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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抛棄)는 마귀가 원하는 것이다

1169호 · 2022-10-02

“시작했으면 끝장을 봐라!”

“포기는 곧 자살이다!”

목사님을 생각하면 바로 떠오르는 말씀이다. 우리 성도들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말씀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목사님이 당신의 삶을 통해서 아주 명확하게 웅변해오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목사님 하면, 일을 시작하시면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끝장을 보시는 분이라 각인되어있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우리 몸에도 그대로 체득이 되었는지 일을 대할 때 동일한 자세로 임하게 된다.

목사님은 수요예배를 통하여 엘리야를 따르던 엘리사의 이야기를 말씀하시며 포기하지 않는 기필코 정신을 배우라고 거듭 강조하셨다.

“나의 성공비결은 내 삶 속에서 대충이라는 균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최고가 되려면 최선을 다하라’는 나의 잠언은 바로 최선을 다해 달려온 내 삶에서 나온 것입니다. 신령과 진정을 다해 예배드리고, 신령과 진정으로 기도한다면 왜 응답이 오지 않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대충대충, 얼렁뚱땅하며 매사 최선을 다하지 않기에 인생에 실패하고 피폐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조금 해보고 안 된다고 포기하니 그 삶에 무슨 열매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삶에서 게으르고, 나태하고, 조급한 대충이란 균을 잡지 않으면 결코 하나님의 응답도 맛볼 수 없고, 단 열매를 딸 수 없습니다.

오늘 성경이 증거하는 엘리사의 이야기를 보세요. 엘리야를 따르던 생도들 중에 하나였던 엘리사는 엘리야보다 갑절의 영감을 받겠다는 각오로 무시를 당하고, 내침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더니 뜻을 이루었습니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컨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왕하2:2). 길갈에서 나오며 엘리야는 ‘하나님이 나를 벧엘로 보내니 엘리사야, 너는 따라오지 말고 여기 있어.’라고 말합니다. 벧엘, 여리고, 요단으로 옮길 때마다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제발 따라오지 말고 남아있으라 명하지만, 그때마다 엘리사는 단호했습니다.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사심과 당신의 혼의 삶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왕하2:4,6). 어디 그뿐입니까? 엘리야뿐 아니라 동료 선지생도들도 말립니다. 그때마다 엘리사는 ‘입 다물라’고 일갈합니다.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날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취하실줄을 아나이까 가로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왕하2:3,5). 엘리사는 동료 선지생도들에게 이렇게 선포한 겁니다. ‘나도 엘리야 선생님이 떠나실 줄 알아. 그러나 너희가 나를 어떻게 알아! 나는 분명한 목적이 있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엘리사의 자세에 엘리야도, 하나님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엘리사는 자신의 뜻을 이루었고, 한 시대에 맥을 긋는 위대한 선지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어디 엘리사뿐입니까? 보리떡을 강청한 친구의 이야기(눅11:5~8)나 원한을 풀어달라고 강청한 과부의 이야기(눅18:2~5)를 보세요. 친구라서 떡을 내준 것이 아닙니다. 과부의 사정이 딱하다고 인정해서 들어준 것도 아닙니다. 밤에 자야 하는데 예의고 뭐고 무시하고 찾아와서 밤새 문을 두드리니 귀찮아서 내준 겁니다. 과부가 언제까지 찾아와 번거롭고 귀찮게 할지 몰라 과부의 청을 들어준 겁니다. 예수님이 막무가내의 두 사건을 이야기하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너희가 나에게 강청하면,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밤낮 부르짖으면, 나는 꼼짝없이 들어줄 수밖에 없다’고 스스로의 약점을 밝히신 겁니다.

그런데 왜 포기합니까? 왜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집니까? 오늘 엘리사, 과부의 기필코 정신을 배우세요. 하나님께 기도하고 포기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응답해주실 수밖에 없는 분입니다. 포기는 마귀나 원하는 일입니다. 절대 포기하지 마세요. 할렐루야!”

한은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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