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루틴
기도의 루틴(routine)
오래전 어느 날 꿈에서였다. 누군가와 부정적인 대화를 나누는 순간 공중에 있던 악한 영들이 하나둘 몰려들었다가 보혈의 찬송을 부르자 다시 물러가는 생생한 꿈이었다. 부정적인 말은 해서도 안 되고, 그러한 자리에 동류가 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꿈이었다.
삶 가운데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 오면 원망, 불평하거나 다른 이를 탓하는 말을 쏟아내는 우를 범할 때가 있다. 세상은 그것을 이해할지 모르지만, 우리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다. 하나님은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라”고 말씀하신다(벧전3:10~12). 더 나아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벧전1:15~16)라고 말씀하신다.
죄성을 가진 연약한 육체를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닮아 거룩한 생각과 행실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단연 기도다. 빠르고 바쁜 이 세대를 살면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더욱 ‘기도의 루틴’(routine)이 있어야 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 새벽 미명과 늦은 밤에 따로 한적한 곳을 찾으셔서 기도하신 것처럼 정한 시간, 즉 습관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예수님은 이 기도의 습관으로 공생애 사역뿐 아니라 전 인류 구원을 위한 십자가를 지실 능력을 얻으셨고, 기도의 사람 다니엘 역시 바벨론 대제국의 국무총리로서 매우 바쁜 일과에도 하루 세 번 기도를 쉬지 않았기에 왕의 금신상에 절하지 않고 정결한 신앙을 지킬 수 있었다.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와 요한도 그들의 ‘기도 시간에’ 성전에 올라가다가 미문에서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여 앉은뱅이를 일으켰다는 성경의 기록을 볼 때(행3:1~10), 믿음의 선친들에게는 반드시 정해진 기도의 습관이 있었고 그들은 모두 끝까지 승리했음을 알 수 있다.
2022년, 우리는 모든 일에 전심전력하여 진보와 성장을 이루기 위해 크고 작은 발걸음들을 내딛고 있다. 이 모든 수고와 발걸음이 반석 위의 집과 같이 튼튼하게 서기 위해서는 마음과 입술을 지켜낼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기도의 루틴을 잃지 말고 성령님이 주장하시는 마음과 입술이 된다면 생각하는 것마다, 입술로 뿌리는 것마다 아름다운 열매 맺는 멋진 한 해가 될 것이라 믿는다.
이국진 사모
joyful_jina@hanmail.net
목자의 의무
얼마 전 ‘Eedga’s mission’이라는 동물보호 자선단체에서 구조한 양의 영상이 화제가 되었다.
구조된 양은 무려 35kg에 달하는 양털에 짓눌린 채 숲에서 움직이지도 못하다가 구조단체에 의해 구조되었다. ‘바락’이라는 이 양은 곧 바로 보호소로 이동이 됐는데 털의 무게 때문에 거의 걷지 못했고, 눈을 가린 털 때문에 앞도 전혀 볼 수 없었다.
보호소 직원들은 서둘러 바락의 털을 깎아주었는데, 그 안에서는 썩은 쓰레기, 벌레, 나뭇가지들이 넘쳐났다. 보통 양은 1년에 한 번 털을 깎지 못하면 뭉쳐진 털 때문에 배변을 못해 죽는 경우도 있다던데, 바락은 그 털 길이로 보아 무려 5년 정도 방치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한 시간에 걸쳐 35kg의 양털을 벗어낸 바락의 모습은 딴판이었다. 더럽고 게을러 보이며 사나워 보이기까지 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깨끗하고 온순한 양 본연의 모습이었다.
이 영상을 보면서 생각이 깊었다. 첫 번째로 주인을 잃어버린 양에 대해서다. 주인을 잃어버린 양이 어떻게 되는가? 양털에 온갖 오물이 엉켜서 점차 옴짝달싹 못하다가 결국 영양실조에 걸리고, 그러다 죽게 된다.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의 보호가 없으면 우리가 그 꼴이 아니겠나. 그러니 선한 목사이신 예수님 그늘에 있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
두 번째로 목동으로서 내게 맡겨주신 양들을 잘 살피고 있는가였다. “왜 대면예배에 나오지 않는 거야?”라며 그들을 나무랐지만, 어쩌면 그들이 현장에 나와서 찬양하고 부르짖어 기도하지 못하는 것은 양 떼를 부지런히 살피지 않은 나의 악함과 게으름 때문이 아닐까! 목사님의 쩌렁쩌렁한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네 양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떼에 마음을 두라.”
문제의 학생은 없고 문제의 교사가 있을 뿐이다. 문제의 양은 없고, 제 일을 다 하지 못하는 삯꾼 목자가 문제다. 목숨을 걸고 양을 지키신 예수님처럼, 예수님을 그대로 따라가는 목사님처럼, 나도 선한 목동이 되어보길 다짐하고 기도한다.
‘내 양을 바락처럼 만들지 않으리라!’
이현승 목사
coollee0817@naver.com
착한 사람들
오수관이 막혔습니다. 원인은 기름과 물티슈였습니다. 반상회를 열어서, 입주민들에게 싱크대와 변기에 기름과 물티슈를 버리지 말라고 공지했습니다. 이어서 입주자 대표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구조를 알고 있어서 이번은 뚫어줬지만 다음부터는 동별로 비용을 부담해서 전문업체를 불러야 합니다. 얼마 전 다른 동의 오수관이 막혀서 뚫고 있었는데, 그 동대표가 나를 힐끗 보더니 그냥 가버렸어요. 나는 이제 더이상 그 일을 하지 않을 겁니다.”
입주를 시작해서 지금까지 4년여간 그는 입주자 대표라는 책임감으로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했습니다. 어떤 보수나 혜택도 없습니다. 특히 막힌 오수관을 뚫는 일은 그가 해야 할 일이 전혀 아님에도 수차례 그 일을 해왔습니다. 더럽고 악취 나는 그곳에서 대표님이 느낀 모멸감이 어느 정도였을지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얼마 후, 저희 동 오수관이 또 막혔습니다. 또 똥물 속에서 기름과 다량의 물티슈를 건져 올렸습니다. 반상회 때 그렇게 말했건만 누군가는 아랑곳하지 않고 버렸고, 다음부터는 전문업체를 불러서 처리하라던 대표님이 그 밤, 그 추운 날씨에 또 해결해주셨습니다. 반상회 이후 오수관이 막혔다는 얘기를 들은 대표님은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그의 양심과 이성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까요. 번뇌하는 그 마음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그가 오수관이 막혔다는 얘기를 듣고 해결하러 나올 때까지의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고 말씀하셨습니다. 한두 번 정도는 착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착한 일을 해도 그것을 오히려 당연하게 여기며 여전히 주변에 피해를 주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착한 일을 계속해서 할 수 있을지 저는 자신이 없습니다. 아마도 저의 시선이 행악자들에게 더 집중하기 때문일 것 같습니다. 착한 사람들이 주변에도 많이 있을 텐데 정작 그들은 잘 드러나지 않고 그들의 착한 일을 알았다고 하더라도 잠시 마음이 따뜻해질 뿐 금방 잊혀지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착한 사람들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언어장애가 있는 아이가 엄마에게 불편함을 얘기하는 방법은 발을 구르거나 물건을 벽에 던지는 것입니다. 새벽에도 말이지요. 쩔쩔매고 있을 부모를 생각하며 층간소음을 가만히 참아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쁜 출근 시간, 차선을 급하게 변경하다가 앞차를 들이받은 사고가 있었습니다. 뒤차의 차주가 앞차로 가서 심하게 떨며 두서없이 말했습니다. 아이가 아프다구요. 앞차의 차주였던 중년 여성은 곧 그 여인을 여러 차례 안아주고 다독였습니다. 아이 엄마는 생각지 못한 위로에 울음을 터뜨리고 맙니다. 자신이 이전에 아이를 키우며 겪었던 일들과 그때의 감정을 기억하며 비슷한 곤경에 빠진 상대를 너그러이 품어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느 한 빌라 경비원이 암에 걸려 일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췌장암 3기 판정을 받고 항암치료도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입주민들은 “얼른 쾌차하세요. 아저씨가 올 때까지 기다릴게요.”라고 말하며, 자발적으로 빌라 주변을 쓸고 닦고 수리하며 경비 일을 했습니다. 그 모습에 경비원은 용기를 내어 치료를 시작했고, 다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보수를 받는 일이라고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그동안의 수고를 기억하며 정을 나누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착한 일에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보상이 있음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6:9).
박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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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익조
비익조는 한쪽 눈과 한쪽 날개만 가지고 태어난다고 하는 전설의 새입니다. 그래서 비익조는 제대로 볼 수도, 날 수도 없습니다. 비익조는 암컷과 수컷의 눈과 날개가 하나씩이어서 짝을 짓지 아니하면 날지 못한다는 상상의 새로 부부가 서로 연합해야 살아갈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비익조는 ‘사랑’이니 ‘인연’을 이야기할 때 비유되기도 합니다.
이 비익조는 당나라 시인 백락천이 현종과 양귀비의 애절한 사랑을 노래한 장한가(長恨歌)에 등장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비익조(比翼鳥)는 서로 도울 비(比), 날개 익(翼)자로 된 한자어입니다. 서로 돕지 않으면 날 수도, 볼 수도 없는 새입니다. 부부관계는 물론이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독불장군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서로 도와서 하나가 될 때 멀리 보는 희망이 생기고, 멀리 날아 그것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가족끼리, 이웃끼리 싸우면 그나마 있던 날개마저 제구실을 못하게 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도움을 주는 그런 이웃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챙기고 보듬는 그런 이웃이 되었으면 참 좋겠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22:39).
목소리도 늙을까?
목소리는 사람의 인상을 좌우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신의 목소리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으며 목소리를 관리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여성의 경우 생리기간이나 임신 중에는 목소리를 지나치게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환기가 잘 되도록 하고 에어클리너 등으로 먼지나 연기 등 유해 물질을 최소화하며 주변 환경이 건조해지지 않도록 한다.
말을 많이 해야 하거나 노래하기 전에는 워밍업이 필요하다. 작은 목소리, 소폭의 음조 변화로부터 큰 목소리, 큰 폭의 음조 변화까지 5~10분에 걸쳐 서서히 음의 강도와 높낮이를 변화시킨다. 이 과정이 끝나면 역순으로 다시 시행한다. 우리는 얼굴이 늙었다는 얘기는 자주 하지만 목소리가 늙었다는 말은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잘 관찰해보면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목소리는 분명히 젊은 사람의 목소리와 다르다. 나이가 들면 신체조직의 양이 줄고 탄력이 없어지면서 주름살이 생긴다. 남자의 경우 얼굴처럼 성대 내부를 채우고 있는 결체조직이 점점 줄어들면서 변성을 일으킨다. 성대 근육이 약해지면서 목소리가 가늘어지고 쉰 듯한 목소리가 난다. 여자의 경우는 남자만큼 큰 변화를 보이지는 않지만 나이가 들면서 성대가 두터워져 점점 목소리가 굵어진다. 따라서 피부도 노화를 막기 위해 관리하는 것처럼 목소리도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관리하는 것이 좋다.
성대 운동의 간단한 방법은 숨을 크게 마신 상태에서 혀를 약간 위로 구부리고 “흐르르르” 소리를 내면서 바람을 세게 분다. 그다음 “으”라는 목소리를 섞어서 같은 방법으로 바람을 세게 불면 “르르르르”라는 소리가 나면서 혀가 떨린다. 이것을 하루에 5분씩 매일 반복하면 목소리도 어느 정도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
‘혀 트릴’이라고 하는 이 방법은 성대의 진동을 강하게 만들어 성대가 약해지는 것, 다시 말해서 성대가 늙어가는 것을 예방한다. 혀 트릴은 남자에게 더 효과적이며, 여자도 간접적으로 도움이 된다. 물론 규칙적으로 영양소가 풍부한 음식을 섭취하고 다른 신체 운동을 병행하면 더욱 효과적이다. 나이가 들어서도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몸짱이 될 수 있는 것처럼 목소리도 젊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하자.
Dr.조희경 집사
꿈을 시각화하자!
3년 전에 퇴사를 했다. 그리고 꿈이 하나 생겼다. 바로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출간하는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가장 먼저 한 일은 서점에 가서 내 책이 출간되었다고 생각하고 베스트셀러 책들 앞에서 내 사진을 찍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사진을 출력해서 책상 앞에 붙이고,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바꿨다. 눈에 보일 때마다, 생각날 때마다 기도하고 그 꿈을 이루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3년 후 지금, 나는 작가가 되었다.
얼마 전 설교 시간에 목사님의 손자가 서울대학교 앞에서 사진을 찍은 일화가 소개되었다. 4년 후 꿈을 이뤄낼 거라는 그 손자의 용기 있는 포부에 목사님도 기뻐하시고 성도들도 함께 도전을 받았다.
바로 그렇다. 시작은 먼저 내 꿈을 시각화, 이미지화하는 것이다. 우리 뇌는 단지 명확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그것을 성취하려는 쪽으로 스스로 움직인다. 자주 보면 볼수록 단기기억에서 장기기억으로 옮겨오고 문제 앞에서 차츰 해결의 방법을 찾아낸다.
2022년도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나갔다. 올해 내 목표는 무엇인지 내 꿈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점검하고 그것을 시각화하자. 자주 볼 수 있는 곳에 배치하고 보일 때마다 늘 기도하고 그것을 이루려 애쓰자.
‘꿈은 우리를 버린 적이 없다오. 우리가 꿈을 버린 것이지요.’, ‘희망은 우리를 버린 적이 없다오. 우리가 희망을 버린 것이지요.’, ‘믿음도 우리를 버린 적이 없다오. 우리가 믿음을 버린 것이지요.’ 예배 때 늘 부르는 이 찬양 가사처럼, 나만 포기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나에게 가장 좋은 때에 그것을 이뤄주시리라 확신한다. 요셉에게 그리하셨던 것처럼!
정명훈 집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