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의 차이, 믿음의 차이!
몇 해 전, 송구영신예배를 마치고 서울의 어느 장로님의 초대로 예배를 인도하게 되었다. 한참 설교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무언가가 떨어져내려 장로님의 머리를 내리치는 것이 아닌가! 장롱 위에 깊숙이 얹어놓은 두루마리 화장지 뭉치가 갑자기 떨어져 내린 것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두루마리 화장지로 얻어맞은 장로님의 반응이었다. 예배를 드리다 말고 ‘잘못했다, 용서해달라’며 엉엉 울며 회개하는 것이었다! 영문을 알지 못하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예배 후에 장로님은 어찌된 연유였는지 고백을 했다. 설교를 듣는 내내 마음이 너무나 불편했다는 것이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히11:6)는 말씀을 들으며 입으로는 ‘아멘, 아멘’ 하면서도 정작 속으로는 원망 불평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나님, 제가 온전히 교회를 섬기고, 주의 종을 섬기고, 이러저러한 모습으로 봉사한 것 너무나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없는 가운데서도 물질을 드리고 십일조 생활을 해왔는데 어찌하여 나의 삶은 이러합니까! 어찌하여 나의 자녀들은 이러저러합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무언가가 자기 머리를 치더란다.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눈치 볼 것도 없이 바로 무릎 꿇고 회개를 했다는 것이었다.
성경은 원망과 불평이 불신앙의 결과라고 말씀하고 있다. 똑같은 조건과 상황 속에서도 믿음의 사람과 육에 속한 사람들은 분명한 차이가 나타난다는 말씀이다. 바로 시각의 차이가 그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복이요, 또 무엇이 화인가? 한자는 여기서 우리에게 귀한 깨달음을 준다. ‘복(福)’은 ‘보일 시’(示)자와 ‘가득할 복’(畐)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여기서 ‘복’
(畐)은 항아리 형상을 본 떠 만들었다. 결국 복은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볼 줄 아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 항아리에 담겨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고, 아름답게 여길 줄 아는 것이 복이란 것이다. 반면 ‘재앙 화’(禍)는
‘보일 시’(示)자와 ‘입 삐뚤어질 괘’(咼)자가 합하여 이루어졌다. 따라서 나의 허물과 상대의 허물만 바라보고 사는 것이 재앙 중에 재앙이다. 내 인생 항아리에 담긴 것은 바라볼 줄 모르고 남의 인생 항아리와 비교하며 자꾸 입을 삐쭉거리는 것이 재앙이라는 것이다. 이렇듯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느냐가 우리 삶을 좌우한다. 믿음의 시각, 긍정의 시각, 감사의 시각을 가진 사람은 비전에 사로잡혀 산다. 결국은 그 비전을 이루고야 만다. 하지만 불신앙의 시각, 부정과 원망의 시각을 가진 사람은 항상 매듭짓기에 실패한다. 그런 자에게 기대할 열매도 없다!
복과 화,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 어디에 시선을 두고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느냐가 중요하다. 지금 당신의 시각은 어떠한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