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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복음(福音)이 무엇인지 알라!(고전1:17~18)

1112호 · 2021-08-29

복음이 무엇입니까? 복음(福音)은 뜻풀이 그대로 복 받으라는 소리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은 잘 사는 것이고, 아픈 자에게 복음은 건강하게 되는 것이고, 망한 자에게 복음은 다시 일어난다는 것이고, 죄에 억눌린 자에게 복음은 죄에서 해방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복음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1:16).

무슨 말입니까?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죄에서 구원을 주시는, 가난에서 구원을 주시는, 병에서 구원을 주시는, 모든 억압된 것에서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말입니다.

왜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지 볼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이사야 53장의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사53:5).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겪으시고 수치스러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우리에게 건강의 문(門), 의의 문, 평화의 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문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악랄한 놈이 있으니, 바로 악한 마귀와 귀신들입니다. 이것들을 쫓아내야 예수님이 열어놓으신 문에 들어갈 수 있는데, 그놈들은 칼이나 총으로 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이름으로만 쫓겨납니다. 왜냐? 예수의 이름은 하나님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처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되었을 때 주의 사자가 나타나 아들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했고(마1:21), “거룩하신 아버지여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저희를 보전하사”

(요17:11)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이 곧 ‘예수’이니, 예수라는 이름이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과 권세를 예수께 주시고(마28:18) 이 땅에 보내셨기에 예수 이름 앞에 하늘의 것과 땅의 것, 그리고 땅 아래의 것들이 복종하는 것입니다

(빌2:9~10). 그래서 예수가 귀신을 쫓으니 귀신이 떠나고,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벙어리가 말을 하고, 귀머거리가 듣게 된 것입니다.

그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면 이 땅이 무법천지가 되겠지요? 권세자가 안 계시니 말입니다. No. 예수님은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요14:26). 예수를 그리스도라 믿고 입으로 시인하고 회개하는 자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데(행2:38), 그 성령이 바로 마귀와 귀신들이 벌벌 떠는 예수 이름으로 온 것입니다. 어느 아비가 장기간 해외에 가면서 아무 대책도 해놓지 않고 가겠습니까? 하물며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이 그냥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고 가셨겠습니까(요14:18)?

성령을 받은 자는 그 안에 만물과 만인이 복종하는 예수가 계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름으로 마귀와 귀신들을 내어 쫓을 수 있습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행1:8)라는 이 말씀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성능 좋은 총과 무제한의 총알과 돈을 주고 가신 셈이니 그것을 빼앗기지만 않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만 잃지 않으면 예수님이 열어놓으신 구원의 문, 건강의 문, 행복의 문에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큰 프로젝트요,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총과 총알을 잘 간수하지 못하다 빼앗긴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럼 어찌 됩니까? 돈도 도난당하고, 몸도 구속이 되고, 악한 것들의 종이 될 수밖에 없지요. 교회는 다니나 성령을 받지 못한 자, 성령을 받았으나 소멸한 자가 의외로 많습니다. 기도해야 성령충만을 입는데, 기도하는 게 힘들어서, 바빠서 기도하지 않다가 성령이 소멸하고 마는 경우입니다. 그러면 어찌 됩니까? 그 안에 예수님이 안 계시니 다시 마귀가 날뛰고, 귀신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는 겁니다. 그것들의 올무에 얽매여 세상으로 끌려가 죄를 짓고, 병들고, 망하고,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짐승의 습격을 받았는데 이에 대처하지 못하는 네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는 총은 있으나 총알이 없는 자요, 둘째는 총도 있고 총알도 있지만 총구가 녹슬어서 급하게 방아쇠를 당겼지만 총알이 나가지 않는 자요, 총도 총알도 다 정상적이건만

‘설마’ 하면서 믿지 못하고 방아쇠를 당기지 않는 자요, 넷째는 총에 대한 기본지식이 아예 없는 자입니다.

죄와 병과 가난과 고통은 다 마귀가 귀신을 투입해서 주는 것입니다. 그때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으면 됩니다. 그런데 첫째, 교회는 다니지만 성령을 못 받은 자는 쫓을 수 없고, 둘째 성령을 받았지만 성령이 소멸된 자도 쫓을 수 없고, 셋째, ‘설마 내가 쫓는다고 나가겠어?’ 하며 의심하는 자는 쫓을 수 없고, 넷째 아예 예수 이름의 권세를 모르는 자도 쫓을 수 없습니다.

저는 이런 원인이 가르치는 자가 소경이라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마15:14)?

“다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막1:27)는 말씀이 있습니다. 좀 오래전 일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영적 대부인 로버츠 목사가 제가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는 것을 보고는 정말 ‘이게 어찜이뇨?’ 하고는 놀랐습니다. 목회를 수십 년 했는데 자기는 이런 영적 비밀을 몰랐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는 한국에 왔을 때 기도원에서 밤에 제게 찾아와 예수 이름의 권세와 하나님 자녀의 권세에 대해 이것저것을 묻고 배웠던 일이 있습니다. 하긴 성경에 능통했던 아볼로도 성령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지 않습니까? 그저 요한의 세례만 알 뿐이지, 성령 세례를 알지 못하다가 바울을 통해 성령 세례를 받고 방언도 하고 귀신을 쫓았지 않습니까(행19:1~7).

우리 교회 어느 전도사가 기차를 탔는데,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와 동석하게 되었답니다. 아기를 보니 입술이 퍼런 게 심상치 않아 물었더니, 아기가 많이 아파 병원에 가는 중이라고 엄마가 말했습니다. ‘교회는 다니시냐?’ 했더니, 다닌다기에 ‘그럼 목사님께 기도를 받지 그랬냐?’ 했더니 ‘우리 목사님은 기도를 안 해주신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자기 신분을 밝히고 기도해줘도 되겠느냐 했더니, 좋다고 해서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았답니다. 그랬더니 바로 아이의 입술이 발개지면서 엄마 젖을 빨았다고 했습니다. 모르는 게 죄는 아닙니다. 배우면 되니까요. 그런데 모르면서 모르는 것이 정상인양 하고 있는 게 문제입니다. 같은 기차에 탄 네 명의 목사님들이 ‘이초석 목사는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친다는데 잘못됐다.’며 서로 수군대고 있더라고 그 전도사가 제게 말했습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능력으로 안 되는 것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가 받은 능력을 잃어버리고 소멸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지, 하나님의 능력으로 못할 게 어디 있습니까? 요즘 같은 시대에는 전도가 힘들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기만 하면,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는 것을 보여주면 믿지 말라고 사정을 해도 믿을 겁니다. 제가 집회 때 먼저 성령의 역사를 보여주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 능력을 주신 것은 먼저는 우리가 이 세상을 이기고 승리하라고 주신 것이요, 둘째는 이 능력을 보여주고 전도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눅4:18~19).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이름이 바로 예수의 이름입니다. 그 예수 이름으로 오신 분이 바로 성령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집에 비상약이 구비되어 있어야 하는 것처럼 늘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야 영혼이 잘 됨 같이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한 복이 임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물 떠난 고기는

벌레 밥이 된다

배움의 끝은 실천이다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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