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는 죽어도 전쟁은 이겨야 한다
“병사는 죽어도 전쟁은 이겨야 하고 핍박과 순교가 온다 해도 예수는 증거 되어야 한다!”
이 슬로건은 목사님의 목회철학이자 어찌 보면 초대교회로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선교의 역사를 응축한 표현이기도 한다. 초대교회 스데반 집사의 순교로부터 시작하여 지금도 지구촌 어디에선가 이름도 빛도 없이 예수의 이름 때문에 목숨을 걸고 있는, 혹은 순교의 신앙을 이어가고 있는 선교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때부터 지금까지 순교자의 피로인해 선교의 역사는 결코 중단된 적도 없고, 오히려 더 많은 믿음의 일꾼들이 일어나 그 피를 자양분 삼고 예수 그리스도는 더욱 강력히 증거 되어왔다. 병사가 죽는다고 전쟁을 멈추고 항복한다면 남는 것은 역사적으로 역대 패전국들이 당해왔던 수모가 보여주듯, 전 국민이 승전국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인들을 단결시켜 군사강국 러시아에 대항하는 모습은, 그래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핍박과 순교가 극심하여 예수 증거의 사역을 멈춘다면, 악한 마귀에게 종노릇하는 암울한 세상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순교자가 나올 때마다 교회는 더욱 왕성해졌고, 선교의 역사도 그 왕성한 힘으로 세계를 향해 줄기차게 뻗어져나갔다. 교회의 힘은 자신의 목숨까지도 내어놓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기 위해 헌신하는 크리스천의 신앙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지난주 화요일, 17년간 일본 나가노에서 목회하시던 강일석 목사님이 60세의 나이에 소천하셨다. 우리 교단에서 해외에 파송한 선교사가 사명을 감당하다가 이제 그 수고를 마치고 안식에 들어갔다. 이는 교단적으로도 우리 모든 성도들이 기억해야할, 그리고 그 사명을 이어가야할 책무가 있다고 믿는다.
목사님은 지난 수요예배를 통해 “만약 우리가 이생뿐이면 불쌍한 자다.”라는 주제로 강일석 목사님의 소천 소식을 교단에 전하시며 유족을 위로하는 한편, 우리의 신앙이 지향해야할 바를 말씀하셨다.
“일본 나가노의 강일석 목사님이 소천했습니다. 유족들에게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우리의 삶이 이생뿐이라면 우리가 주를 위해 힘쓰고 애쓰는 모든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가 얼마나 불쌍한 자입니까?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는 것처럼, 죽음 다음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어 영생과 영멸의 두 갈래 길로 갈라지며, 우리가 이 땅에서 주를 위해 수고하고 헌신한 모든 것들은 행한 대로 갚아주시고 상 주시는 의로운 재판장 예수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보상해주신다는 믿음이 있기에 사도 바울이 그날의 면류관을 기대하며 달려갈 길을 다간 것처럼, 비바람이 앞길을 막아도 우리는 이 길을 계속 달려갈 것입니다. 내가 세상의 쾌락을 몰라서, 쉴 줄을 몰라서 이러는 게 아닙니다. 나는 세상에서 부도 누려봤고, 정치까지 꿈꾸며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세상을 잘 알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아무리 먹어도, 먹어도 목이 말랐습니다. 그러다 예수를 만났습니다. 세상이 줄 수 없는 기쁨과 소망의 생수를 주셨습니다. 나는 그러기에 지금 70이 훌쩍 넘은 나이에도 편안함을 거부한 채 주를 위해 달려가는 것입니다. 세상은 은퇴를 이야기하지만, 주의 종이 무슨 은퇴입니까? 아니 주인이 그만하라고 하신 적이 없는데 어찌 종이 제 맘대로 그만둡니까? 나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주님이 그만 쉬라 하실 때까지 나는 이 사명을 멈출 수 없습니다. 나는 여러분들도 나를 본받기 바랍니다. 다른 건 몰라도 나의 주군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까지 내어놓고 헌신하는 나의 믿음만은 본받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언젠가 그날에 우리가 행한 대로 갚아주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며, 천국에서 영원한 면류관을 받고 믿음의 전당에 새겨질 그날의 영광을 위하여, 비바람이 불어도, 눈보라가 몰아쳐도, 핍박과 순교가 온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됩시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