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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4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믿음의 말을 들어야 믿음이 성장한다(막9:23)

1154호 · 2022-06-19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14:14).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응답하시겠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예수의 이름’이 어떤 이름이기에 이렇게 말씀하신 것일까요? 마태복음 1장에 보면 처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되었을 때 주의 사자가 나타나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했습니다(마1:21). 그런데 이것은 단순한 이름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7장에 세상에 두고 갈 제자를 위해 기도하시면서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요17:1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의 이름이 아버지의 이름’, 곧 ‘하나님의 이름이 예수’라는 겁니다. 예수 외에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이 없음은 바로 예수의 이름이 하나님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행4:12).

더욱 놀랄 만한 일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지 사흘 만에 부활 승천하시고, 그 이름으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주셨는데, 요한복음 14장 26절에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성령의 이름도 ‘예수’라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이 ‘예수’라는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三位)가 일체(一體)이심이 증명된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요, 우리와 함께 있는 하나님의 이름은 ‘예수’입니다. 그런고로 우리가 부를 수 있는 이름은 ‘예수’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예수 이름으로 오신 성령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성령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구약 때는 하나님의 이름조차 부를 수 없었지만, 예수님이 지상에 계실 때는 극소수의 사람만 그분을 뵐 수 있었지만, 성령 시대인 지금은 예수를 믿고 회개만 하면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예수 이름으로 우리 안에 친히 오시는 것이니 복 중의 복이라 할 수밖에요.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계시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한마디로, 빛이 들어오면 어둠이 떠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어두컴컴해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잘 보이고, 어두워서 도둑이 들끓었는데 도둑이 떠나가고, 어두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는데 빛 가운데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소멸치 말라, 성령 충만해라’(살전5:19) 신신당부하신 것입니다. 성령을 잃는 것은 빛이신 하나님도, 예수님도 다 잃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그럽니다.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그러면 주의 종들조차도 하나님은 보여줄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하나님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어떻게요?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보여주면 됩니다.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계심이 아닙니까? 그러니까 귀신을 내쫓고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벙어리를 말하게 하고, 귀머거리를 듣게 해야 합니다. 무엇으로요? 하나님의 이름인 예수 이름으로요.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심지어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만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어도 나음을 받은 이유가 뭡니까? 이겁니다.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 권세와 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아 만일 병인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행4:7~10). 성령 충만을 입은 것은 하나님이 내 안에, 예수님이 내 안에 함께 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귀신을 쫓고 각색 병을 고치는 것도 제 이름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인 예수의 이름으로 하는 것입니다.

빌립이 예수님께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했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요14:9~10)고 하셨습니다. 도토리 안에 참나무가 있다고 해도 사람들은 잘 모릅니다. 그러나 도토리를 심어 나무가 자라면 그때야 믿게 되지요. 예수님은 온전한 하나님의 현현(顯現)입니다.

베드로, 바울이 사도여서 그런 능력이 나타난 것이 아니지요? 예수 이름으로 오신 성령이 함께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을 받은 우리도 그런 능력이 나타나야 옳은 겁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막16:17~18).

더욱이 과학의 힘으로 넓은 공간을 쉽게 뛰어넘는 시대를 사는 요즘은 예루살렘에서만 복음을 전하신 예수님보다 큰일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14:12)는 말씀을 이루게 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예수 이름의 권세와 능력이 잘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제가 싱가포르 세계목회자세미나에 갔을 때, 저를 통해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자 많은 주의 종들이 몰려들어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능력이 나타나냐? 왜 우리는 같은 주의 종인데 그런 능력이 없는 거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때 이렇게 답해줬습니다. “먼저는 기도로 성령 충만을 입어야 하고, 둘째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내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건 신앙이 아니라 신념입니다. 효도도 부모님 뜻대로 해야 옳거든, 하물며 신앙생활을 내 뜻대로 한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실까요?

신앙생활은 내 뜻, 내 지식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뜻대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2장에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마12:50)고 하셨고,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7:21)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고후1:18)고 했고, 잠언에도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잠19:21)고 말씀하심은 내 생각과 계획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막8:34)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이 바로 내 뜻, 내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 뜻과 생각대로 가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예수님도 자기의 뜻을 접고 하나님의 뜻대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22:42).

그런데 이 말씀을 잘 보세요.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6~8). ‘자기를 비어’, 자기의 뜻을 접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아버지 뜻대로 십자가에서 죽었더니,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셨다”

(빌2:9~10)고 하셨습니다.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 뜻대로 살 때 예수님이 받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가 내 것이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과 씨 속에

사과나무가 있다

내 뜻을 버리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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