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한 영향력
선한 영향력
선한 영향력, 누군가가 하는 행동이나 말이 주변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홍대 인근의 모 파스타 가게는 결식 아동들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하고 SNS에서 크게 주목을 받았다. 이 사장이 실천한 선한 영향력은 자영업자 자발적 공동체 운동인 ‘선한 영향력 프로젝트’의 시초가 되었고, 이는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웃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기를 원하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3~16). 썩어가는 세상에 소금이 되고, 어두운 세상에 빛이 되어 밝히는 것이 선한 영향력이다. 그러려면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막12:30~31)는 말씀을 실천해야 한다. 먼저는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 만민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요, 둘째는 고넬료와 다비다처럼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해서 나누고 보살피고 이해하는 것이다.
선한 영향력은 말이 아닌 행동에서 비롯된다. 예수님이 선한 영향력을 끼치려고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것처럼.
김성일
농부와 포도나무의 관계 (요한복음 15:1~2)
하나님은 농부시다. 그가 아들을 세상에 보내심은 아들로 참 포도나무로 삼으심이니 인류는 참 포도나무의 진액을 받는 가지가 되어 참열매를 맺게 하려 하심이다.
죄인으로 태어나는 인생은 못된 나무로 변질되었으나 농부의 진실된 보살핌의 보상으로써 회개의 은총을 입고 보혈을 환영하여 영생하는 생명을 누리게 된다. 농부는 열매 맺지 않는 가지를 잘라냄으로써 포도나무를 깨끗하고 풍성하게 하여 좋은 열매를 가꾼다.
가지가 나무를 떠나면 절로 말라지고 나무에 붙어있는 가지는 절로 열매를 맺으니, 가지가 나무에 달려 있기를 소망할지라도 주인인 농부를 실망시킨 가지는 농부의 임의로 제거해버린다(눅13:7~9).
농부의 땀과 노력의 결과는 그 가지에 열리는 열매가 보상이 된다. 그러나 일 년 내내 수고하고 땀 흘린 대가를 회수할 길이 없어질 때 농부는 분노하게 되고 열매 없는 가지에 대해서는 긍휼 대신 심판을 가하는 것이다. 한번 제거당한 가지는 다시 그 나무에 붙을 수 없다. 마귀는 하나님이 제해버리신 포도나무 가지이다. 노아 때의 홍수도, 소돔 고모라의 심판도 농부를 실망시킨 결과였고, 가룟 유다도 농부를 실망시킨 열매 없는 가지였다. 농부의 한 해 기업의 성공 여부는 가지에 달려 있고, 농부의 생사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포도나무와 가지에 쏟는 농부의 애착과 희생과 노력은 생사를 건 투쟁인 것이다.
하나님은 범죄 한 인간을 당장 제해버리지 않으시고 그리스도의 피로 대속해주셨으니, 오직 믿고 회개하고 순종하는 자들만을 열매로 거두신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회개를 제일의 은혜로 생각하고 회개에 참예함으로써 좋은 나무에 접붙임이 된다. 회개란 비록 열매 맺을 수 없는 가지지만 하나님의 자비하신 성품으로 인한 구원의 기회를 얻는 것이다. 이는 육체를 떠나면 영원히 효력을 잃게 된다.
농부는 참포도나무를 아끼고 보호하기 위하여 나쁜 가지를 속히 잘라내고 열매 맺는 가지를 지원한다. 하나님은 포도나무인 그리스도의 성공을 기대하시면서 그리스도의 성공을 저해하는 요소들을 열매 없는 가지로 인정하시고 묵인하지 않으신다. 포도나무 가지에 기생하는 더러운 영들을 제거해버림으로 풍성한 열매를 얻게 하신다.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지 않으면 두 가지 문제가 생긴다. 첫째는 농부에게 오는 손실이요, 또 포도나무에 큰 해를 끼친다. 농부이신 하나님과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에게 저해되는 무가치한 가지가 있다. 어떤 게으른 종은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었다가 쫓겨났고, 어리석은 부자는 제 몸 하나만을 우상처럼 위하다가 영혼이 망했고, 어떤 쭉정이 신자는 불타는 풀무불에 던져지고 말았다. 사단의 생각을 뿌리치지 못한 한 제자는 스승을 팔아넘기고 멸망했다. 세상에 잔뜩 취해 있던 처녀들은 주님 만날 기름을 쇠진시켰고, 어떤 종은 주인이 없는 사이 술 마시고 방종하다가 쫓겨나 이를 갈고 있다. 사울은 왕이었으나 하나님은 그를 파면하셨고 그는 일생 죽을 짓만 하다가 망하고 말았다.
농부이신 하나님과 포도나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관계 속에 있으니 그 가지들도 나무와 함께 농부를 위한 충실한 가지만 된다면 그 가지는 영원한 관계에 속하게 된다. 주님은 아버지와의 영원한 관계를 위하여 죽기도 하고 다시 살기도 하셨다(요10:17~18).
성도의 최고의 열매는 성령으로 나타내신다(갈5:22). 좋은 나무인 그리스도께 접붙임 된 성도는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열매 맺는다. 농부가 원하는 가지는 농부가 원하는 열매를 내는 가지다. 성령께서는 농부이신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가지가 되게 하시려 우리 육체의 소욕을 제거하고 신령한 열매 맺도록 인도하신다(갈5:16~24).
농부이신 하나님과 포도나무이신 예수는 영원한 관계 속에 있으니 성도는 나무와 함께 농부를 위한 충실한 가지가 된다면 그 가지는 영원한 관계에 속한다. 좋은 나무인 그리스도께 접붙임 받은 성도는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열매 맺으니 성도의 최고의 열매는 성령으로 나타내신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사랑으로 맺어지니 항상 하나님과 깊은 사귐이 지속되어야 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가지들이니 그의 진액을 풍성히 공급받아 영혼을 결실하는 열매를 거두어야 한다. 가지의 직분을 감당할 능력을 구하고 힘써 열매를 맺어가자. 그날의 보상을 바라보자.
박덕규 목사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타 부서의 여군 선배장교 김 중위가 불같이 화를 내며 저를 몰아세웠습니다. 평소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던 터라 더욱 당황했습니다.
사연을 알고 보니, 저의 직속상관이 협조해야 할 일이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김 중위의 자존심이 상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김 중위는 그의 부하인 저에게 화풀이를 했던 것입니다. 도가 지나친 상황을 지켜봤던 동료가 당장이라도 저의 직속상관에게 보고할 기세였습니다. 김 중위가 한 일을 저의 직속상관이 알게 되면 김 중위를 꾸짖거나, 일이 커져 부서 간의 싸움으로 번질 수도 있었습니다. 동료를 막아서며 ‘이 일은 내가 해결할 테니 비밀로 하라’고 당부했습니다. 협조해야 할 일이었고, 제가 하룻밤 고생하면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일을 해결한 후, 그의 마음을 풀어주었습니다. 이미 부대의 모든 사람이 ‘정 중위는 크리스천’이라고 알고 있는데, 제가 분쟁의 대상이 되어 하나님의 명예에 누가 될 수 없었고, ‘열 명의 동지보다 한 명의 적을 두지 말라’는 총회장 목사님의 말씀을 늘 마음에 새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존심이 강하고, 상처를 잘 받는 김 중위는 동료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어느 날, 김 중위는 누군가의 실수로 업무상 차질이 생겨 난처한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는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으나 홀로 힘들어하고 있었습니다. 우연히 알게 된 저는 지나칠 수 없어서 그를 도와주었습니다. 또 어느 날은 부대장님께서 대뜸 김 중위에 대해 물으셔서 그가 잘한 일만 강조하며 훌륭한 장교라고 말씀드렸더니 부대장님께서 김 중위를 격려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어느새 제가 전역할 때가 되어 선후배 장교들이 환송 식사자리를 마련했고, 그 자리에서 마지막 인사를 드렸습니다. “목사님께서 흐르는 물 한 컵을 떠줘도 은혜를 잊지 말라고 늘 가르치셨습니다. 그동안 베풀어주신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 말에 감정이 복받쳤는지 김 중위가 자리에서 일어나 목이 멘 소리로, “오늘이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지난날 큰 실수를 했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저의 앞날을 축복해주었습니다.
요셉이 극심한 고생 끝에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 억울한 누명을 씌웠던 시위대장 보디발의 아내와 그를 노예로 팔았던 형들을 용서하지 않고 복수하는 일에 그의 권력을 사용하였다면, 감동스러운 요셉의 이야기는 성경에서 볼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은혜를 입고도 자신을 배신한 사람들을 용서할 뿐만 아니라 여전히 축복하고 계신 총회장 목사님의 진심이 없었다면, ‘통 큰 자가 되라’는 그의 외침이 가슴 깊이 울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무한한 사랑을 베풀어주신 예수님의 관용을 닮기 위해 훈련해야 합니다. 관용은 홀로 있을 때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있어야 드러나는 성품입니다. 그래서 억울한 일을 당할 때는 관용을 훈련할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솔직히 저의 본심은 억울하고 상처받는 일을 원치 않을뿐더러, 나를 힘들게 한 사람에게 관용 베풀기를 여전히 힘겨워합니다. 그래도 그러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마냥 억울해하거나 속상해서 분을 내기보다는 생명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은혜를 먼저 생각하고 예수님의 마음을 구하며 관용을 베푸는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렇게 마음을 넓혀가다 보면 어느새 예수님처럼, 목사님처럼, 푸르른 아름드리나무가 되어 그 그늘 아래 누구나 편히 쉬어갈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요?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빌4:5).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고전13:5).
정명관
::울림 있는 삶:
말씀의 힘
딸아이가 9세이던 여름, 예수중심교회에 처음 출석한 이후 나의 생활은 완전히 바뀌었다. 목사님 설교 테이프를 들을 수 있는 출퇴근 시간이 하루 중 가장 행복했고, 직장에서는 팔뚝 빼곡히 말씀을 적어 남몰래 암송하기도 했다. 말씀이 갈급하여 교회신문을 모으며 그 안의 생명의 말씀들을 도화지에 적어 그것을 코팅한 후 연결하여 집안 곳곳에 걸기 시작했다. 화장실,베란다 유리창…. 공간이 부족해지자 천장에도 붙이고 현관문 앞뒤로도 붙였다.
그런데 그것이 딸아이에게 최고의 교육이 되었다. 사실 그때는 그것이 하나님의 교육방식이란 걸 몰랐다. 아침에 눈을 뜨면 딸아이의 눈에 말씀이 들어왔고, 그 말씀은 딸아이의 영혼 깊숙이 흡수되어 탁월한 암기력을 발휘하게 했다. 비속어와 신조어가 난무하는 학교생활 중에도 깍듯한 존대어와 하나님 말씀을 인용하여 고운 말, 바른말을 구사하는 딸은 ‘요즘 시대 흔치 않은 보물’이라며 선생님들의 칭찬을 받고 입에 자주 오르내림을 들을 수 있었다.
맹모삼천(孟母三遷)도 좋다. 하지만 생명의 말씀을 미간에 붙이고 기호를 삼으며 표를 삼고 문설주에 기록해 어릴 때부터 말씀으로 양육하는 것이 최고의 교육이다. 그러면 하나님이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얻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얻게 하사 너로 배불리 먹게 하시게 할 것이라”(신6:10~11)는 말씀을 이뤄주신다.
실제로 나와 딸아이의 삶 속에 이 말씀은 이뤄졌다. 다들 힘들어하는 시대에 하나님은 모든 일을 순탄케 하셨고, 생각지 못한 사업 확장의 길로 인도하셨다. 단언컨대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추성숙 집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