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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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3호 목차 › 세상을 보는 창

주께 맡긴 삶

1143호 · 2022-04-03
아름다운 인생

주께 맡긴 삶

‘드디어 개강이구나!’ 지원서를 낸 지 2년 만에 신학원이 개강을 했다. 설렘과 기대가 가득하다. 더불어서 처음 시작하는 것들이기에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내면에서는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긴장감도 있다.

그때마다 나를 다잡는 것은 ‘하나님 말씀은 이해하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고 따라가다 보면 이해가 되는 거다. 순종하면 명령권자가 책임지게 되어있다.’는 총회장 목사님의 말씀이다. ‘나는 이제 이은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일을 수행하는 자다. 뒷일은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무엇이든지 100% 순종하며 나아가자.’ 마음을 먹으니 마음이 평안했다.

그런데 얼마 전, 방송실에서 총회장 목사님께서 우크라이나에 대해 언급하시다가 저를 보시고 “누가 알아? 네가 우크라이나에 갈지?” 말씀하셨을 때 ‘아멘’으로 화답했다. 이미 나는 이은성이 아니라 주님께 맡겨진 인생이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아멘이 가능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순종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온전히 하나님께 맡긴 내 인생,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하나님이 책임지시지 않을까.

하나님께 온전히 맡긴 인생이 가장 편한 인생이다. 하나님이 알아서 해주시고, 길을 열어주시고, 거기에 책임까지 지어주시니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내가 신학도로서 이제 배워야 할 것은, 오직 ‘예’ 하는 순종이다. 사도 바울처럼, 우리 목사님처럼. 어린아이와 같이 순종하고 따라가다 보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나는 변화할 것이라 믿는다.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저를 의지하면 저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시37:5~6).

이은성

생명의 말씀

낮게 나는 새가 자세히 본다

코로나를 계기로 교회에 잘 나오지 않으시는 성도에게 연락을 했다. 그리고 심방을 가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잠시 후 다시 연락이 와서 심방을 매몰차게 거절하신다. 이유인즉슨 하나님께 실망했다는 거다. 자초지종을 물으니, 열심에 비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가 마음에 안 드는 거였다. 이해를 시켜드리려 말하려 해도, 내가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으시고 혼잣말만 되풀이하시다 냉정하게 끊으셨다. 신앙생활을 시작하신지 얼마 안 된 터라, 신앙에 대한 이해도가 아직은 부족하기에 설명이 필요했지만, 그 굳게 닫힌 문을 하나님께서 열어달라고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누구나 내 노력의 열매를 금방 거두고 싶겠지만, 신앙생활이란 멀리 보면서 동시에 가까이 보고 인내해나가야 하는 천로역정이다. 그러기에 그 성도에 대해 더욱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조금만 더 참으시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물러 있으면 좋은 날을 보겠건만 말이다.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는 명언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런데 살다보면 반대의 말도 기억해야할 때가 있는 것 같다. 바로 ‘낮게 날아야, 자세히 볼 수 있다’는 명제이다. 멀리 보는 원대한 시각이 우리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영적 원근감을 상실할 때는, 현실감각 없는 이상주의자, 또는 현실 도피주의자가 될 수도 있다. 오늘을 살아야 내일이 변화되는 것 아니겠는가? 나의 원대한 계획과 소망은 지금 이 순간 당면한 문제들을 풀어나갈 때 나에게 응답으로 다가온다. 과정을 비약하여 열매만 성큼 내놓으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다백성들에게 하나님은 원근통시(遠近通示)적인 말씀을 하신다. 멀게는 70년 후 해방의 희망을 가지지만, 가깝게는 지금 현재 포로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라는 명령이셨다(렘29:5~10).

높이 날다가도 가끔은 낮게 날아 나의 삶의 자리를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내 신앙의 좌표가 어디에 있는지, 제대로 가고 있는지 말이다. 나를 온전히 인식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한다면 얼마나 답답해하시겠는가? 나 자신을 객관화하여 나를 냉정하게 평가해볼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 유다백성을 향한 포로생활의 계획들이 재앙이 아니라 평안과 희망의 ‘과정’이라는 것을 기억하면서 말이다(렘29:11).

송직화 목사

믿음의 터를 다지며

기도와 기적

미국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아주 심한 화상을 입고 생사의 기로를 헤매는 십대 초반의 어린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 임상실습을 나온 의과대학생 한 명이 중환자실에 들어갔습니다. 이 의대생은 소년의 의무기록을 보고 상태와 나이를 확인한 다음, 침대 옆에서 소년의 손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한 후 중학교 2학년 과정에 해당하는 영어문법의 동사 변화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소년이 알아듣는지, 못 알아듣는지 확인할 수 없었지만 의대생은 며칠 동안 빠짐없이 소년의 손을 잡고 간절히 기도하며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화상 전문의들이 회복 가능성이 아주 희박하다고 판정을 내렸던 이 소년의 상태가 기적같이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한 주, 두 주가 지나면서 완전히 고비를 넘기고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음에 의료진 모두가 놀랐고, 다들 이 소년의 회복 원인에 대해 궁금했습니다. 얼굴과 사지의 붕대를 풀던 날 소년에게 물었습니다. 소년의 대답이 걸작이었습니다. “사실은 저도 가망이 없다고 스스로 포기하고 있었는데, 한 대학생 형이 들어와서 손을 잡고 기도하면서 다음 학기 영어시간에 배울 동사 변화를 가르쳐주기 시작해서 놀랐어요! 그 형은 ‘네가 나아서 학교에 돌아가면 이것들을 알아둬야 공부에 뒤떨어지지 않을 거야’ 라고 하더군요. 그때 저는 확신했죠. ‘아, 의사 선생님들이 내가 나을 수 있다고 판단했나 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나에게 다음 학기 영어를 가르쳐줄 리가 없지!’ 그때부터 마음이 기쁘고 소망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미국의 한 대학병원에서 일어난 실화입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봉사한 한 의대생의 행동이 기적을 일으킨 것입니다. 기도와 구제는 누군가에게든 희망이 되어 기적을 일으킵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일으켜 세웁니다. 지난해 12월 5일, 저는 코로나백신 접종 2일 후 급성후유증이 발생하여 위급한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치명률 90%인 급성호흡곤란증후군(ARDS)이 발생하였습니다. 저는 중환자실에 입원하여 인공호흡기를 달고 무의식상태에 빠졌습니다. 입원 다음 날 병증이 너무 심하여 오늘을 못 넘긴다면서 의료진은 가족들을 불러 사망 전 얼굴 한번 보시고 장례 준비하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의사인 만큼 의료진들도 특별히 많은 전문의사 10명이 모여 긴 진료협의를 거쳐 의료의 한계상황을 결정하였습니다. 캐나다에 유학 중인 제 딸이 급거 귀국하고 난리가 났습니다. 제 나이 만 62세에 벌어진 일입니다. 저는 의식이 없었으므로 기적적으로 소생한 후 화급한 소요사태가 있었음을 깨어난 후 알게 되었습니다. 전문의들이 모여 힘들다고 의료의 한계를 선언하였기에 의사들에게 매달릴 수 없었습니다. 제 아내는 낙담과 절망 속에서 애절한 심정으로 총회장 이초석 목사님께 이 급박한 상황을 전하였습니다. 목사님께서는 당장 병원으로 오시겠다고 하셨지만 대학병원 중환자실은 의사이거나 직계가족 외에는 출입이 통제되는 곳입니다. 코로나 사태로 통제는 더 심해졌습니다. 이때 목사님은 제 동료 의사인 김재영 원장을 부르시고 김재영 원장에게 안수기도하시며 이대로 지금 중환자실로 달려가 생명의 불꽃이 경각에 달린 제게 안수기도를 하게하셨습니다. 블루투스 안수기도입니다.

이때 기적이 일어납니다. 김재영 원장은 목사님의 지시 그대로 중환자실에 들어와 내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하는 가운데 내 머리를 통해 김재영 원장의 두 손에 뜨거운 불이 임하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 믿음의 안수기도를 통해 저는 기적적으로 소생하게 됩니다. 나는 10여 일 후 의식을 회복하고 의료진을 놀라게 하며 살아났습니다. 할렐루야! 100% 하나님의 역사이며 은혜입니다. 믿음의 기도가 죽어가는 저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퇴원 후 제 폐의 X-RAY와 전산화단층촬영(CT) 영상들을 보았습니다. 폐의 90%가 이미 손상되어 있었습니다. 의사인 내가 보아도 치명률은 90% 이상의 상태였습니다. 정말 하나님 은혜이고 기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의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저를 구원하셨습니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케 하셨도다”(시40:2). 다윗의 찬송시로써 찬양을 대신합니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돌아왔습니다. 또 하나의 시작이었습니다. 양치질하고 세수하고 옷 입는 일도 누가 옆에서 도와주어야 하고, 걷는 것도 어린아이처럼 새로운 걸음마 연습을 해야 했습니다.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서 앉아 쉬어야 했습니다. 기적은 하늘을 날거나 바다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땅 위를 걷는 것이 기적이라는 중국 속담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는 하늘을 날고 물 위를 걷는 기적을 이루고 싶어 안달하며 무리를 합니다. 땅 위를 걷는 것쯤은 당연한 일인 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건강을 유지하고 평범한 일상생활을 하는 것은 사실 기적입니다. 수많은 병들이 지뢰처럼 널려있는 위험 속에서 우리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저 내 힘으로 건강하고 일상을 영위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의사인 저도 그랬습니다. 오만이고 교만인 것을 이번에 깨달았습니다. 우리들이 입으로는 감사를 외치지만 평범한 일상이 하나님이 베푸신 기적이고 그래서 범사에 감사하며 진정으로 은혜를 느끼는 사람은 적은 것 같습니다.

안구 하나 구입하려면 1억, 눈 두 개를 갈아 끼우려면 2억이 들고 신장 바꾸는 데는 3천만 원, 심장 바꾸는 데는 5억 원, 간 이식하는 데는 7천만 원, 팔다리가 없어 의수와 의족을 끼워 넣으려면 더 많은 돈이 들어갑니다. 지금 두 눈을 뜨고 두 다리로 건강하게 걸어 다니는 사람은 몸에 51억 원이 넘는 재산을 지니고 다니는 것과 같습니다.

도로 한가운데를 질주하는 어떤 자동차보다 비싼 훌륭한 두 발 자가용을 가지고 세상을 활보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갑작스런 사고로 앰뷸런스에 실려 갈 때 산소 호흡기를 쓰면 한 시간에 36만 원을 내야 합니다. 눈, 코, 입 다 가지고 두 다리로 걸어 다니면서 공기를 공짜로 마시고 있다면 하루에 860만 원씩 버는 셈입니다. 우리들은 51억짜리 몸에 하루 860만 원씩 공짜로 받을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요?

우리는 종종 기도 부탁을 받게 됩니다. 이럴 때 기도 부탁을 하는 분은 절박하고 힘들고 감당하기 버겁고 탈진하여 기도가 나오지 않는 상태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기도 부탁을 하는 것입니다. 이 때 우리는 전심으로 반복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믿음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십니다. 그리고 그 기도와 간구에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지금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막9:29),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찌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5:15~16).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말미암는 구원의 복음 전도는 멀리 있지 않습니다. 병마와 간난신고로 어려움에 처한 이웃과 친지, 그리고 교우들과 새신자에게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으며 간구와 기도로써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기도의 능력을 힘입어 날마다 주님께 영광 돌리며 우리 믿음의 씨앗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거두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수중심교단의 성도들의 귀하고 축복된 삶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할렐루야, 아멘.

신우신경외과 재활의학과

(메디스템 줄기세포센터)

대표원장 안계훈

빛이 되리라

가치와 철학

요즘 스마트폰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용하는 앱이 하나 있다. 카카오 회사가 운영하는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이다. 거의 모든 국민이 이 앱을 사용하다 보니 카카오는 이를 통해 많은 수익을 창출한다. 선물기능, 페이기능 및 여러 핀테크 기술 접목을 통해 네이버와 함께 국내 최고 IT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런 화려한 성장을 이끈 카카오 회사 대표의 생각과 철학은 어떨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네이버 vs 카카오’라는 책을 통해 그들의 가치와 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 아래와 같이 총 5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1) 가보지 않은 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2) 무엇이든 본질만 남기고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본다.

3) 나보다 동료의 생각이 더 옳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다.

4) 스스로 몰입하고 주도적으로 일한다.

5) 세상을 선하게 바꾸려고 노력한다.

어느 하나 나무랄 데 없이 모두 훌륭하고 멋지지만, 그중에서도 마지막 5번째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바로 세상을 선하게 바꾸려고 노력한다는 부분이다. 잘 알다시피 선의 반대는 악이다. 세상을 악하게가 아닌 선하게 바꾸려고 노력한다는 것이 우리 크리스천이 가져야 할 덕목과 닮아 있다.

그들이 그 회사를 통해 세상을 선하고 아름답게 바꾸려 고군분투하는 것처럼 우리 크리스천들도 각자가 세상을 선하게 바꿔가야 한다. 각 처소에서 예수의 향기를 발하며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능력 있고 인정받는 크리스천이 되도록 함께 노력하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마5:14~15).

장명훈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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