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글씨 크기 보통16
1136호 목차 › 붕우칼럼

예수께 붙들린 자

1136호 · 2022-02-13

누구에게 붙들리느냐 굉장히 중요하다. 사기꾼에게 붙들리면 사기꾼이 되고, 노름꾼에게 붙들리면 노름꾼이 되고, 학자에게 붙들리면 학자가 되고, 원어민에게 배우면 외국어가 부쩍 늘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예수께 붙들리면 어찌 될까? 성경에는 예수께 붙들려서 인물이 된 자들이 많다. 비천한 자가 존귀한 자가 되고, 비겁한 자가 대범한 자가 되고, 무지한 자가 예수께 붙들려서 스승의 반열에 오른 자들이 대다수다. 모세, 베드로, 바울 등등이 그렇다.

하나님은 잘나고, 많이 배우고, 왕성한 체력을 지닌 자들을 택하여 사용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되레 죄 많고, 약하고, 병들고, 못 배운 자들을 택하셨다. 왜냐? 하나님께 붙들리면 어떻게 변화되고, 어떻게 성장 발전하는지 알게 하시려고. ‘네가 잘 나서가 아니라 내게 붙들려서 된 거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7~29).

예수께 붙들린 사울이 바울로 변화되었다.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빌3:12). 나 역시 그리 내세울 것이 없던 농사꾼의 자녀였다. 그런 내가 세계를 150바퀴 이상 돌며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세계적인 전도자가 되었다. 내가 잘 나서가 아니다. 예수께 온전히 붙들렸기 때문이다. 감나무에 접붙여지면 감이 열리는 법, 예수께 붙들리면 예수와 같은 능력과 지혜가 나타나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

2022년, 신학교를 다시 연다. 신학교는 잘 난 사람이 오는 곳이 아니다. 오직 예수께 붙들려 예수로 말미암아 변화되고, 성장하고, 승리하기를 원하는 자가 자원하여 오는 곳이기에 나는 신중하기를 거듭 당부한다.

나는 제2의 이초석 목사가 배출되기를 늘 기도한다. 그것은 흰옷을 입는다고, 나를 흉내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온전히 예수께 붙들릴 때 가능하다. 예수께 온전히 붙들린 자가 되라.

1136호 다른 글

커버스토리
Text 주일설교
지혜의 말씀
귀를 기울이세요
Cartoon
세상을 보는 창
객원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