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의 고백, 감사!
은혜의 고백, 감사!
멕시코의 한 마을에 온천과 냉천이 함께 솟아나는 곳이 있다. 동네 여인들은 빨랫감을 가지고 와서 온천에서는 빨래를 삶고 냉천에서는 깨끗이 헹구어 집으로 가져가곤 했다. 그 모습을 본 관광객이 안내원에게 말했다. “여기 사람들은 찬물과 더운물을 마음껏 쓸 수 있으니 하나님께 감사해야겠네요.” 그러자 안내원은 말했다. “천만에요! 이 마을 사람들은 찬물과 더운물은 주셨으나 빨랫비누를 주시지 않았다고 불평한답니다.”
은혜를 모르면 감사는커녕 불평만 쏟아내게 되어있다. 목사님은 늘 교훈하신다. “흐르는 물 한 컵을 떠줘도 그 은혜를 잊지 말라.”
이스라엘 백성의 불행은 바로 그 은혜를 잊은 데에 있다. 광야 생활 내내 내리신 만나, 고기, 반석의 물 등 하나님의 은혜는 간데없고, 감사하지 못하며 지난날 먹고 누렸던 것만 생각하며 아무것도 없다고 불만, 불평을 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고….’가 아니라 오히려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고’라며 감사할 때 하나님은 화가 복이 되는 역사로 이루실 것이다.
구름 너머에 찬란한 태양이 있음에도 그것을 보지 못하고 눈앞의 구름만 보고 있다면 그것은 불행이다. 비록 현실은 구름이 끼어 있다고 할지라도 그 너머에 있는 태양을 바라보며 감사하자. 붉게 물든 석양을 보면서 동시에 내일의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가지자. 믿음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히11:1). 보이는 상황과 환경에 좌절치 말고 바라는 믿음에 따라 감사하자. 하나님의 뜻은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다(살전5:18).
김상욱 목사
ksw9669@hanmail.net
나의 간증을 들어보세요
마음에 소원하는 바를 두고 신년에 3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금식 첫날, 부르짖으며 기도하는 중에 성령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진실아, 너는 왜 나를 전적으로 믿지 못하느냐.’ 그 순간 세상의 지식과 사람의 말에 흔들려 믿음을 무너뜨렸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고 죄책감에 휩싸였습니다. ‘나는 네가 믿음의 주인공이 되길 원한단다.’ 다시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에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을 과소평가했던 지난날을 눈물로 회개하였습니다. 저는 기도 가운데 떠오르는 다섯 개의 기도 제목을 노트에 적었고, 다음날 아침부터 순차적으로 응답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빌려주고 받지 못했던 돈이 생각나서 기도하였더니 통장에 돈이 들어온 사건과 원인 모를 생리불순으로 병원까지 갔던 제가 금식 기도 후에 다시 정상적으로 회복된 사건은 평생에 잊지 못할 응답들입니다.
하루는 머리가 깨질 듯한 두통에 시달리고 있는데 믿음으로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약을 먹는 즉시 통증이 가라앉았던 나의 경험을 내려놓고 거울을 보며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았습니다. 서너 번을 쫓았을까요? 머리를 짓누르던 통증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습니다. 할렐루야! 그때 하나님께서는 밤새 허탕 친 베드로가 자신의 경험을 버리고 예수께 순종하여 오른편에 그물을 던졌더니 찢어질 정도로 고기를 잡았다는 요한복음의 말씀을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내가 가진 편협한 지식과 경험을 버리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따라가며, 믿음을 보여드릴 때 놀라운 기적을 맛볼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지금, ‘이건 되고, 이건 안돼’라며 스스로 한계를 긋고 계시는지요? 총회장 목사님께서는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전지전능하심을 인정해드리는 것이 바로 믿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문제를 보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믿음을 보신다고 일평생 외쳐 오신 목사님. 우리는 목사님의 견고한 믿음을 통해 나타난 수많은 이적과 기사와 표적들을 지금도 목도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시는 능력의 하나님, 당신의 명예를 걸고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간구를 들어주심을 믿습니다. 우리 모두 목사님의 믿음을 본받아 기도합시다!
김진실 사모
하나님의 인도하심
졸업 연한을 1년 앞두고 한창 논문 작업을 하던 중이었다. 4월 중에는 교수님을 찾아뵙고 논문 주제를 확정 지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사람 일은 사람이 계획하는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어느 날, 일어났더니 허리가 너무 아팠다. 앉을 수도, 일어날 수도 없을 정도로 아파서 혼미한 정신으로 병원을 찾았다. 그 자리에서 디스크 판정을 받았고, 신경 주사를 맞았다. 그렇게 병원 두 곳을 더 돌았고, 지금은 치료를 받으며 요양 중이다. 계획했던 논문 작업은 모두 중단되었다. 가을학기 졸업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이 너무 속상하고 답답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이제 한 달이 다 되어간다. 이제 처음에 느꼈던 분노와 억울함은 가라앉았고, 회복에 집중하고 있다. 이런 나를 위로한 것은 이 말씀이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16:9). 내가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하나님임을 되새기고 또 되새겼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허리는 여전히 아프고, 30분만 앉아있어도 통증이 심하다. 다시 논문을 쓰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쓰는 일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이제야 깨닫는다. 20분 내외의 산책을 하면서 두 발로 걸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식탁에 앉아 간신히 밥을 먹고, 누워있어도 소화가 잘되게 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다.
지난 시간, 내 삶을 계획하고 인도해주신 이는 하나님이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항상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을 나에게 허락해주셨다. 일일이 다 헤아릴 수 없는 어려운 상황과 그 상황보다 더 좋은 것을 베풀어주셨던 하나님이셨기에, 감히 평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비록 이번 학기의 졸업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내가 눈으로 보지도 못하고, 귀로 듣지도 못하고, 상상도 하지 못했던 놀라운 일이 기다리고 있음을 알고 있다.
나의 인간적인 생각과 시각으로 이 상황을 평가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생각과 인도하심을 감사함으로 기다리는 믿음의 크리스천이 되기를 다시 또 기도한다.
전훈지 집사
늑대의 오명
늑대는 자연계에서 몇 안 되는 단혼제를 지키는 독특한 동물입니다. 애처가라고 할 정도로 수컷 늑대는 암컷이 죽기 전까지 절대 바람을 피우지 않으며 오직 일부일처제만 고수합니다.
수컷 늑대는 평생 한 마리만의 암컷만을 사랑하고 암컷이 먼저 죽으면, 가장 높은 곳에서 울어대며 슬픔을 고하다가 결국 통곡까지 한다고 합니다.
또 수컷 늑대는 자신의 암컷과 새끼를 위해서 다른 천적들과 싸우기도 하며, 암컷이 죽어서 간혹 재혼한 수컷 늑대라도 과거의 새끼들까지도 책임지고 키운다고 합니다.
모든 늑대가 꼭 저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우리가 알고 있는 늑대에 대한 인식과 달리 대부분의 늑대는 그들은 가정에 충실하고, 부부애는 독특할 정도로 애틋합니다.
우리는 음흉한 남자를 가리켜 흔히 ‘늑대 같다’고 표현합니다. 잘못된 인식,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겁니다.
이는 늑대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겁니다. 빨간 안경을 쓰고 있으면 온 세상이 빨갛게 보입니다. 하늘도 빨갛고, 나무도 빨갛고, 사람들도 다 빨갛게 보이게 됩니다. 이것이 편견(偏見)입니다. 이 편견을 이겨낼 장사가 어디 있겠습니까? 편견은 편견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죄로 이어지기 때문에 무서운 것입니다. 제대로 세상을 보려면, 제대로 사람을 보려면 투명한 안경을 껴야 합니다. 편견을 버려야 합니다. 투명한 안경을 끼세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눅6:41~42).
최고의 영성 충전소
스마트폰 쓰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는 요즘이다. 그런 스마트폰 유저들이 꼭 해야 하는 일이 하나 있다. 다음 날 스마트폰 사용을 위해 잘 때 충전을 하는 일이다. 쓰면 쓸수록 배터리 잔량이 낮아지고 방전되니, 충전기에 꽂아 놓고 밤새 길게 충전해야 다음 날 온종일 사용하는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스마트폰을 사용할수록 배터리가 방전되는 것처럼 우리의 영성도 세상에서 싸우며 조금씩 방전된다. 세상에서 이리저리 치이고 세상 사람들과 함께 바쁘게 살아가다 보면 때론 성령 충만도 떨어지고 감사를 잃어가기도 한다. 그래서 이렇게 방전되고 낮아진 영성 배터리를 다시금 충만하게 채울 필요가 있다. 언제든 그 나라에 넉넉히 들어갈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럼 우리의 영성을 가장 잘 충전하는 곳은 어디일까? 바로 교회이고, 특별히 예배의 시간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예배 자리에 앉는 순간 내 영성을 채워주는 충전소의 충전 잭이 나에게 연결된다고 말이다. 따라서 예배에 와서 예배 자리에 앉으면, 때론 잠시 말씀에 집중 못하고 설령 깜박 졸 때가 있어도 여전히 충전 잭은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그 순간에도 내 영성은 조금씩 채워져 간다.
이렇게 주일날 채워진 영성이 조금씩 떨어질 만하면 수요예배가 있어서 다시 채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천국에 갈 때까지 성령 충만하게 살려면, 좋건 싫건 내 영성을 다시 채우기 위해 충전 잭을 자주 연결해야만 한다. 그래서 예배의 자리를 더욱 사모하고 그리워하며 사수하려 애쓰는 것이다. 물론 기도와 말씀 생활을 하며 스스로 자가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예배만큼 더 강력하고 확실한 것은 없다. 육을 채우고 혼을 채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을 먼저 채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는 만큼, 최고의 영성 충전소인 예배의 자리를 반드시 사모하고 사수하는 축복의 성도가 되도록 함께 노력하자.
장명훈 집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