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절함이 열정을 이긴다
간절함이 열정을 이긴다
중국 사마천이 쓴 ‘사기’라는 책에 보면,
‘이 장군 열전’ 편이 있다. 이 장군은 이광 장군을 말하는데, 화살을 쏘면 백발백중시키는 신궁으로서 흉노족을 물리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장군이다. 어느 날 그가 사냥을 하는데, 바로 앞에 호랑이가 나타났다. 얼마나 절박했던지, 온 힘을 다하여 호랑이에게 활을 쐈다. 호랑이는 화살 한 방에 쓰러졌다. 그런데 가서 보니까, 호랑이가 아니라 불그스름한 바위였다. 활을 얼마나 세게 당겼던지, 화살촉이 바위에 꽂혀 있었다. 자기도 놀라 다시 한번 바위를 향해 화살을 쏘아 보았다. 그러나 바위에 화살이 꽂힐 리가 있나. 그냥 튕겨 버렸다.
그때 이광은 간절함이 있으면 화살로도 바위를 뚫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이 이야기에서 ‘사석위호(射石爲虎)’, ‘간절하면 못할 게 없다’는 의미의 사자성어가 나왔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 하나이다”(시42:1). 위의 시를 저술한 시인은 하나님을 향한 자신의 갈망을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갈급해 하는 것에 비유하고 있다. 그러면 시냇물을 찾아 헤매는 사슴의 갈급함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사슴은 물을 좋아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늘 시냇물 주위에 거하며, 자기가 아는 시냇물에서 좀처럼 멀리 떨어지지 않고, 잘 모르는 지역은 가지 않는다. 그런데 번식기가 되면 수사슴들이 암사슴을 찾아 나서게 되는데, 이때 수사슴들은 자기도 모르게 자신이 알고 있는 지역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게 된단다. 그러다가 사슴의 몸에는 타는 것 같은 목마름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암컷을 찾아 나섰으나 나중에는 물을 찾아 헤매게 되고, 물을 찾아 헤매던 사슴들은 심한 목마름으로 기력이 다하게 되어 나중에는 헛것을 보기도 한다. 결국 사슴들은 뜨거운 태양 아래서 거꾸러져 입에 거품을 물고 죽어간다. 그렇게 죽어가는 사슴에게 있어서 한 모금의 물은 곧 생명이었다.
위의 시를 저술한 시인은 사력을 다해 물을 찾다 죽었을 사슴들을 떠올리면서, 영적으로 갈급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우리도 하나님을 향하여 이러한 갈망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하나님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정금 전도사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
나는 평상시 청바지에 티셔츠를 즐겨 입는다.
하루는 청바지에 운동화 차림으로 외출했다가 부동산사무소에 들르니 사무소 직원들이 나를 한 번 힐끔 쳐다보고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고 계속 화투만 치고 있다. 기분이 몹시 나빴다. 내가 좀 후줄근한 차림이긴 했지만 분명 이것은 손님에 대한 예우는 아니잖은가. 그때 나는 제법 엄청난 부지를 물색 중이었다. 나는 거기에 더 이상 머무를 이유가 없어 문을 열고 밖에 대기하고 있던 내 차를 불렀다. 나는 그때 캐딜락을 타고 다녔다. 내 차가 그들 눈에 띈 모양이다. 그들은 황급히 따라 나와 나를 잡으며 “아니, 선생님,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하는 것이다. 나는 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사람을 외모만 보고 판단해서야 어찌 사업에 성공하겠소?” 하며 휙 돌아서 나왔다. 두고두고 기분 나쁜 일이었다. 그들이 나를 반색하며 일을 추진했다면 제법 큰 돈을 만질 수 있었을 텐데 기회를 놓친 것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먼저 외모로 판단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외모를 취하지 말라고 경고하신다. 마음 밭에 무엇이 심겨 있나가 더 중요하고, 머리에 얼마나 많은 것이 들었는지가 더 중요하다. 컴퓨터의 외장보다 내장의 프로그램이 더 좋아야 하는 것처럼, 사람을 단순히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해 버리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작태다. 그런 우를 범하지 말라.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이초석 목사 저서 ‘적보다 무서운 것은
무능한 지휘관이다’ 중에서
질문하는 신앙
얼마 전 직장동료의 생일을 맞이하여 생일 선물을 사기 위해 백화점에 갔습니다. 평소 밀접하게 업무를 함께 하던 동료이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선물을 고를 수 있을 거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막상 백화점을 둘러보니 무엇을 사야 할지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아 결국 저는 아무것도 사지 못하고 나왔습니다. 그 후 동료와 나눴던 대화에서 힌트를 얻기 위해 메신저에 들어갔습니다. 나름 일상 이야기를 참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데 저희의 메신저에는 회사 이야기, 그리고 ‘…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라는 말만 가득했습니다.
결국 저는 동료에게 가서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습니다. 동료의 답변을 들은 후에야 비로소 어떤 선물을 할지 결정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마음이 힘들 때 기도문처럼 하나님께 하고 싶은 말을 메모장에 적습니다. 최근에 적은 글들을 보니 하나님께 하는 말도 그 동료에게 했던 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요즘 제가 하나님께 바라는 기도 제목이 있는데, 그것을 이루어달라고, 꼭 이거 해달라고 하는 말뿐이었습니다. 저의 소원만 가득했습니다. 저는 문득 궁금해져 하나님께 질문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구하는 이 기도 제목, 하나님 마음에 합하는 건가요?’ 이 질문을 하는데 저는 ‘아, 어쩌면 하나님은 내가 다르게 하길 원하셨던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께 여쭤보니 하나님 마음에 합한 다른 방법과 방향이 보인 것입니다.
저는 총회장 목사님을 보면서 생각한 게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항상 먼저 질문하고, 하나님의 뜻을 가장 먼저 헤아리는 분이 바로 총회장 목사님이라는 것입니다. 목사님은 단 한 번도 하나님께 질문하지 않으신 적이 없습니다. 설교를 통해 듣는 목사님은 항상 하나님께 물어보십니다. ‘하나님, 성전을 어디로 할까요?’, 하나님 지금 우리 교단에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가요?’. 저는 이러한 목사님 덕분에 우리 교단이 하나님의 뜻을 제일 먼저 알아 평화통일 기도성회를 가장 먼저 시작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먼저 물어보는 ‘질문하는 신앙’을 가져봅시다. 하나님은 항상 저희에게 답변해주실 준비가 되어 있으십니다.
장수정
하나님의 인도하심
신앙의 갈등을 겪고 있었지만 교회를 옮기는 것은 쉽지 않았다. 신앙생활 5년에 실로암 교회에서 안수집사로 임명되었으니 더욱 쉽지 않았다. 안수집사는 항존직으로 교회에 기둥이 되라고 안수한 것이다. 성도가 50명 정도였는데 대표 기도, 헌금 위원, 주일학교 부장, 차량 봉사 등, 할 수 있는 데까지는 다 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사업을 하면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할 수 있었다. 하나님이 죽을병에서 살려주셨으니 죽기까지 충성하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성도 50명이 하는 헌금보다 나 혼자 하는 헌금이 많다고 목사님이 간증하셨고 1,000명 중에 10,000중에 하나 날까 말까 하는 믿음이라고 간증하셨다.
그런데 왜 신앙에 갈등이 왔는가? 일하다 시간이 나면 교회를 자주 찾았다. 그때마다 목사님은 TV를 보고 계셨다. 매번 그런 모습을 보게 되니 ‘목사님, 조는 모습이라도 좋으니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세요.’ 당시의 내 생각은 교회가 부흥되어야 내가 잘되고 교회가 복을 받아야 내가 복을 받는다는 믿음이었다. 그런데 목사님은 여전히 TV를 애청하셨다. 신앙의 갈등은 갈급한 심령이 채워지지 않을 때 생기는 것이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 1989년도 학생체육관 이초석 목사님 집회에 참석할 때였다. ‘하나님! 교회를 옮겨야 된다면 오늘 기도가 최고로 잘되게 하옵소서.’하고 기도하는데 얼마나 기도가 잘되는지 기도가 하늘에 상달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설교를 듣는데 ‘초등학생들 가운데서 1등 하지 말고 꼴찌를 하더라도 대학생들과 같이 놀아야 배울 것이 있다.’는 말씀이 나의 마음에 꽂혔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예루살렘교회 도봉 기도처에서 차량 봉사와 조장 직분을 감당하게 되었으며 부자도 아닌데 부자 집사가 왔다고 성도들은 좋아들 했다. 주일날과 철야 예배는 의정부 성도들을 올림픽공원으로 인도하며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봉사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헌신과 봉사가 헛되지 않았고, 이초석 목사님의 열정과 교회 부흥과 성령의 역사하심에 모든 사람이 은혜가 충만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이승효 목사
Sungyeha@hanmail.net
35년 만에 기도 응답
오랜 바램의 기도가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 길고 긴 세월 동안의 기도는 남편이 부디 제발 술에서 놓임을 받는 것이었습니다. 금식기도와 작정기도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길고 길었고, 때로는 포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애통했으니, 이토록 간구했으니 끝이 있을 거야.’라는 생각으로 남편을 바라보다가, 아니면 실망하며 인간적인 해결을 시도하고 또 좌절하고….
그러던 어느 순간 나를 내려놓는 삶을 살겠노라고 주님께 기도하기 시작했고, 남편을 바라보던 시선에 사랑을 담았습니다. 늘 입버릇처럼 ‘ㅇㅇ엄마, 회개했어?’라는 남편의 물음에 ‘놀고 있네~. 회개는 무슨, 당신이나 회개하시지.’ 그러던 입술에서 회개의 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외면하고 오로지 ‘내’ 뜻대로 기도하며 지내왔던 시간들이 진심으로 반성되었습니다.
‘내려놓음’, 주님의 십자가 앞에 삶의 숙제를 내려놓기를 원하셨던 주님이심을 몰랐습니다. 나의 의지로 기도했으니
‘주님, 왜 제 뜻대로 응답을 안 해주시는 거죠?’ 했었다. 주님께서 원하셨던 기도의 모습은 당신의 십자가 앞에 모든 것을 내려두고 말씀으로 찾아오신 주님을 만나기를 원하셨음을 너무 늦게 깨달았습니다.
가족을 향한 소망을 가지고 사랑으로 바라보며 가족이 건강해지고 행복해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주님을 향했다면 분명히 믿음대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을 텐데, 주님의 말씀은 아랑곳없이 오직 내 뜻대로 이루어지기만을 바랐던 기고만장의 자세를 내려놓았습니다.
세 치 혀로 아무리 떠들어봐야 자녀도 남편도 그 말에 귀 기울여주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지신 주님의 사랑을 몸에 입고 그들을 향한 독선의 발언을 내려놓고 내려놓음과 비움을 주님 닮은 겸손의 삶으로 실천할 때 그래도 한번 나를 흘깃 바라보는 남편과 자녀의 시선을 느낍니다. 가족의 부드러워진 모습은 주님 앞에서 변화된 나의 모습이 투영되었음을 알아갑니다.
주님 앞에서 내려놓는 버림은 삶의 미학임을 너무 늦게 깨달았습니다. 사업도, 건강도, 가족의 행복도 모조리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내려놓는 순종의 삶에서 시작됨을 지금이라도 깨닫게 해주신 그분의 사랑에 감사드리며,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바라고 꿈꾸는 것들이 믿음대로 실상이 되어 전개되어가도록 인도해주시는 주님께 모든 영광 드립니다.
오자유 집사
Sungyeha@hanmail.net
GOOD NEWS
1971년도 성탄절에 서울 충무로에 있는 대연각 호텔에서 대형화재가 발생하여 191명(실종자 포함)이 사망하고 63명이 부상을 당했다. 역대 화재 사고로는 아직도 세계 최대의 호텔 화재로 기록되고 있으며, 미국의 9.11테러 사건이 발생하기 전에는 세계 최대의 건물 화재 사건이었습니다.
대연각 호텔은 22층이었는데 당시 서울시의 소방서에는 제일 높은 고가사다리차가 32미터밖에 안 되어서 7층 이상은 감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화재 현장을 생중계하고 있었는데 놀란 투숙객들이 침대 매트리스를 안고 뛰어내렸지만 공기의 저항으로 매트리스는 날아가고 추락사한 사람들이 무려 38명이나 되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 그 광경을 보면서 궁금증이 하나 생겨났습니다. 불에 타서도 죽고, 떨어져서도 죽는데 왜 저렇게 위험을 무릅쓰고 뛰어내렸을까? 그만큼 불이 주는 공포가 엄청나다는 것입니다.
대연각 호텔에는 뛰어내릴 창문이라도 있었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고 죽은 사람들이 가게 되는 지옥에는 도망치고 싶어도 도망갈 수 있는 탈출구가 없으며, 죽고 싶어도 죽을 수가 없는, 영원한 고통의 형벌을 피할 수 없는 곳입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꺼지지 않는 불지옥에 가서는 아니 됩니다.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으로 가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예수로 말미암지 않고는 결코 하나님 나라에 갈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지옥의 판결을 면하고 영생 복락의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선택은 나의 몫입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4:12).
상화평 목사
sanghwapyung@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