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AD 64년 전후는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참으로 힘든 시간이었다. 네로 황제는 자신이 저지른 로마 화재의 책임을 크리스천들에게 덮어씌웠고, 이에 선동당한 로마시민들은 분노에 가득 차서 닥치는 대로 크리스천들을 잡아 죽였다. 수도 로마에서 시작된 네로황제의 기독교 대박해는 점차 로마제국 전역으로 확산되었고, 성도들은 소아시아 전역으로 흩어져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만 했다. 박해의 강도는 지역에 따라 달았지만, 로마에서처럼 끔찍하게 죽임 당하지는 않는다 해도 크리스천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정상적인 직장을 가지는 것이 불가능했고, 장사도 할 수 없었다. 언제 어디서든 모든 재산을 압수당하고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거나 노예로 팔려버릴 수 있었다.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대도시를 피해 사람들이 살기 힘든 험지로 흩어져 살아야만 했고, 많은 크리스천이 지하무덤인 카타콤베로 숨어들어 살아가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 와중에 교회 안에는 교회를 어지럽히는 사람들까지 설쳐대고 있어 초대교회는 너무나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베드로전후서는 극심한 핍박 가운데서도 끝까지 로마에 남아 활동 중이던 사도 베드로가 소아시아 지역의 여러 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목회서신이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 있는 성도들에게 힘찬 소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특히 베드로전서 2장 9절 말씀을 보면,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라 했다. 당시는 크리스천들을 죽이고 가두고, 안 좋은 일만 일어나면 ‘너희들 때문’이라고 덮어씌워서 모욕을 주던 때였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세상은 너희를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보지만, 주님의 눈에는 엄청난 존재들이야.’라고 말한 것이다(시16:3).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한국교회는 여러모로 오해를 받고 많이 위축되어 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시각으로 우리 자신을 보면서 담대히 일어서야 하고, 우리가 하나님 눈에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를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하나님의 자녀다. 세상이 뭐라고 하든, 세상이 우리를 어찌 대하든 우리의 신분은 달라질 것이 없다. 그러니 힘을 내어 다시 일어나 빛을 발하자!
이정금 전도사
숨어계시는 하나님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사45:15).
70년 포로생활의 부재감 뒤에 비상한 섭리로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표현한 말씀이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어떤 때엔 마치 숨어계셔서 숨바꼭질하시는 것처럼 깊은 부재(不在)로 느껴지기도 한다.
누구나 어려서 숨바꼭질 놀이를 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도 어려서 동네친구들과 술래잡기를 하다가, 포근한 볏짚 단 안에서 숨어 잠이 들어버린 기억이 있다. 숨바꼭질 놀이의 목적은 술래가 영영 못 찾게 하려는데 있지 않다. 술래에게 잡히면 발견되는 기쁨도 있어야 하고, 또는 오랜 시간 찾지 못해 애타게 돌아다니는 술래가 불쌍해 자발적으로 다가가기도 하는 것이 술래잡기의 즐거움이다.
하나님의 부재가 느껴지는 것은, 죄로 막힌 담이던지, 아니면 하나님의 또 다른 사랑의 방법이다. 죄의 담이라면 회개로 허물어야 하고, 의도적인 훈련이라면 찾을 때까지 은혜를 구하고 나가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도저히 찾을 수 없도록 희망고문만 하시지 않고, 간절히 그의 얼굴을 구할 때 찾아지는 기쁨을 누리시는 인격의 아버지이시다.
수로보니게 이방 여인이 예수님께 와서 귀신들린 딸을 구해달라고 간절히 외친다. 예수님은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늘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며 기적을 행하시던 예수님! 그런데 침묵으로 일관하셨고, 심지어 이방인에겐 관심도 없다는 듯한 무관심과 모욕감까지 주신다(마15:21~28). 이 정도의 거절이라면 떠나갈 만도 하다. 그런데 여인은 끝까지 은혜를 구했고, 예수님은 큰 믿음이라 칭찬하시며 소원대로 딸을 고쳐주신다. 침묵이 침묵이 아니었고, 거절이 거절이 아니었다. 이런 부재감을 통해 예배자로 서게 되고, 믿음이 성장하게 되었다. 숨어계시고 버리신 것 같다는 느낌은 인간 편에서의 느낌일 뿐이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신 적이 없다.
깊은 부재감은, 강력한 임재의 전조증상이다. 코로나의 길고 긴 어두운 터널의 끝에서 끊임없이 은혜를 구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이 찾아지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신다(시121:4).
송직화 목사
jesus_allinall@hanmail.net
전도를 망설일 수 없는 이유!
어린 소년이 추위에 대비한 옷을 입고 아버지에게 말했습니다. “아빠 준비됐어요.” 목사인 그의 아버지가 묻습니다. “아들, 무슨 준비냐?”, “아빠, 밖에 나가서 전도지를 나눠줄 시간이에요.”, “오늘은 매우 춥고 비가 내리고 있어.”
아이는 아버지를 보고 놀라며 말했습니다. “하지만 아빠, 사람들은 비가 오는 날에도 하나님에 대해 알 필요가 있어요.” 아빠가 대답했습니다. “얘야, 이런 날씨에는 사람들이 밖에 나오지를 않을 거야.” 아버지의 대답에 실망한 아이가 말했습니다.
“아빠, 저 혼자 가도 돼요? 제발요!” 아버지는 잠시 기다렸다가 말했습니다.
“얘야, 가도 돼. 여기 전도지가 있다, 조심해 다녀와.”, “고마워요, 아빠!”
그리고 전도지를 가지고, 아들은 빗속으로 나갔습니다. 이 11살 소년은 그가 본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면서 마을의 모든 거리를 걸었습니다. 빗속을 두 시간 동안 걷고, 추위 속을 걷고, 마지막 전도지를 손에 든 그는 구석에 멈춰 서서 전도지를 줄 사람을 찾아 보았지만 거리는 완전히 인적이 끊겼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앞에 보이는 집으로 갔습니다. 현관문의 벨을 여러 번 누르고 기다렸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어 마침내 소년은 그냥 떠나려고 돌아섰지만, 무언가가 그를 막았습니다. 그 아이는 다시 문 쪽으로 가서 벨을 눌렀지만 여전히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소년은 주먹으로 문을 세게 두드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문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계속 기다렸어요.
마침내 문이 천천히 열렸습니다. 한 여성이 매우 슬픈 표정으로 나와서 물었습니다. “소년아, 왜 그러지! 무엇을 도와줄까?” 빛나는 눈과 환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는 말했습니다. “아주머니, 제가 화나게 했다면 미안합니다만, 그러나 하나님이 아주머니를 사랑하셔서 제게 강권하여 여기 이 전도지 드리라고 해서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그 소년은 그녀에게 전도지를 주었습니다. 그녀는 “고마워, 소년아, 너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했습니다.
다음 주일 아침, 목사님은 설교단에 계셨는데 예배가 시작되었을 때 이렇게 물었습니다. “여러분 중에 혹 간증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까?” 그때 조심스럽게, 교회의 뒷줄에서 한 부인이 일어섰습니다. 그 여자가 말을 하기 시작하자, 그녀의 눈은 빛이 났습니다.
“저는 이 교회에 와본 적이 없어서 아무도 모릅니다. 제 남편은 얼마 전에 저를 혼자 남겨두고 죽었어요. 그런데 지난 주간에 유난히 춥고 비오는 날이었는데, 그날 저는 남편은 죽고 희망도 없고,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아 죽으려 했습니다. 그리고 의자와 밧줄을 찾아 집 다락방으로 올라갔습니다. 나는 밧줄의 한쪽 끝을 지붕의 서까래에 묶고, 의자 위로 올라가서 밧줄의 다른 쪽 끝을 내 목에 감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저는 의자에 서서 너무 외롭고 상심한 나머지, 의자에서 몸을 던지려고 할 때였습니다.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큰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잠깐 기다리면 가겠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만, 점점 노크 소리가 커지고, 너무 시끄러워서 더 이상 무시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궁금했어요. ‘누구일까…?’
저는 제 목에서 밧줄을 풀고 문으로 갔습니다. 벨이 여전히 울리고 있었고 여전히 문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문을 열었을 때, 저는 제 눈이 본 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제 문 앞에는 제가 본 것 중 가장 빛나고 천사 같은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미소를 짓고 있어요. 난 그 소년의 모습을 설명할 수 없어요!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 오래전에 죽은 내 마음을 되살리게 했어요! 그가 ‘아주머니, 하나님께서 당신을 정말 사랑하신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린 천사가 추위와 비 사이로 사라졌을 때, 저는 문을 닫고 전도지의 모든 단어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다락방으로 가서 의자와 밧줄을 치웠습니다. 더 이상 필요 없었어요. 보시다시피. 이제 저는 하나님의 행복한 딸입니다.
그 소년이 떠날 때, 그가 이 교회로 향하는 방향이었기 때문에, 저는 개인적으로 때마침 온 하나님의 작은 천사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러 왔습니다. 그리고 그는 제 때에 와서 영원한 불더미에서 나를 구했습니다. 지옥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영생을 얻게 했습니다.”
그녀의 간증에 교회의 온 성도들이 모두 울었습니다.
목사님은 설교단에서 작은 천사가 앉아있는 앞쪽의 첫 번째 벤치로 내려왔습니다. 그는 그의 아들을 품에 안고 걷잡을 수 없이 울고 울고 또 울었습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4:2).
복음, 우리가 전해야 한다. 지금!
방치하다간
얼마 전 집에서 잘 사용하던 싱크대 수전에 문제가 생겼다. 어느 순간부터 물이 졸졸 약하게 나오더니 그날 저녁이 돼서는 아예 물이 나오지 않았다. 아무리 손잡이를 당겨보고 이리저리 만져보아도 도무지 물이 나오지 않았다. 화장실을 확인해봤더니 화장실 물은 잘 나왔고, 결국 싱크대 수전만의 문제임이 분명했다.
전문가를 부르기 전에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지 알아보기로 했다. 유튜브로 몇 가지 관련 영상들을 찾아봤다. 여러 가지 점검 포인트 중 하나였던 수전 내에 있는 여과기를 청소해보라는 이야기를 듣고 수전 여과기를 열어보았고, 보는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물질을 걸러내는 역할을 하는 여과기가 꽉 막혀서 물조차 못나오게 막고 있었던 것 아닌가. 여과기의 막힌 부분을 뚫어내고 재장착하니 막혔던 수전이 뻥 뚫렸고, 이전보다 훨씬 강한 세찬 물줄기가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사실 조금씩 물줄기가 약해질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뭔가 이상한데?’ 싶었는데 조치 없이 계속 방치했던 게 문제였다. 결국 수전이 막혀서 물이 나오지 않았고 한참을 고생했다.
우리 인생도 이와 마찬가지다. 악을 방치하면 안 된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일을 계속해서도 안 된다. 게으름을 방치해서도 안 된다. 부정의 생각과 습관을 방치해서도 안 된다. 언젠가 그것들이 내 인생의 구원과 축복의 물줄기를 수전 내 막힌 여과기처럼 꽉 막아 버리기 전에 빨리 깨닫고 손을 보자. 우리 앞에 장애물이 사라지고 뻥 뚫린 시원한 새 물줄기 같은 하나님의 큰 축복이 우리 앞에 가득할 것이다.
장명훈 집사
jjoshua@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