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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0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고난이 없는 영광은 없다(딤후4:1~8)

1090호 · 2021-03-28

우리는 지난주 ‘The Passion Of The Christ’에서 예수 역할을 했던 짐 카비젤(Jim Caviezel)의 간증이 담긴 영상을 보았습니다.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이 영화의 감독인 멜 깁슨(Mel Gibson)은 사비를 털어 이 영화를 제작할 결심을 했습니다. 그래서 짐 카비젤에게 출연해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짐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예수 역할을 한다는 것이 어불성설 같았습니다. 자신이 대단한 믿음의 소유자도 아니고, 성화된 삶을 살고 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민 끝에 출연을 결심하던 날, 감독인 멜 깁슨에게서 전화 한 통이 왔는데 ‘당신이 이 영화를 찍으면 더 이상 배우 생활을 못 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짐은 자신의 모든 것을 잃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순간 자신 이름의 이니셜이 ‘J. C.(Jesus Christ)’ 라는 것과 자신의 나이 역시 33살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짐은 하나님의 일에 우연은 없다고 믿고 출연을 결심했고, 대본을 받아들었습니다.

영화는 그렇게 크랭크인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부터 짐에게는 말할 수 없는 시련과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촬영 시작부터 짐의 어깨는 탈구되어 고통스러웠고, 주요 언론에서는 멜 깁슨 감독이 ‘반 유대주의자’라는 소문과 함께 비난과 협박이 이어졌습니다. 그뿐 아니라 짐은 채찍에 맞는 장면에서는 통역이 원활치 않아 진짜 채찍을 맞고 등이 찢어져 쓰러지는 사태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가 얼마나 이 영화를 찍을 때 고생했는지는 그의 몸무게가 91kg에서 76kg까지 준 것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그의 몸은 분장을 하지 않았음에도 이미 푸른색을 띠고 있었습니다. 십자가에 부딪칠 때마다 그의 어깨는 거의 마비 수준이었고, 그의 정신은 혼미했습니다. 짐은 그 와중에 자신의 심장에 이상이 있음을 직감했는데, 의사는 진찰 후에 짐이 죽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의사의 경고에도 그는 촬영을 계속하겠노라고 했고, 산에 오르는 장면에서 마귀가 “넌 이제 죽을 거야.”라고 계속 협박했으나 그는 그것이 최고의 소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믿었기 때문입니다. 짐은 이미 예전의 짐이 아니었습니다.

마지막 장면인 십자가에 매달렸을 때 천둥 번개가 일었으나 짐은 태풍의 눈 속에 있는 것처럼 편안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빛이 내려와 짐을 감쌌고, 사람들은 그의 몸을 둘러싼 광채를 봤습니다. 짐은 이 영화를 통해 짐 카비젤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기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진실된 마음을 아시고 당신이 겪은 고초를 겪게 하사 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그에게 돌아오기를 바라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 간증을 듣고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아무 감각도, 아무 감동도 느끼지 못했다면 당신은 영적 문둥병자입니다. 저는 이 세상을 떠날 때 유언으로 ‘이 영화를 꼭 봐라.’고 하고 싶을 정도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또한 저는 짐 카비젤의 간증을 들으면서 ‘내가 하고 싶은 말, 내가 자주 했던 말들과 어쩌면 이리 일치할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너무 당연한 것입니다. 진리는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이 일하시면 마귀도 일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나타나기 전에는 반드시 위기가 옵니다. 짐이 ‘The Passion Of The Christ(예수의 고난)’이라는 영화를 하려고 마음먹자 바로 비난이 쏟아졌습니다. 이것은 마귀의 흔한 전략입니다. 그래서 못하게, 낙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10차에 걸쳐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기도성회를 할 때마다 날씨가 참 얄궂었습니다. 꼭 바람이 불고 집회 당일까지 비가 왔습니다. 마귀가 일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통해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맛보았습니다. 당일 비가 멈추고 태양이 작열하여 미세먼지까지 없애주시며 청명한 날씨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가려고 하면 갑자기 애가 아프고, 안 믿던 자가 교회에 나가기 시작하면 사업이 갑자기 미끄러지는 일 등, 일련의 일들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때 쓰러지고 낙담하면 안 됩니다.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리듯 하나님만 바라보고 갈 길을 가면 당신에게 하나님의 섭리가 나타날 것이고, 짐의 경우처럼 하나님이 힘을 주시고, 도와주실 것입니다.

둘째, 고난 없는 영광은 없다는 것입니다. 짐은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부활을 원하지만, 고난 받는 것은 원치 않는다.”

올림픽에서 고난 없이 메달을 딸 수 있을까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누구나 아브라함의 축복을 받기 원하면서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고난은 거부합니다. 노아처럼 의의 후사가 되고 싶어 하지만 100여 년 동안 방주를 짓는 일은 싫어합니다. 다들 부활에 동참하고 싶어 하지만 십자가를 지는 일 앞에서는 도망칩니다. 그러나 “No Cross, No Crown!”, 십자가의 고난 없이는 영광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실 날이 다가오자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요12:2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난을 받아야 영광이 온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에는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롬6:5),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롬6:8)라고 말씀하심으로 예수의 죽음에 동참해야 부활에 동참할 수 있다고 합니다.

편하고 좋을 때만 크리스천으로 산다면 영원한 크리스천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눅9:24)고 말씀하십니다.

고난은 동굴이 아니라 터널입니다. 그러므로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 말고, 고난이 유익이라 여기며 감사하며 묵묵히 걸어갑시다. 밤이 깊으면 곧 새벽이 오니까요.

셋째, 대충해서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짐은 말합니다. “운동선수가 일주일에 한 번 연습해서 메달을 딸 수 있을까?” 매일, 그것도 밥 먹고 자는 시간 빼고 계속, 맹렬히 연습해야 메달을 딸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나오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매일, 늘 말씀을 상고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금식도 해야 합니다. 그래서 늘 성령으로 충만할 때 주님이 언제 오시든지 들림 받게 됩니다. 제가 여러분들을 지지고 볶는 것은 하늘나라에 안착시키려는 것이고, 그 나라에서 상과 면류관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편안한 삶은 영원한 안식을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그렸던 예수님과 가룟 유다의 모델이 동일 인물이었다고 합니다. 성령 충만할 때는 예수님의 모델이 되었는데, 세상과 타협하고 살아가다 보니 가룟 유다와 같은 얼굴로 변하고 만 것입니다. 가룟 유다를 지탄하십니까? 그러나 누구나 가룟 유다가 될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을 잃으면 예수에게서 등을 돌리는 일은 다반사입니다.

짐은 말합니다. “세상에서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이 땅에서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지 못해도, 세상에서 잊혀진 이름이 될지언정 하늘나라에 내 이름을 기록하고 싶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이 땅에 소망을 두지 말고, 하늘나라에 내 이름이 기록되도록 사나 죽으나 오직 주를 위해 살아야 합니다(롬14:8).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복음의 전도자가 된 짐처럼, 우리도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전파에 힘을 써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고, 예수 그리스도께 생명을 바치는 것보다 더 귀한 일은 없습니다. 우리는 첫째 사망(육체의 죽음)을 피할 수 없지만(히9:27), 둘째 사망(영혼의 심판)은 피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옥으로 보내지 않습니다. 내가 스스로 지옥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제라도 예수를 위해 살아보지 않으시렵니까? 내 이름이 생명록에 새겨지도록 주를 위해 살아보지 않으시렵니까? 짐 카비젤처럼 예수님으로 인해 변화되지 않으시렵니까?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8:18). 할렐루야!

거센 파도가

유능한 해군을 만든다

최후의 승자는

끝까지 인내한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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