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기둥이냐, 모래기둥이냐?
성경은 복을 받았던 자들을 낱낱이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맺은 언약은 세상 약속처럼 망각되거나 깨어지지 않는다. 그러기 때문에 그 약속은 우리에게 믿음이 되고 신앙이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복 받는 체험이 없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무시하고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자들에게 야곱의 신앙은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창세기 28장에 야곱은 형 대신 아버지 이삭에게서 축복을 다 받고 형의 눈을 피해 도망가다가 밤이 되어 한곳에 이르러 돌을 베고 잠이 들었다. 그런데 꿈에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분주하다. 바로 천사들이 하늘의 복을 이 땅에 내려놓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참으로 내가 너를 도우리니 너의 자손이 이 땅에 편만할지라 또 땅의 모든 족속이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떠나지 않으리라.” 잠이 깬 야곱은 이 굉장한 약속 앞에 베고 자던 돌을 기둥으로 세우고 그 돌 위에 기름을 붓고 가로되, “주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될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이 내게 주신 모든 것에 십 분의 일을 주님 앞에 드리겠나이다.”라고 서원하였다. “나의 하나님이 될 것이요.” 하는 것은 “나는 당신의 피조물이요, 종이요, 당신의 뜻대로 살겠습니다.”라는 말이다. 그리고 그 뜻대로 산다고 하는 표적으로 내가 십분의 일을 주님 앞에 드리겠다는 것이다. 십일조는 주님 뜻대로 살겠다는 하나의 맹세, 즉 서원을 하고 돌기둥을 세우는 것이다. 즉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고 하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결코 변치 않는 돌기둥이 되는 것이다. 거기에 기름을 붓는데, 옛날 가난한 시절 떡을 갖다 놓으면 심술궂은 아이들이 남이 못 먹게 침을 바르는 것처럼, ‘이것은 내 것이다. 아무도 못 건드린다.’ 하고 그 약속을 자기의 소유물로 삼아버린 것이다.
인간의 노력으로는 하나님의 전을 지을 수 없고 하늘가는 문을 만들 수 없다. 하나님이 만들어주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내가 너를 도우리라’고 하신 그 약속의 말씀이 하나님의 전이 된 것이고 하늘가는 문이 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 약속의 말씀 속에 거하시며 그 약속을 절대로 떠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 속에도 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돌기둥이 되었는지, 아니면 모래기둥이 되었는지 살펴봐야 한다.
과거 이스라엘 사람들이 조상이 꾼 하룻밤의 꿈을 신뢰해서 수천 년의 믿음을 변개치 않고 지킨 것같이, 오늘날 꿈이나 환상보다 더 확실한 그리스도의 말씀을 서원 삼아 그 말씀이 우리 신앙생활에 돌기둥이 되고 타락한 세상을 지탱하는 돌기둥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