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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6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부지런한 자의 전답에는 잡초가 없다(마25:24~30)

1136호 · 2022-02-13

2022년도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났습니다. 여러분 중의 대다수가 연초에 목표를 세웠을 겁니다. 그런데 그 목표가 얼마나 진행이 되었습니까? “뭐 이제 2월인데, 재촉은….” 하는 분들이 있을 텐데, 세월이 얼마나 빠른지 압니까? 눈 깜짝하면 한 해가 갑니다. 괜히 “세월을 아끼라”(엡5:16)고 성경이 말씀하신 게 아닙니다.

여러분, 목표를 세웠으면 기한도 아울러 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부지런을 떨게 됩니다. 움직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잠언에는 부지런의 표본으로 개미를 들었고,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로 가서 그 하는 것을 보고 지혜를 얻으라 개미는 두령도 없고 간역자도 없고 주권자도 없으되 먹을 것을 여름 동안에 예비하며 추수 때에 양식을 모으느니라”(잠6:6~8)고 말씀하셨습니다. 미물인 개미도 ‘먹이를 모은다’는 목표를 세웠음은 물론이고, ‘겨울이 오기 전에’라는 기한을 정했기에 근면과 성실로 가을까지 부지런히 일한 것입니다. 기한이 없다면요? 베짱이 신세가 됩니다. 베짱이도 먹이를 구해야 한다는 목표는 있었으나 기한을 정하지 않았기에 ‘내일, 내일’ 하다가 겨울이 닥쳐 구걸하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게으름은 마귀가 주는데, 그놈은 여러분에게 “부지런할 필요 없어. 게을러도 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말하느냐?

“세월이 좀 먹냐? 오늘만 날이냐? 내일 해.”라고 유혹합니다. 그 유혹에 빠지면 인생이 어찌 될까요?

여러분, 부지런함과 게으름은 빛과 어두움과 같습니다. 잠언에 기록된 말씀을 보실래요?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잠10:4),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잠12:24),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하나니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잠12:27),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잠13:4),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잠22:29)….

먼저 육체적 게으름을 떨어내야 합니다. 일하기 싫어하고, 늦잠 자기를 좋아하는 자들, 그들은 ‘그 손을 그릇에 넣고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는 자들입니다’(잠19:24). 꼼짝하기 싫은 거지요. 그런 자에게 성경은 “게으른 자여 네가 어느 때까지 눕겠느냐 네가 어느 때에 잠이 깨어 일어나겠느냐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면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 같이 이르리라”

(잠6:9~11)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어머니는 ‘자고로 엉덩이가 가벼워야 부자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릴 때 가난한 집에 가보면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아저씨, 아주머니들이 누워있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그들은 ‘논도 없고, 밭도 없어 할 일이 없다.’고 말하지만, 그건 핑계입니다. 그렇게 게으르니까 일이 없는 것이고, 일이 없으니 돈이 없어 논을 못 산 것입니다. 게으른 자들의 공통점은 핑계를 잘 댄다는 겁니다. 성경도 그들을 간파해서 이미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 문짝이 돌쩌귀를 따라서 도는 것 같이 게으른 자는 침상에서 구으느니라”(잠26:13~15).

마태복음 25장에 그런 자가 나옵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각각 돈을 맡기고 먼 길을 떠났습니다. 그러자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마25:16) 다섯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마25:17)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둘 다 즉시 나가 부지런히 장사한 겁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땅을 파고 그것을 묻어뒀습니다. 게으름 피운 거지요. 그리고는 주인이 와서 회계하자 핑계를 댑니다.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마25:24~25). 자기의 게으름을 탓한 게 아니라 되레 주인을 탓한 것입니다.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25:26~30)고 했습니다. 그럼요, 게으름은 악입니다. 게으름은 먼저 자기를 죽이기 때문입니다. “게으른 자의 정욕이 그를 죽이나니 이는 그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함이니라”(잠21:25). 자기만 궁핍하면 다행인데 게으름은 남도 죽이기에 악입니다. “게으른 자는 그 부리는 사람에게 마치 이에 초 같고 눈에 연기 같으니라”(잠10:26).

제 차를 운전해 주는 김충직 집사의 딸이 몰라보게 예뻐졌습니다. 무려 30kg이나 살을 뺐다는 겁니다. 부지런히 운동을 했다네요. 제가 ‘이런 애를 며느리 삼으면 뭘 해도 한다.’고 장로들에게 말했습니다. 말이 쉽지, 30kg를 빼려면 얼마나 부지런히 운동을 했겠습니까?

일찍 일어나는 새가 먹이를 얻고, 부지런히 일하는 자가 부를 일구고, 부지런히 공부하는 자가 좋은 대학에 가고, 운동하는 자가 건강해지는 것은 너무 당연한 사실입니다.

둘째, 혼적 게으름을 떨어내야 합니다. 새벽부터 부지런히 일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호미로 일하는 것보다 포클레인으로 일하면 결과가 남다르지 않겠습니까. 연구하고 공부해야 한다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열심히 농사를 지어 쌀로만 판매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그것으로 과자도 만들고, 음료도 만들어 판로를 넓히는 자가 있습니다. 평생 1모작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2모작, 3모작을 하여 풍요롭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겨울이면 화투판이나 벌이는 농부가 있는가 하면 비닐하우스를 만들어 겨울에도 소출이 있게 하는 자도 있습니다.

머리는 쓰면 쓸수록 잘 돌아갑니다. 조선시대의 한 왕이 세자가 장가들 나이가 되자 직접 세자빈을 간택해야겠다고 마음먹고는 전국에 방(榜)을 붙였습니다. 그랬더니 재력 좀 있고, 지식 좀 있다는 집안 여식들이 다 모여들었습니다. 왕은 그들에게 “너희들에게 쌀 한 말을 줄 테니 1년 동안 다른 것은 먹지 말고 이것으로만 연명하고 오너라. 절대 이 법을 어기면 안 된다.”고 하면서 모두에게 쌀 한 말을 나눠주었습니다. 세자빈 후보들은 쌀 한 말씩을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1년에 쌀 한 말이라…, 아무리 가녀린 처자들이라도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습니다.

1년 후 궁궐에 다시 모인 처자들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아예 나타나지 않은 자들도 있고, 심지어 들 것에 실려 온 처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한 처자만 얼굴이 발그레하니 건강할뿐더러 쌀도 잔뜩 싣고 나타났습니다. 왕이 그 처자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그 처자 왈, “상감마마, 쌀 한 말로 1년을 살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쌀로 떡을 만들어 팔고, 다시 그것으로 쌀을 사 떡을 팔았더니 나중엔 쌀 한 달구지 값이 남더이다.” 왕은 “네가 정녕 이 나라의 지어미로 합당하다.”며 그 처자를 세자빈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배우고, 익히고, 연구하면 생각의 속도를 낼 수가 있습니다.

셋째, 영적인 게으름을 떨쳐내야 합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5:17). 예수님은 이른 새벽에, 밤늦게, 밤이 새도록 기도에 부지런하셨고, 우리에게도 영적 부지런을 떨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주의 종들에게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라’(행6:4)고 하셨고, “네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떼에 마음을 두라”(잠27:23)고 당부하셨습니다. 영적으로 게으르면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3:16)는 경고도 잊지 않으셨습니다. 왜냐? 게으름을 악으로 규정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증왕에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본즉 가시덤불이 퍼졌으며 거친 풀이 지면에 덮였고 돌담이 무너졌기로 내가 보고 생각이 깊었고 내가 보고 훈계를 받았었노라”(잠24:30~32)고 전도자는 자기 삶을 돌아봤습니다. 우리도 인생의 밭에, 인생의 포도원에 잡초와 가시덤불이 덮여있지는 않은가 살펴봅시다.

부지런이란 열쇠로 열지 못할 문은 없습니다. 그러니 영·혼·육에 부지런을 떨어봅시다. 그래서 “이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딤전4:15)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어봅시다. 할렐루야!

부모 살아계실 때

효도(孝道)하라

예수를 믿지 않는 자의

사후의 영(靈)이 귀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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