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과 지연
하나님의 응답에는 세 가지가 있다. 바로 Yes(그래)와 No(안 돼), 그리고 바로 Wait(기다려라)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Yes’만 응답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No’라고 하실 때는 주면 그것이 되레 화가 되니까, 주면 그것 때문에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나갈까 봐 거절하시는 것이다. 아이가 칼을 달라고 하면 ‘안 돼’ 하는 엄마의 마음과 같다.
그리고 ‘기다리라’며 지연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더 좋은 때에 더 좋은 것으로 주시기 위함이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으로 옥살이를 할 때 옥에 들어온 술관장과 떡관장의 꿈을 해몽해준다. 그때 요셉은 술관장에게 복직하거든 자기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한다. 요셉의 해몽대로 술관장은 복직되었다. 그러나 술관장이 자기를 기억하게 해달라고 아무리 기도를 해도 술관장에게서는 무소식이었다. 하나님의 응답은 ‘기다려라’였다. 그렇게 2년이란 세월이 흐른 어느 날, 바로가 꾼 꿈을 해몽하지 못해 우왕좌왕할 때 비로소 술관장은 꿈쟁이 요셉을 기억해냈고, 요셉은 바로의 꿈을 해몽해주고 애굽 총리대신의 지위에 오르게 된다. 만일 하나님이 바로 ‘Yes’ 하셨다면 어찌 되었을까? 요셉이 애굽의 2인자가 될 수 있었을까?
하나님은 아하수에로 왕 때의 궁 문지기였던 모르드개가 왕을 구한 큰 업적을 바로 치사(致詞)하지 않게 하셨다. 왜그러셨을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멸절의 위험에 처했을 때 비로소 왕이 일기를 보게 함으로 원수 하만으로부터 역전하게 하셨고, 부림절의 기쁨을 누리게 하셨다.
올림픽 메인스타디움 집회나 1차 서울시청광장에서의 집회 모두 하나님의 응답은 ‘기다려라’였다. 거절하신 것이 아니라 조금 늦추신 것이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연단과 인내의 과정일 수 있으나 그 결과는 가장 좋은 것임을 우리는 배웠다. 기다림은 믿음이 있는 자의 특권 아닌가.
지연은 거절과 분명히 다르다. 하나님이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시기 위함이니 하나님의 때가 차기까지 기다려라.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전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