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글씨 크기 보통16
1179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너는 어느 때 하나님께 기억된 것 같으냐?(단3:10~30)

1179호 · 2022-12-11

여러분은 하나님이 기억하실만한 일을 한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감동하실만한 일을 한 적이 있습니까? 그것이 어느 때입니까?

먼저 하나님께 기억된 바 된 성경 속 인물을 살펴보겠습니다. 다니엘은 다리오왕 때부터 고레스왕 시대까지 승승장구했습니다. 그것은 그의 삶 자체가 하나님께 기억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느브갓네살 왕이 제공하는 산해진미를 거부했습니다. 이방신에게 제사한 음식이라 안 먹기로 뜻을 정한 것입니다.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 일을 하나님이 유심히 보셨고, 기억하셨습니다. 또한 다리오 왕 때에 3일 동안 왕 외에 다른 신이나 사람에게 절하는 자는 사자굴에 던지기로 한 칙령이 발효됨을 알고도 행해왔던 것처럼 하루 세 번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도했습니다. 이 역시 하나님께 기억된 바 되었습니다. 그러니 만사형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이 나중 일기를 보고서 모르드개가 자신의 목숨을 구한 것에 대한 포상을 하지 않습니까? 사람도 이러할진대 하나님이 기억하시면 어찌 되겠습니까?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금신상에 절하지 않으면 화형되는 줄 알면서도 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왕 앞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능히 풀무에서 건지실 것이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절하지 않겠다’고 단호히 말했습니다. 이를 하나님이 보시고 감동하사 그들을 불에서 건지셨고, 더욱 높이셨습니다.

하나님이 ‘친구’라 부르는 아브라함, 그게 그냥 된 게 아닙니다. 히브리서 11장 17절에,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백세에 얻는 외아들을 제물로 드리라는 명령에 순종한 아브라함을 기억하셨고, 그에게 아낌없는 복을 허락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4장에는 예수님이 식사하시고 있는데 한 여인이 와서 옥합을 깨트려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붓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를 지켜보던 자들이 괜히 향유를 허비했다고 핀잔을 주자 예수님은 ‘그것은 장차 있을 나의 장례를 준비한 것’이라고 하시며,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막14:9)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에 이 여인이 콕 박힌 것입니다.

또 빌립의 초청에 예수님께 나아오는 나다나엘을 보시고 예수님은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요1:47)라고 하셨습니다. 이에 놀란 나다나엘이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하고 묻자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 아래라는 공간이 아니라 간사함이 없는 그의 마음을 주목하시고 기억하신 것입니다.

저는 이번 추계산상집회를 앞두고 기도하면서 집회 기간에 오전과 오후 하루 두 번 설교해야겠다고 뜻을 정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제게 “너는 어느 때 네가 기억된 바 되었는지 아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당당히 “알다마다요.”라고 답했습니다.

12월 22일이면 목회 38년입니다. 그 세월을 뒤돌아보았습니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고 어머니에게 쫓겨났고, 사랑하는 가족과도 헤어져야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불신자의 사후의 영이 귀신이라는 주장만 하지 않으면 무탈할 것을, 타협하지 않아 교계에서 제명되었고요. 저는 그날 우리 성도들과 함께 교회에서 잔치를 배설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그날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또한 올림픽공원으로 들어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았을 때 때맞추어 어느 성도가 현금 300억 원을 제공할 테니 교회를 지으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의 뜻대로 거금을 거절하고 올림픽공원으로 들어갔습니다. 또 미국에 있는 회원들이 미국을 업고 뛰라며 미국 명예시민권을 가지고 왔을 때 저는 그 시민권을 접시 밑에 깔아버리고는 ‘미국을 업어야 성공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업어야 성공합니다’라고 당당히 말했습니다. 제가 한 말이지만, 너무 멋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박수를 치셨을 겁니다.

라트비아 리가 집회 때, 집회 장소에 총리가 온다고 하니까 많은 목사들이 집회는 뒷전이고 총리만을 목이 빠져라 기다렸습니다. 집회 시간이 다 되어도 그는 나타나지 않아 제가 단에 오르려고 하자 그들은 ‘조금만 기다렸다가 총리와 만나고 들어가시라’ 애원했습니다. 저는 “나는 예배드리러 왔다.” 하며 단호히 거절하고 단에 올랐습니다. 분명 하나님은 이 장면을 명장면으로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낯설고 물선 땅에서 목이 터져라 복음을 전했을 때, 야외 집회 중 비가 와서 마이크가 나가자 육성으로 복음을 전했을 때를 하나님은 기억하실 겁니다.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때 너를 보았노라!’

여러분, 하나님을 감동시킨 자, 하나님께 기억된 바 된 자는 당당합니다. 히스기야가 그의 재위 14년이 되었을 때, 밖으로는 산헤립이 침공했고, 자신은 죽을병에 걸렸습니다(사38:1). 이에 벼랑 끝에 선 히스기야는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합니다.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여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하옵소서”(사38:3). 그러자 여호와께서 바로 마음을 돌이키사,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 오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

(사38:5~6)고 약속하셨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이 기억하실만한 어떤 일을 했을까요? 히스기야는 즉위하자 곧 종교개혁을 단행하여 산당을 비롯한 모든 우상을 제거했습니다(왕하18:1~7). 또 그는 모세의 놋뱀이 우상 숭배의 대상이 되어 있음을 알고 그것도 제거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를 선히 여기사 기억하신 것입니다.

다음은 느헤미야의 기도입니다. “내 하나님이여 그들이 제사장의 직분을 더럽히고 제사장의 직분과 레위 사람에 대한 언약을 어겼사오니 그들을 기억하옵소서 내가 이와 같이 그들에게 이방 사람을 떠나게 하여 그들을 깨끗하게 하고 또 제사장과 레위 사람의 반열을 세워 각각 자기의 일을 맡게 하고 또 정한 기한에 나무와 처음 익은 것을 드리게 하였사오니 내 하나님이여 나를 기억하사 복을 주옵소서”(느13:29:31).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곽을 건축하고 12년 동안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에스라와 함께 개혁을 단행한 일을 기억해달라는 기도를 드립니다. 그런데 더불어 직분을 더럽힌 제사장들도 기억하시라고 기도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좋은 일뿐만 아니라 안 좋은 일도 기억하신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다윗이 마하나임에서 피난하고 있을 때, 다윗군에게 식량과 생활필수품을 제공한 바실래를 잊지 않고 기억했다가 그의 자녀를 데려다 은혜를 갚았지만(왕상2:7), 압살롬과 아브넬을 죽인 요압은 안 좋게 기억되어 솔로몬에게 죽이라고 유언하지 않았습니까.

에스겔서 21장에, “너희의 악이 기억을 일으키며 너희의 건과가 드러나며 너희 모든 행위의 죄가 나타났도다 너희가 기억한바 되었은즉 그 손에 잡히리라”(겔21:24)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에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 좋은 것이 기억된 바 되었다고 하신 것입니다. 두려운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어떻게 기억되고 있을까요? 마태복음 25장에 영생에 들어갈 자와 영멸에 들어갈 자를 주님이 구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영생에 들어갈 자들이 묻습니다. “저를 언제 보셨나이까?” 그러자 주님은 ‘주린 자를 먹이고, 벗은 자를 입히며, 병든 자를 돌아보고 옥에 있는 자를 찾아볼 때 보았노라’고 하십니다. 반대로 영멸에 들어갈 자들은 그 상황에 나 몰라라 했다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보고 계십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좋은 기억이 될 만한 일을 하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 어느 때에 저를 보셨나이까?” “네가 추운 날씨에도 새벽부터 나와 봉사할 때 보았노라.” 할렐루야!

주님이 기억하는

삶을 살아보자

하나님께 기억되는 자는

만사형통한다

1179호 다른 글

커버스토리
지혜의 말씀
Cartoon
붕우칼럼
세상을 보는 창
객원컬럼
성경 에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