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사에 감사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미국의 앨라배마는 목화 재배가 주요 산업이었으나 1895년에 난데없는 목화 벌레 떼의 극성으로 기근과 실직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재앙 앞에서 좌절하지 않고 목화를 심던 밭에 땅콩을 심어 성공의 길을 찾아 세계적인 땅콩 생산지로 만들었다. 그곳의 소도시인 엔터프라이즈에는 다음과 같은 감사시를 적은 비석이 세워져 있다.
“우리는 목화를 갉아 먹었던 벌레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다. 이 벌레는 우리에게 번영의 계기를 주었고, 하면 된다는 신념을 주었다. 목화 벌레들이여! 다시 한번 그대들의 노고에 감사하노라.”
촛불에 감사하라, 그리하면 하나님은 달빛을 주실 것이다.
달빛에 감사하라, 그리하면 하나님은 햇빛을 주실 것이다.
햇빛에 감사하라, 그리하면 하나님은 일곱 날의 빛을 주실 것이다.
감사는 예방 주사와 같고, 항생제와 같고, 방부제와 같은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점점 감사를 잃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고 세상으로 시선과 마음을 빼앗김으로 하나님을 향한 감사함을 잃었다고 성경은 경고하고 있다(롬1:21~23).
마귀는 범사에 불평하게 한다. 그러나 성령님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신다. 당신은 누구의 말을 듣고 살 것인가?
똑같이 어려운 상황이 닥쳤을 때 주위 사람과 하나님을 원망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오히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며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고 노력하는 이들이 있다. 잊지 말자. 감사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살전5:18).
감사는 능력이요, 행복한 삶을 약속하는 열쇠이다.
김상욱 목사
ksw9669@hanmail.net
Why Jesus?
세상 친구들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교회 이야기를 종종 꺼내곤 합니다. 예수님을 떠나 이제는 교회에 나가지 않는 친구들이 항상 마음에 걸리기 때문입니다. 다시 교회에 다니라는 제 말에 친구는 항상 이렇게 말합니다. “어차피 교회 가는 거 천국 가려고 가는 건데 난 아직 멀었으니까 나중에 갈게.” 아직 20대이기 때문에 죽은 후 천국을 위해 교회에 가기엔 너무 시간이 아깝다는 것입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스스로 ‘꼭 그것 때문에만 교회에 오라고 하는 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불쑥 듭니다. 또 다른 한 친구는 교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저에게 “천국에서 부자 되려고 열심히 교회 가는 거야?”라며 물어보기도 합니다. 이런 말을 들을 때도 ‘그것 때문에만도 아닌데’라는 생각이 듭니다. 분명 천국을 가기 위해, 상급을 쌓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예수님을 믿는 이유에는 꼭 ‘천국’만 존재하진 않습니다.
물론 제가 예수님을 전하는 이유는 그들을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또 다른 이유는 예수님 그 한 분이 너무 좋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죽은 후 천국에 가는 것뿐만이 아니라 당장 이 세상에서도 많은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힘들 때 나를 위로해주시고, 찬양할 때 넘치는 기쁨과 은혜를 부어주시고, 내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십니다. 또한 신앙생활이 겉으로 보기엔 내가 주님께 드리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이 저에게 주시는 게 훨씬 많습니다. 아무리 내가 주님께 더 드리려고 해도 결국에 예수님은 내가 드린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주십니다. 이런 예수님을 떠날 수 없고, 이런 예수님이 너무 좋으므로 저는 예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이렇게 질문하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하려고 합니다. “네가 맛집 추천하는 거랑 똑같아.”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내 주변 사람들에게 소문을 내기 마련입니다. 하루빨리 그 즐거운 경험을 함께하고 싶기 때문이죠. 이것처럼 저도 경험해보니 너무 좋은 예수님을 더욱 소문내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영적 맛집인 예수중심교회도 함께 소문내고 싶습니다. 진짜 음식이 맛있으니까요.
장수정
sjjang50@gmail.com
최고의 인재상
회사를 운영하다 보면 여러 가지 애로사항이 많지만 가장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사람을 구하는 일일 것입니다. 담당 업무에 대해 충분한 자질이 있는지도 중요하지만 회사가 추구하는 방향과 같은 가치관을 갖고 있는지가 정말 중요합니다. 특히 우리 회사는 근로자를 채용할 때 능력보다 인성을 가장 중요시 여깁니다. 아무리 관련 분야에 해박한 지식과 타고난 재능이 있다고 해도 인성이 형편없으면 그 사람은 회사 일에도 지장을 주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동료들과 잦은 마찰로 종종 물의를 일으킵니다. 그래서 면접을 볼 때 지원자의 태도나 말투를 면밀히 관찰하고, 그의 생각을 충분히 듣고 신중하게 선택합니다.
우리 회사를 스쳐 지나간 직원들 대부분은 일이 험하고 힘들어 그만두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특별히 조향사가 되고 싶어서 입사한 사람들이 많았는데, 조향사가 되려면 최소 3년의 기간 동안 충분한 훈련을 거쳐야 하지만, 번지르르한 겉모습만 기대했다가 그만 포기하기 일쑤였습니다. 또 어떤 직원은 학교 성적, 토익 점수, 이력 등 뭐 하나 빠질 것 없이 꽤 훌륭한 스펙을 가지고 있어도 윗사람에게 버릇없이 행동하고, 매일 불평불만에 잦은 지각이 일상이 되어, 옆에서 지켜보는 동료 직원들이 다들 힘이 빠질 정도였습니다.
우리 교회의 문선 자매와 제 동생인 대박이는 우리 회사에 입사한 지 각각 5년, 4년이 되었는데, 저의 왼팔이고, 오른팔입니다. 그 두 사람은 아침 8시 30분이면 사무실에서 일과를 준비합니다. 문선 자매는 우리 회사에서 저 다음으로 높은 직위를 가졌지만, 사무실 청소, 꽃 물주는 일, 쓰레기 버리는 일, 정리 정돈 등 부하 직원들이 해야 할 일들도 본인이 솔선수범합니다. 대박이는 영업, 마케팅 업무를 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힘쓰는 일은 도맡아 하고, 생산 설비 청소나 점검, 생산, 업체 관리, 심지어는 연구팀이 해야 하는 벌크 제조나 연구실 기기 설비 점검도 나서서 합니다. 게다가 큰 프로젝트나 발주가 들어오면 둘이서 야간작업을 해서라도 스케줄을 맞춥니다.
우리는 처음엔 서로 삐걱거리기도 했지만, 이제는 제법 합이 잘 맞고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금방 알아차립니다. 우리는 일이 힘들 때마다 항상 총회장 목사님의 가르침을 지표로 삼았습니다. 한 번 시작을 했으면 끝장을 볼 때까지 쉬지 않고 일했고, 제품 개발이든 생산이든 일을 따지지 않고,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최선을 다해 일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함께 기도하고 금식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그 작고 작았던 회사를 이렇게 키울 수 있었습니다.
사람은 누구에게 배우느냐가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 교회 교인들은 모두 총회장 목사님의 가르침이 몸에 배 모두가 최고의 인재상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총회장 목사님은 일을 시작했으면 끝장을 보라고 하셨고, 최선을 다해 열정적으로 일하라고 하셨습니다. 또 웃음은 최고의 스펙이라고 하시고, 똑똑한 자보다 정직한 자를 쓰라고 알려주셨습니다.
최근 대부분의 기업이 추구하는 인재상 1위는 전문성을 갖춘 인재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회사 최고의 인재상은 목사님의 가르침에 따라 정직한 사람, 최선을 다하는 사람, 부지런한 사람입니다. 이런 인성을 갖춘 사람들이 바로 기업을 더 크게 성장시키는 최고의 주역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 마음에 찾아도 아직 얻지 못한 것이 이것이라 일천 남자 중에서 하나를 얻었거니와 일천 여인 중에서는 하나도 얻지 못하였느니라”(전7:28).
김온유 집사
ceo@edenique.co.kr
기쁨의 가치와 방향성
지난 한 주 동안 자신에게 있었던 일 가운데 나를 기쁘게 만든 일이 무엇이었는지 한번 생각해 보자. 나에게 가장 기뻤던 일 가운데 하나는 의뢰받았던 통계분석 보고서 제출일이 한 주 미뤄진 일이다. 언젠가는 해야 하는 일이고 마무리 지어야 하는 일인데도 시간에 쫓기면서 작업하다 여유가 주어지면 왜 그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기뻐하는 일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혹자는 오랫동안 바라던 것을 성취했기 때문일 수도 있고, 가족 또는 가까운 사람들과 강한 유대감을 느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자신의 능력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아서 일수도 있다. 이렇게 거창한 일은 아니더라도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기쁨을 느낄 수도 있다.
우리를 웃음 짓게 만드는 여러 이유는 우리의 얼굴이 서로 다른 것처럼 조금씩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렇게 살아가면서 맛보게 되는 기쁨의 경험은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데 있어 삶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 또 우리의 모든 선택과 행동을 결정하는 중요한 동기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기쁨이라는 것이 우리 삶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면,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이 땅을 살아가면서 무엇이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삶의 기쁨인지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해볼 가치가 있다.
성경에는 기쁨과 관련된 많은 교훈을 언급하고 있다. 육체적인 기쁨, 일시적인 기쁨, 어리석은 기쁨 등 일정한 한도나 한계가 있는 기쁨도 있지만, 최후에 누릴 기쁨, 우리 장래에 얻을 기쁨 등 영적이며 영원한 기쁨도 있다. 특히 사도바울이 쓴 빌립보서는 옥중에서 쓰인 글 중 하나로 당시 죄수의 신분으로 쓴 글이지만 기쁨으로 시작해서 기쁨으로 마친다. 대체 무엇이 옥중에 있는 사도바울을 기뻐할 수 있게 했을까? 성경을 보면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기뻐했다기보다 기쁨의 근원인 그리스도를 알았기에 기뻐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기쁨’은 처한 형편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준비된 마음에서 시작되므로 우리는 항상 기뻐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환난 가운데서도 오히려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살전1:6)고 성경은 말한다. 또한, 성도는 기쁨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기쁘게 하며 살아야 할 마땅한 의무가 있다. 내가 어떤 것에서 기쁨을 취하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이다.
유명한 글 중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라는 말이 있다. ‘기쁨’을 미래의 일로만 언급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슬픔 가운데서 기뻐할 수 있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마음이 바로 믿음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의 가장 깊은 기쁨이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 최고의 보물로 드러낸다. 따라서 우리가 기쁨을 추구하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이다. 왜냐?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은 선택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4:4).
코로나바이러스로…, 행복의 가치가 돈과 연결된 지금, 온 세상의 기쁨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듯하다. 수입은 줄고, 뻥 뚫린 지갑과 통장잔고, 미간의 주름, 그리고 공허한 마음, 줄어든 웃음. 좀처럼 기뻐할 이유를 찾기 힘든 요즘, 묵상하기 딱 좋은 성경말씀 빌립보서. 새로이 시작하는 한 주는 빌립보서를 통해 사도바울의 기쁨이 전염되어 여러분의 얼굴과 마음에 기쁨을 되찾길 소망한다.
Dr. 권정미
jmgood77@gmail.com
소화된 사고, 묵상
어떤 그리스도인이 유언비어에 시달리며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서 하루는 기도원에 들어가 울면서 기도를 하던 중, 오랜 시간이 흘러 마음속에서 “그럴 수도 있다!”는 성령님의 음성이 들려왔고 처음에는 몹시 실망스러웠지만 깊은 묵상 가운데 ‘그렇지. 세상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라며 받아들이는 그 순간, 마음 가득 평안이 찾아왔다. 율법적으로 ‘세상에 그럴 수가 있느냐?’며 원망할 땐 고통스러웠는데, ‘그럴 수도 있지!’라며 복음적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하늘 평강이 도래된 것이다.
묵상(시1:2)은 본질적으로 ‘소화된 사고’라 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마음속에 넣고 거듭거듭 생각하는 것이다. 묵상은 소가 되새김질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는데, 소는 풀을 먹고 나서 그것을 첫 위장에 보내고 드러눕는다. 그리고 먹은 것을 다시 입으로 올려 씹고 다시 삼키며, 이 소화 과정을 3번 되풀이하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소의 그 큰 몸이 어떻게 풀만 가지고 지탱하는지 의문이 풀리기도 한다. 풀을 씹고 또 씹는 과정을 통해서 소는 풀이 가지고 있는 모든 영양분을 다 흡수하기 때문에 다른 음식물을 먹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일회적으로 편리한 것들을 매우 좋아한다. 인스턴트식품이 범람하는 것도 바로 이런 심리를 반영한다. 이런 현상이 신앙에까지 영향을 미치면 그 결과는 상당히 심각해진다. 그것은 현상적이고 외부적인 조건에 좌우되므로 내 삶에 하나님의 뜻에 대한 깊은 통찰이 결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을 향한 존중과 비난, 긍정과 부정의 반응에 따르지 않고, 무엇이 옳은지를 결정하는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이 된다. 현상이 아닌 참된 평안을 통해 승리를 얻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쁜 일손을 잠시 멈추고,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되새김질하는 묵상의 시간을 가지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김정옥 전도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