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
당신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나?
만약 어떤 선장이 배의 방향은 묻지 않고 그냥 시간이 없으니까 속도만 내라고 고함만 친다고 생각해보자. 키를 잡은 항해사가 “어느 방향으로 속도를 내야 합니까?” 하고 물을 때 화를 버럭 내면서
“방향은 중요하지 않고 속도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면 그 배의 운명이 어떻게 될 지 눈에 선하다. 그러므로 현명한 선장은 배가 가고 있는 속도보다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에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된다.
우리의 인생도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지금 열심히만 살면 된다고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열심히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어디로 향하여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속도에 관심이 많다. 초고속 승진, 남들보다 더 빨리 출세하는 것, 더 많이 재산을 모으는 것, 내 주위에 있는 사람보다 빨리 유명해지는 것, 온통 속도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산다. 그러나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탈무드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한 나그네가 길을 가다 지쳤는데 마침 마차를 만났다. 너무나 다리가 아파서 태워달라고 마부에게 부탁했다. 마부는 기꺼이 그 나그네를 태워주었다. 나그네가 마부에게 묻기를 “예루살렘까지 여기서 얼마나 먼가요?” 마부가 대답하기를, “이 정도 속도라면 30분 정도 걸리지요.” 나그네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잠시 잠이 들었다. 깨어보니 30분 정도가 지났다. “예루살렘에 다 왔나요?” 마부가 말했다. “여기서 1시간 거리입니다.”, “아니, 아까 30분 거리라고 했고 그새 30분이 지났잖아요?” 마부가 말하기를 “이 마차는 반대 방향으로 가는 마차요.”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교훈이다. 가는 방향이 맞으면 설령 늦어도 목적지에 이를 수 있지만, 가는 방향이 잘못되면 아무리 속도를 높여도 결코 목적지에 이를 수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는 방향보다는 속도를 높이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바른 방향을 정하고 그 방향으로 계속 가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인생 길에서 내가 하는 이 일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가, 아니면 나를 기쁘게 하는가, 지금 내가 바른 방향을 향해서 가고 있는지 항상 점검하고, 또 점검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으로.
믿음의 명작
얼마 전 수련회와 산상집회가 있었다. 매 순간순간 장면을 담아내다 보면 촬영할 때는 괜찮다고 생각했던 장면이 막상 컴퓨터로 파일을 옮겨서 확인해보면 흔들리거나 초점이 맞지 않는 영상들이 있다. 이런 영상들은 어떤 작품에도 쓰이지 않는다.
왜 내 삶이 이리 흔들릴까? 초점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하나님으로부터 시선을 빼앗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또한 어려움이 몰려와 흔들릴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면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 목사님이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었더니 세상의 유혹, 핍박, 환난에도 확실한 명작을 만드셨다. ‘세계교구’라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작품을 만드셨다.
그러나 한 번 흔들렸다고 삶을 망치는 것은 아니다. 다시 초점을 잘 잡으면 된다. 베드로가 그랬고, 다윗이 그랬다.
처음부터 완전한 작품을 만들 수는 없다. 흔들리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지 모른다. 나도 처음에는 초점을 못 맞춰서 사진을 삭제하고, 영상을 지워야 했던 경험이 많다. 지금은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제는 건질 만한 작품이 있다.
지금 흔들린다고, 초점이 잘 안 맞는다고 절망하지 말라. 하나님 말씀에 초점을 맞추고 기도하면 점차 흔들리지 않는 삶이 되고, 더 나아가서는 멋진 작품이 나온다. 그래서 언젠가 작품상으로 천국에서 예수님과 한 상에 앉아 떡을 떼며 예수님과 함께 열두 지파를 심판할 수 있게 되리라.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막14:38).
이은성 생도
es2563@naver.com
그럼, 나는 누구한테 위로받나?
우리는 7년 차 부부입니다. 사이가 좋은 편이라 주변 사람들에게 종종 칭찬을 듣기도 합니다. 하지만 산이 높으면, 골이 깊은 법. 저희 부부도 한 번 싸우면 두 번 다시 보지 않을 것처럼 싸웁니다. 그렇게 치열하게 싸울 때면, 꼭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그냥, 좀 받아주면 안 되니?”, “나는 그냥 인정받고 싶었다고. 잘잘못을 따지자는 게 아니라….”, ‘많이 속상했구나’라고 먼저 말해주면 되잖아?” 정리해보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날 이해하고 위로해달라는 말입니다. 비슷한 예로, 가끔 과중한 업무에 지쳐 돌아온 남편에게 제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툴툴거리면, 남편은 한숨과 함께 “그냥 위로 좀 해주면 안 되니? 난 그거면 되는데….”라며 아쉬움을 표현합니다.
며칠 전에는 친정엄마와 긴 통화를 하다가 오랜만에 ‘모녀대전’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번 모녀대전의 중재역은 남편이었습니다. 저와 저희 엄마는 남편에게 똑같은 말을 했다고 합니다. 너무 억울하다고요.
말이 길어졌지만, 핵심은 내가 너무 억울하고 분한 나머지 힘들고 지쳐서 기도할 수 없고, 눈물이 빗물처럼 흘러 내릴 때, 그때 나는 누구에게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요?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가족이고, 정말로 사랑하는 남편이고 아내인데 그들에게 받은 상처와 아픔은 어디에 기대어 눈물을 흘릴 수 있을까요?
‘나 너무 속상했다.’, ‘나 너무 아팠다.’,
‘그때, 나는 이러저러해서 억울했다.’라고 종알거리며 토닥토닥 위로만 받으면 그만인데, 그 가볍고 따뜻한 위로를 어디에서 받을 수 있을까요? 너무 당연한 질문이고, 너무나 당연하게 정해진 답이지만, 너무 속이 상하고 억울한 날에는 주님 앞으로 나아가기가 참 어렵습니다. 나의 인간적인 생각과 부정적인 감정과 번뇌와 후회, 그리고 날 슬프게 한 사람에 대한 원망이 주님을 향한 나의 믿음을 쉽게 가려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우리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나 너무 억울해. 나 너무 힘들어.’라는 마음이 든다면, 젖 먹던 힘을 다해 두 손 꼭 쥐고 주님 앞으로 갑시다. 가장 당연하고 가장 쉬운 이유. 그것이 우리의 살길이기 때문입니다.
전훈지 집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