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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으려면 구조조정 하라(막9:43~50)

1110호 · 2021-08-15

‘지혜란 버릴 것을 아는 기술이다.’

맞습니다. 멀리 가려면 짐이 가벼워야 하고, 높이 오르려면 역시 짐이 단출해야 합니다. 등산하는 사람이 배낭에 짐을 바리바리 싸서 가면 짐에 치여서 절대 정상까지 오를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공하고 싶으냐? 천국 가고 싶으냐? 그러면 불필요한 것들 좀 버려라. 제발 인생의 구조조정 좀 해라.”고 당부하십니다. 그런 말이 어디 있느냐고요? 마가복음 9장 말씀입니다.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막9:43~47). 영적인 것이나 혼적인 것이나 육적인 것이 성장하는데 저해가 되는 요소들, 불필요한 것들을 제거해라, 그래야 멀리 갈 수 있고, 높이 오를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구조조정(構造調整)이란 얽을 구(構), 지을 조(造), 고를 조(調), 가지런할 정(整)으로, 기업의 기존 사업구조나 조직구조를 보다 효과적으로 그 효율을 높이고자 실시하는 개혁 작업을 뜻합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이냐?’ 하시는 분들을 위해 이렇게 설명 드리겠습니다. 제가 어릴 때 큰댁이 소사에서 복숭아 농사를 지으셨는데, 학창시절에 자주 그곳에 놀러가곤 했습니다. 어르신이 일을 하시니까 저도 조금이나마 돕고자 따라다녔는데, 그분은 과수원여기저기를 다니면서 나뭇가지를 뚝뚝 잘라버리기도 하고, 잔 복숭아를 똑똑 따버리곤 하셨습니다. 그때는 먹고 사는 게 어렵던 시절인지라 저는 아까운 마음에 그걸 왜 따버리느냐고 물었더니, 이렇게 잘라내야 복숭아가 더 커지고 맛도 좋아진다고 했습니다. 이게 구조조정입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잔 열매를 전지해서 나머지 열매가 더 실하게 하는 것처럼, 이익을 남기지 못하는 사업을 잘라냄으로 기업 전체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구조조정입니다.

이것과 똑같은 이야기가 성경에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과 누가복음 19장에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느 주인이 타국에 가면서 종들에게 각각 다섯 달란트(열 므나), 두 달란트(다섯 므나), 한 달란트(한 므나)를 주고 갔습니다. 몇 년 후 주인이 돌아와 회계를 했더니, 다들 갑절의 이윤을 남겼는데, 한 달란트(한 므나) 받은 종은 전혀 이익을 남기지 못했습니다. 쉽게 말해 대기업의 계열사 중에 몇몇 기업들은 100% 이윤을 창출한 반면, 어느 기업은 이윤을 전혀 남기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주인은 이윤을 남기지 못한 그를 퇴출시키고(마25:30), 이윤을 많이 남긴 기업에 더욱 많이 투자합니다.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를 남긴 자에게 준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마25:28, 눅19:24). 누가복음 19장 26절에는 구조조정에 대해 아주 간단하면서도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우리나라 100대 기업 중 지금 살아남은 기업은 18개 정도 된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윤을 내지 못하는 기업에 미련을 갖고 처분하지 못하다 결국 공중분해된 것입니다. 대마불사를 호언하던 어느 대기업도 그러지 않았습니까? 지금 살아있는 기업은 재빠르게 몸집을 줄이고 철저한 구조조정에 성공한 기업들입니다.

기업뿐 아니라 국가나 지자체나 교회 또한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합니다. 단계적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상하간의 원활한 의사소통도 불가능하고 또한 전달과정에서 의도가 왜곡되어 일의 능률이 떨어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의 복잡한 과정을 폐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누구든지 직접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신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구조조정을 단행해서 성공한 대표적 기업으로 자동차 회사 크라이슬러를 들 수 있습니다. 그 성공의 주역은 아이아 코카입니다. 아이아 코카가 크라이슬러에 갔을 때는 그야말로 부도 직전이었습니다. 그는 방만한 경영으로 무너져가고 있던 크라이슬러에 전면적인 쇄신이 필요함을 깨닫고 과감한 구조조정에 들어갑니다. 먼저 35명이나 되는 부사장 중 33명을 퇴출시키고, 만 오천 명가량의 정규직을 해고했으며 정신적 구조조정까지 단행해서 취임한 지 몇 해 지나지 않아 부채를 일거에 상환하고 순익을 내는 신화를 일궈냈습니다. 이렇게 한 후에 아이아 코카는 그간 삭감했던 임금도 다시 본래의 수준으로 올렸고, 해고했던 직원들도 다시 복귀시키는 노력을 했습니다.

아이아 코카는 바로 마태복음 25장과 누가복음 19장의 구조조정을 그대로 단행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없는 자의 것을 빼앗아 있는 자에게 주라’는 말씀을 읽고는 ‘너무하다’,

‘냉정하다’ 하는데, 그게 아닙니다. 바로 아이아 코카처럼 기업이 이익을 낼 때 그들을 다시 돕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공멸을 면하고 상생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14:26)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부모가 신앙의 걸림돌이 되면, 처자나 형제가 방해하면 그것에서도 돌아서라는 말씀입니다. 냉정한 말씀이지요. 그러나 내 영혼이 잘 되어야 범사에 잘 되어 부모도 구원하고, 형제도 구원할 수 있기에 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제가 그 샘플 아닙니까? 신앙 때문에 가족을 떠났었지만, 결국 제가 성공하니까 가족들을 다 구원했을 뿐 아니라 많은 주의 종까지 배출할 수 있었습니다.

아이아 코카는 기업의 구조조정만 한 것이 아니라 정신적 구조조정도 단행했습니다. 게으르고 책임감도 없으면서 월급만 챙겨가는 간부들을 다 잘라냈습니다. 그렇습니다. 정신이 변해야 삶이 변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게으름, 불평 불만, 나태함, 고착된 사고방식, 대충하는 습관, 교만, 위선, 거짓 등 성공을 가로막는 것들, 성공의 저해요소를 제거해야 합니다.

주부님들도 구조조정이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지 마세요. 반찬 이것저것 만드느라 돈 낭비, 시간 낭비하지 마시고, 맛난 거 한두 가지로 줄이세요. 옷장이 복잡하지요? 옷장 하나 더 사실 생각 말고 불필요한 것들을 정리하세요.

제 지인은 애들을 다 출가시키고는 펜트하우스에서 작은 아파트로 이사했다고 합니다. 괜히 집만 크면 휑하고, 관리비만 많이 나오고, 또 청소하기 힘들다고요. 그것도 구조조정입니다. 부부 둘이 사는데 작은 집이면 족합니다. 그 집을 팔고, 남는 돈으로 이윤이 나는 곳에 투자하면 일석이조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저 높은 곳을 향하여’ 가는 우리는 신앙에 저해가 되는 모든 요소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손이 죄를 짓거든, 발이 자꾸 범죄의 소굴로 끌고 가거든, 눈이 못된 것만 쳐다보거든 과감히 손을, 발을, 눈을 제거해버려야 저 높은 곳에 갈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올무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돈이 하나님보다 앞서고, 세상의 명예가 집사나 권사나 장로 직분보다 귀하게 여겨진다면 그것 역시 잘라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룟 유다처럼, 사울처럼, 삼손처럼, 부자청년처럼 하나님께 버림받게 됩니다. 바울이 대사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지식이 하나님과의 견고한 진임을 깨닫고 그것을 과감히 버렸기 때문입니다(빌3:8).

누군가 그랬습니다. ‘열두 가지 재주 가진 놈이 저녁거리 간 데 없다’고요. 열두 가지 재주를 구조조정 했어야 하는데 안 해서 그런 겁니다. 한 가지 재주를 키워 그 분야에 최고가 되게 해주세요. 요즘 아이들 학원 몇 개씩 다니는데 그것보다는 잘하는 한 가지에 집중시켜야 효과가 날 것입니다.

모세가 조직개편을 했듯이, 아브라함이 롯과의 관계를 정리했듯이, 우리 하나님이 지성소의 절차를 간편화했듯이,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군사개편을 요구하셨듯이 우리도 모든 면에서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합니다. 내 기업이나 내 가정, 내 교회, 내 국가와 내 지자체의 저해요소, 내 영·혼·육의 저해요소를 잘라낼 때 아름다운 미래가 꽃다발을 안고 여러분에게 달려올 것입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마7:19). 할렐루야!

변화가 두려우면

현실에 만족하고 살아라

인식의 변화 없이

밝은 내일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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