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애(母性愛)는 진하다
한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이는 심히 아름다웠지만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애굽의 왕이 이를 두려워하여 사내아이를 낳으면 나일강에 가차 없이 버리라고 명령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아이는 불행히도 사내아이여서 태어나자마자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이의 어미는 차마 아이를 버릴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석 달 동안 아이를 숨깁니다. 얼마나 가슴을 졸이며 키웠을까요. 행여 아이 울음소리가 밖으로 새나갈까, 먼저 자식을 죽여 반은 미친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어 신고가 들어갈까 정말 살얼음판을 걷는 심경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어미는 두려워하지는 않았습니다(히11:23). 모성애가 그녀를 지탱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숨길 수 없이 되매”(출2:3) 아이를 갈대상자에 넣어 강에 띄웁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마침 애굽의 공주가 목욕하러 나왔다가 이 갈대상자 속의 아이를 발견하게 되고, 아이는 애굽의 궁에서 왕자로 살게 됩니다. 유모라는 이름으로 온 어머니의 젖과 사랑을 먹으면서! 아이의 이름은 ‘모세’입니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는 강합니다. 출애굽기 2장을 살펴보면 모세의 아버지의 이야기는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아이를 살리기 위한 어미의 몸부림만 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어머니는 피를 쏟으며 자식을 낳았기 때문에 부성애와는 사뭇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피 한 방울 남김없이 쏟아내고 우리를 얻으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에게 우리는 귀하디귀한 존재입니다. 어떻게든 우리를 살리려고, 잘 되게 하려고 그분은 몸부림치십니다. 그리고 요게벳이 유모가 되어 젖을 먹이며 자식을 키웠듯이, 당신의 이름으로 온 성령을 통해 우리를 영적으로 먹여 키우시고, 가르치시고, 인도하시고, 보호하십니다. 모세가 유모의 가르침을 받고 자라듯, 우리도 성령을 통해 하나님을 배우며 자랍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인간의 모성애 이상입니다.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찌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사49:15~16).
숭고한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를 하나님 자녀 되게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