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어느 권사님이 작은 교회를 하나 짓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문의하셨다. 그분은 “이제 나이가 드니 삶을 잘 정리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 땅에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를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작은 교회라도 하나 짓고 가야겠다고 결정했습니다.”라고 했다. 참 멋진 분이다.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이것은 실상 내가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호사유피 인사유명(虎死遺皮 人死遺名)’,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는데, 나는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나는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하는 명제는 결국 ‘나는 어떤 사람으로 후대에게 기억될 것인가?’라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기도원에 있는 내 가묘에는 ‘예수의 종 목사 이초석’이라 써놨다. 군더더기가 없다. 나는 이 이상 바라는 것도, 원하는 것도 없다. 사도 바울처럼 내가 얻었다 함도 아니요, 이뤘다 함도 아니요, 과거 36년이 그랬듯이 앞으로의 여생도 오직 푯대만을 향해 달려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후대가 ‘그분은 정말 예수의 종이었어.’, ‘이초석 목사님은 예수님의 행복한 노예였지.’라고 기억해주길 바랄 뿐이다.
백세시대인 지금, 우리가 달려갈 길의 끝이 정상이라면 나는 7부 능선을 넘어 8부 능선을 향해 가고 있다. 정상까지 그리 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가 만드는 인생 작품을 아름답게 마무리 하려고 심혈을 기울인다. 해가 지기 전 노을이 가장 붉고 아름답듯 나도 그렇게 멋지게 마무리하련다.
이제 내 삶을 돌아보자. 숨 가쁘게 달려온 내 삶은 과연 후세가 인정할만한 삶이었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삶이었나, 내 발자취를 돌아보자.
사람에게 인정받고,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 나는 물로 내 성도들이, 내 제자들이 그런 삶을 살다 갔으면 한다. 우리, 영·혼·육을 잘 정리하고 관리해서 하늘에서는 상과 면류관이요, 후대에게는 길이 기억될 좋은 작품을 남기자.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느니라”(히9: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