지, 애들 밥은 먹인 거야?” 하며 화를 냈다.
더 많은 세월이 흘렀다. 아내가 감기에 걸려 누워있자, “무슨 여자가 그렇게 약골이야? 오뉴월 감기는 개도 안 걸린다는데, 당신은 뻑 하면 감기야?” 하며 문을 꽝 닫고 나가 버린다.
상황은 같다. 그러나 상황을 대처하는 마음이 다르다. 왜? 마음이 변해서다. 뜨겁던 사랑이 식어가는 모습이 눈에 보인다.
초심(初心)만 간직할 수 있다면, 처음 마음 그대로만 지속할 수 있다면 영·혼·육에 성공 못 할 사람이 없고, 이혼할 사람이 없고, 변절자는 없을 것이다.
초심을 지켜라.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신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계2:4~5).
이초석 목사 저서 ‘뿌리가 썩은 나무에 물을 주지 말라’ 중에서
선(先) 감사, 후(後) 기적
일본의 기독교인 이무라 가즈오는 오사카의 한 병원 내과의사로 근무했다. 그런데 어느 날 섬유육종암으로 오른편 다리를 절단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초인적인 의지로 의사의 사명을 다하다가 암이 폐로 전이 되어 31살에 이 세상을 떠났다. 그가 기록한 편지와 글이 ‘종이학’이란 책으로 출판되고 영화로도 만들어져 커다란 감동을 주었다. 이 책의 내용 중에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가 보다’라는 제목의 글이 인상적이다. 글은 이렇다.
‘이렇게 아름답고 귀한 것에 사람들은 왜 감사할 줄 모를까? 아버지, 어머니가 계시다는 것이, 형제가 있고 친구들이 있는 것이, 손이 둘이고 다리가 둘이고, 손을 뻗어 무엇을 잡을 수 있고,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다는 것, 소리가 들리고,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 이것보다 더 감사한 일이 있을까! 그런데 이 아름답고 귀한 것에 아무도 감사할 줄 모르고 그거야 당연한 것이라고 말한다. 하루 세끼 밥 먹고, 밤이 오면 잠자고, 다음 날 아침을 맞는다는 것. 웃고, 울고, 노래하고, 뛰어다닌다는 것. 산을 오르고, 바닷가를 거닌다는 것. 그 모든 것이 얼마나 눈물 나게 소중한 것인지, 얼마나 아름답고 신나는 것인지,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복이 복인 줄 모르면 절대 감사할 수 없다. 감사를 못하는 사람은 원망과 불평, 남의 탓을 하며 불행한 삶을 산다. 복이 복인 줄 모르는 사람들은 마침내 그 모든 것을 잃고서야 그 가지고 있던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게 되고 그것이 복인 줄 깨닫는다.
신명기 16장 15절에 하나님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감사하라 말씀하셨다. 선(先) 감사하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의 사역도 선(先) 감사, 후(後) 기적의 역사였다.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합니다.’ 선 감사했더니 죽어 썩은 냄새가 나는 송장이 살아났으며, 보잘것없는 보리떡 다섯 개를 들고 선 감사했더니 장정만 오천 명이 먹고도 남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다.
우리 이제 주실 것을 인하여 선(先) 감사를 하자. 그리고 달라는 기도보다 주신 것에 감사의 기도를 하자.
임택함 목사
설교를 들으면 얼마나 실천하시나요?
몇 년 전 어느 에세이를 읽다가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에코마일리지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습니다. 홈페이지에서 회원가입을 하고 에너지를 절약하면 온누리상품권이나 문화상품권, 현금 등 다양한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혜택받기가 아주 쉬워요.
저는 별다른 노력 없이 매년 10만 원가량의 온누리상품권을 받고 있습니다. 서울시에서 제공하는 이런 혜택이 있다는 게 놀라워서 한동안은 사람들을 만나면 꼭 가입하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가족에게는 여러 번 말했고요. 그때마다 사람들은 참 좋은 혜택이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가입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근래에 직장 동료 두 명에게 말해주었는데, 딱 한 명만이 그 자리에서 즉시 가입하더라고요. 조금 귀찮다는 이유로, 혹은 나중에 하겠다고 미루면서 우리가 받을 수 있는 당연한 혜택을 놓치는 일이 얼마나 많을까요.
저는 설교를 들으면 바로 실천하려고 노력합니다. 이시대 목사님이 고치고 싶은 습관과 갖고 싶은 습관을 집에 가서 적어보라고 하면 그날 저녁에 일기장을 펼치고 적습니다. 이월드 목사님이 목적을 위해 여리고성을 도는 설교를 했던 다음 날에는 저의 소망을 품고 출근하기 전에 여리고성을 돌았고요. 마지막이 되는 7일째에는 비가 온다기에 우비와 갈아신을 운동화까지 준비했었습니다. 이초석 목사님이 신학생들과 금식기도를 하신다고 설교한 날에는 저도 하루를 금식하며 저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하나님께 먼저 헌금을 드리고 일을 시작하신다는 장로님의 간증을 들은 날에는 저도 천 배로 자라길 바라는 씨앗을 하나님께 먼저 드렸습니다.
물론 실천한 것보다 실천하지 못한 것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여전히 반복해서 짓는 죄가 있지요. 전도하는 일은 항상 마음의 짐처럼 남아있고, 온유함이 부족해서 가족에게 화를 내고는 뒤돌아서 회개하며 사과하는 일도 잦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소중한 하루를 나태하게 보내는 날도 빈번하고요. 예배 시간에 설교 말씀에만 집중하자고 다짐하지만 어느새 딴생각하고 있을 때도 있습니다. 특히 요즘엔 개인적으로 벌여놓은 일들이 많았던지라 귀로는 말씀을 들으면서 어느 순간 마음으로는 예배 후에 해야 할 일들을 헤아리고 있더라고요.
최근 수요예배와 주일예배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라는 설교 말씀을 반복적으로 들으면서 저의 생활을 개선하기로 했습니다. 주일에는 예배드리는 일 외에는 해야 할 일을 남겨두지 않기로요. 무슨 일이 있어도 모든 것을 토요일까지 끝내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가장 최적의 컨디션과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예배를 드릴 겁니다.
저의 하루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쉬운 모양일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교를 듣고 즉시 행동으로 옮기려고 노력합니다. 네, 노력이 필요해요. 깨달았다고 해서 저절로 실천되지는 않습니다. 의식적으로 실천한 노력이 저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었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자녀로 만들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과거의 저보다 지금의 제가 더욱 마음에 들어요.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은 지금의 어떤 모습 또한 차츰차츰 변화되어 지금보다 더 나은 제가 될 거라고 믿습니다. 앞으로도 설교 말씀을 들으면 들은 대로 실천할 것이기 때문이죠.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자녀, 하나님이 예뻐할 수밖에 없는 자녀가 되길 소망합니다.
신은혜
dopa10203@naver.com
올바른 기도
당신은 기도할 때 어떤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는가? 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과 하나님의 뜻이 나에게 이루어지는 것 둘 중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가? 사실 기도의 시작은 내가 원하는 것, 즉 나의 소원에서부터 출발한다. 이점에 대해 사람 대부분은 이의를 달지 않을 것이다. 기도는 마치 친구에게 대화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나의 심정을 펼쳐놓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의 형편을 하나님께 알리기 위해 기도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미 나의 형편과 마음을 나 자신보다도 더 잘 알고 계시기에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나의 모든 마음의 동기와 형편과 지금의 상황, 그리고 나의 미래까지 모두 다 알고 계시는데 우리는 왜 기도해야 하고 얼마나 기도해야 하며, 또 어떻게 기도해야 할까? 마태복음 6장 5~7절은 우리가 기도하면서 범할 수 있는 오류가 무엇인지 말씀하고 있다.
첫째, “외식하는 자와 같이하지 말라.” 즉 위선적인 모양의 ‘종교적인 기도’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에게 보이려는 기도, 겉모습과 속마음이 다른 모습의 기도는 위선적이라는 것. 그러니 기도할 때 세속적인 욕망이 담겨있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하나님과의 관계성에 대한 영적이고 신앙적인 기도를 하라는 것이다.
둘째, “골방에 들어가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이는 기도의 동기를 묻는 ‘은밀함’에 대한 것이지 않을까 싶다. 이 은밀한 동기는 하나님과 나 사이의 관계,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문제인 것이다. 한번 생각해보자.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기도할 때 나의 기도의 동기가 무엇이었는지. 아마 필자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기도할 때 하나님과 은밀한 관계에 들어가기보다는 내가 이 기도를 통해서 얼마나 영적인 존재인가를 드러내고 싶어 하는 경우가 훨씬 많을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 갖는 동기가 하나님과의 관계, 소통이길 바라신다.
마지막으로 “이방인들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이는 기도의 양보다 질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해야 들어주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스왈드 챔버스(Oswald Chambers) 목사는 「거룩과 성화」라는 책을 통해 “우리가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우리가 드린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그 시간을 통해 삶 가운데 위대한 능력을 접하는 문이 열렸는가 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과 얼마나 친밀한 관계로 들어가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저 ‘도와주세요’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보다 더 나아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친밀해지는 것, 그것이 바로 올바른 기도이다.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내게 이루어 주시리라”(시편 34:4). 이 말씀의 핵심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라’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기뻐하라’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호와를 기뻐하는 자의 소원은 잘못되지 않기 때문이다. 기도는 나 자신이 하나님을 나의 생활 속에서 더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더 확실하게 이해하기 위하여 하나님과 대화하는 일이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연극을 하지 말자.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연극하고 싶은 유혹이 들지 않도록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찾아 할 수 있는 한 단순하고 솔직하게 기도하자. 그리하면 내 생각과 마음의 초점이 나에게서 하나님께로 옮겨지고, 그분의 은혜가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시145:18).
Dr. 권정미
jmgood77@gmail.com
초보 골퍼의 깨달음
3년 전 이직한 회사에서 입사 기념으로 잡아준 골프 라운딩을 시작으로 얼떨결에 골프를 시작하게 되었다. 1달 정도 근처 연습장에서 연습하고, 첫 번째 라운딩은 어찌어찌 공만 맞추며 18홀을 뛰어다닌 기억만 난다.
골프를 제대로 배우지 않아서인지 잘못된 자세로 연습하게 되니 열심히 할수록 몸 이곳저곳이 아프고 실력도 늘지 않았다. 오히려 나보다 늦게 시작한 지인들한테도 지는 지경에 이르러서야 처음부터 배우는 심정으로 골프 코치를 찾아가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코치는 골프공을 목적지까지 보내려면 힘을 빼고, 골프채가 정해진 궤도로 자연스럽게 움직일 수 있게 몸을 움직이면 된다고 자세를 교정해주었다. 너무 간단한 처방에 약간 의심스러웠지만 믿고 따라했더니 정말 힘을 쓰지도 않았는데 공이 똑바로 멀리 날아가서 놀라웠다. 지금까지는 공만 멀리 보내려는 욕심에 어깨에 잔뜩 힘만 주고 골프채를 휘둘러댔다. 잘못된 자세로 땅만 찍어대서 몸이 아픈 것을 열심히 연습해서 그런 거라 착각했다. 무지했던 지난 시간이 후회되고 안타까웠다.
진리는 너무 간결하고 길은 하나인데 자신의 방법을 고집했던 잘못된 열심이 오히려 삶을 힘들고 고단하게만 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골프는 18홀을 망쳐도 연습해서 다음에 잘 치면 되지만, 내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다. 내 생각과 의지를 내려놓고 하나님께 내 삶을 맡길 것을 결심하며 기도로 하루를 시작해 본다. “오늘도 내 삶을 예수님께 맡깁니다. 홀을 향해 똑바로 날아가는 골프공처럼 천국을 향해 똑바로 가게 도와주세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송명국 집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