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친구는 어둠 속의 빛과 같은 존재다(요15:13~16)
“슬라바야, 힘내라.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나와 우리 교회가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걱정 마라. 종전이 되면 바로 내가 들어간다. 가서 무너진 교회를 다시 세울 것이고, 너희의 장래도 해결해줄 것이다. 힘내!”
저는 매일 우크라이나에 있는 슬라바 목사에게 문자로, 때론 전화로 이렇게 말해줍니다. 슬라바 목사는 문자로 ‘하나님이 목사님의 기도를 들으실 줄 믿는다.’고 했습니다. “물론이지. 그러나 내 기도만 들으시겠냐? 너의 절박한 기도도 듣고 계시니 걱정마라.”고 격려와 힘을 줍니다.
요즘 저는 목이 쉬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와 슬라바 목사, 그리고 세미나에 동참했던 많은 목회자들은 우리의 동지요, 친구입니다. 그들은 지금 성경 대신 잡아보지도 않던 총을 들고 적과 싸우고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생사를 알 수 없는 자들도 많습니다. 가슴이 찢어질 만큼 아프고 안타깝습니다.
여러분들은 물론 땅끝예수전도단 회원들도 모두 우크라이나를 위해 기도하며 물질로 후원하고 있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여러분의 작은 물질이 그들에게 엄청난 힘이 됩니다. 마치 어둠 속에서 만난 한 줄기 빛과 같을 겁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것과 같을 겁니다.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친구는 사랑이 끊이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까지 위하여 났느니라”(잠17:17). 부디 우크라이나에 종전이 될 때까지, 그 후 재건이 될 때까지 지속적으로 우크라이나를 위해 기도하고, 후원해주십시오.
여러분, 어려울 때 함께 할 수 있는 자가 진정한 친구입니다. 고난 중에 문득 생각나는 친구가 참 친구입니다. 슬라바 목사가 전쟁 중에 저와 우리를 생각한 것처럼 말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그런 친구가 있습니까? 그런 동지가 있습니까?
벌써 25여 년 전의 일입니다. 어느 날 고등학교 동창이 불쑥 저를 찾아왔습니다. 우리는 제3한강교를 거닐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친구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더니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병들어서 이제 얼마 못살 것 같네. 자네가 내 아내와 자식을 맡아주게.” 밑도 끝도 없는 그의 말에 저는 적잖게 놀랐습니다. 그는 “지난날, 내 동생 대학입학금을 대준 것도 자네였고, 내가 취업할 때 보증을 서준 것도, 병원비를 대준 것도 자네였네. 내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자네밖에 내 가족을 맡길 사람이 없어서 이렇게 자넬 찾아왔네.”라고 말했습니다.
그날 저는 그에게 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친구 예수를 소개해주고 집에 돌아왔는데, 밤이 깊도록 심란하여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정원을 거닐며 ‘나는 과연 세상을 하직할 때 내 가족을 맡길 사람이 있는가?’ 하고 깊이 생각했습니다. 당시에는 아무리 생각하고 생각해도 그럴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았구나.’ 싶었습니다. 그 후로 저는 진정한 친구를 얻기에 힘썼습니다. 지금은 제게 저를 위해 생명보다 귀하다는 물질을 아끼지 않을 친구, 위기가 왔을 때 저를 위해 희생을 마다하지 않을 친구가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동지로, 동역자로, 그리고 친구로 제 곁에 있습니다. 큰 자산입니다.
진정한 친구는 어둠 속의 빛과 같은 존재입니다. 다윗과 요나단이 그랬습니다.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의 대를 이어 왕위에 오를 왕세자였기에 어쩌면 요나단에게 있어 다윗은 정적 같은 존재였을 수 있었습니다. 전쟁마다 승승장구하는 다윗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나단과 다윗의 우정은 두터워만 갔습니다. 오죽하면 사울이 다윗을 감싸는 요나단에게 노를 발하며, “패역부도의 계집의 소생아…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삼상20:30~31)고 했겠습니까? 다윗에게 왕위를 빼앗길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나단은 아비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할 때마다 미리 알려주어 피신케 했습니다. 그들의 우정은 어려움에 직면하자 더욱 깊어져 ‘서로를 자기 생명처럼’ 귀히 여기게 되었습니다(삼상20:17). 다윗은 요나단이 블레셋 전쟁 중 길보아 산에서 사울과 함께 전사하자 애가(哀歌)를 지어 애도했고, 후에 생존한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에게 그의 조부모의 재산을 돌려주고 그를 자신과 한 상에서 먹게 하였습니다(삼하9:13)
여러분, 바람이 불어 나뭇잎이 떨어질 때야 비로소 나뭇가지가 보이는 것처럼, 우정은 위급할 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윗을 도왔던 37명의 용사처럼, 또한 바울에게 있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처럼 위급할 때 도와줄 수 있는 진정한 친구, 그런 급난지붕(急難之朋)이 내 인생에 하나쯤은 있어야 합니다.
“나 친구 많아.” 하십니까? 글쎄요. 제가 세상에 있을 때 친구가 참 많았습니다. 저와 친구가 되려고 난리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목회를 시작하니까 친구들이 하나둘씩 떨어져나갔습니다. 더욱이 제가 망했다는 소문이 돌자 행여 얼굴이라도 마주치면 돈 빌려달라고 할까봐 저를 피하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은 진정한 친구가 아니었습니다. ‘~ 때문에’ 친구였지요. 제가 돈이 많기 때문에 친구였던 겁니다. 여러분, 진정한 친구는 ‘~ 때문에’가 아니라 ‘~불구하고’의 친구입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망하고 괴롬 중에 있어도 불구하고 여전한 친구가 진정한 친구입니다. 그런 분이 계십니다.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요15:15)고 하셨습니다.
그 친구는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기꺼이 도와주시는 급난지붕(急難之朋)이며, 더욱이 친구인 우리를 위하여 기꺼이 목숨을 내어주는 문경지교(刎頸之交)인 분입니다. 우리의 허물로 인해 그 친구가 찔림을 당했고, 우리의 죄악을 인하여 그 친구가 상하셨고, 우리가 평화를 누리라고 그 친구가 징계를 받으셨고, 우리를 병에서 낫게 하시려고 그 친구가 채찍에 맞았습니다(사53:5). 또한 그 친구는 우리가 힘들 때 기꺼이 우리를 도우려고 준비하고 계십니다. 시편 말씀입니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 공동번역에는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나를 불러라. 구해주리라. 너는 나에게 영광을 돌려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죄 가운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병들어 있어서, 우리가 가난하기에 친구가 되어주신 것입니다. 환자에게 의사가 필요하듯 말입니다. 이런 친구를 만난 건 정말 큰 축복입니다. 그 분이 우리의 친구가 되어주심에 감사, 또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 요나단과 다윗의 우정을 잘 살펴보면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였다’라고 나옵니다. 다윗이 요나단을 사랑했다는 구절은 없습니다. 우정도, 베풂도, 용서도 가진 자의 몫입니다. 가진 자가, 있는 자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우리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친구로 청하신 것처럼.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15:16).
너무나 부족한 우리를 주님이 친구라 칭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어 친구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든 자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어려울 때 뒤로 꽁무니 뺄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 천국, 불신 지옥’, 이렇게 외치지 않아도 복음의 열매가 절로 맺히게 될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요15:16).
다시 말하지만, 진정한 친구는 어둠 속에 비치는 한 줄기 빛과 같은 존재입니다. 사막에서 오아시스와 같은 존재가 진정한 친구요, 목마를 때 한 잔의 생수 같은 것이 친구입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됩시다. 나로 인해 누군가 힘을 얻고, 누군가 소망을 얻고, 누군가 목숨을 건질 수 있다면 그보다 값진 일이 어디 있을까요?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요15:13). 할렐루야!
사막에서는
오아시스가 생명이다
진정한 우정은
어려울 때 나타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