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것에 치우치지 마라
::책을 펴다:
세상 것에 치우치지 마라
고대 중국의 주(周)나라에 태보(太保)라는 왕이 있었는데, 그는 개를 너무 좋아했다. 그래서 이 나라 제후들은 왕에게 때마다 개(犬)를 공물로 바치곤 했는데 어느 날 여(旅)라는 오랑캐 나라의 제후가 ‘獒(오)’라는 진기한 개를 선물로 보냈다. 태보(太保)는 자신의 마음을 알아서 움직이는 그 개가 어찌나 예쁜지 ‘獒(오)’에게 흠뻑 빠져버렸다. 이를 옆에서 지켜보던 왕의 동생인 소공(召公) 석(奭)이 정사를 걱정하여 형인 왕 태보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써서 올렸다.
“귀와 눈에 팔리지 마시고 모든 법도를 곧게 하소서. 물건에 마음이 팔리면 소중한 큰 뜻을 잃게 되옵니다. 조그만 행위에 소홀하시면 마침내 큰 덕을 손상케 되오니 산을 아홉 길 쌓아 올리고서도 한 삼태기가 모자라면 그 들인 공이 일그러지고 마옵니다.”
소공은 애완에게 마음이 빼앗겨 주(周) 왕조의 기틀을 다져감에 소홀한 왕에게 충언의 글을 올린 것이다. 여기서 공휴일궤(功虧一簣)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오랫동안 쌓은 공이 한 번의 실수로 인하여 허사가 됨을 일컫는 말이요, 정성스레 한 일이 끝이 조금 모자라 그동안의 수고가 다 무산되는 것을 말한다.
“공들인 탑이 무너지랴.” 말한다. 그러나 공들인 탑도 무너진다. 계속 공들이지 못하면!
우리 믿음의 여정은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다. 그날까지 공들이지 않고 한눈을 팔면 그간의 수고와 헌신이 헛된 것이 되고 만다. 오감으로 느껴지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면 우리의 목적을 상실하기 쉽다. 그러므로 세상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라. 세상을 떠나 살 수는 없지만, 세상에 묻혀 살지는 마라.
-이초석 목사 저서
‘사랑이 무르익어야 결혼에 골인한다’ 중에서
오직 성령으로
어느 해 기도원집회 때였다. 그 날도 하나님은 세우신 당신의 종을 통하여 살아 역사하셨다. 당시 환경과 나 자신을 뛰어넘지 못하고 어두워진 심령 그대로를 하나님 앞에 내어놓으며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지친 심령 위에 성령과 새 힘을 부어주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날 밤, 꿈에서 나는 갑작스레 운전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큰 사거리에 수없이 널려 있는 크고 작은 차들은 아무런 질서도, 교통법규도 없었다. 게다가 내가 운전하는 차 앞으로 정체 모를 큰 물체들이 갑자기 여기서 불쑥, 저기서 불쑥 튀어나와 앞을 가로막는데 이건 도저히 운전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침착하고 민첩하게 운전하게 하는 어떤 강력한 힘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내 생각과 운전대와 온몸을 사로잡은 그 힘은 그 모든 장애물을 순간순간 정확하게 피하게 하여 미세한 안전사고조차 완벽하게 막아주었다. 꿈이었지만 그 힘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고, 그것이 곧 ‘성령님’이란 것도 알 수 있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신 후, 오순절 마가다락방에 모여 기도에 힘쓰는 중에 성령을 받은 제자들이 담대히 나가 복음을 전했고, 예수님과 같이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았으며, 나아가 순교까지도 두려워하지 않고 영광스럽게 맞이했음을 볼 수 있다. 그 성령께서는 지금도 동일하게 역사하셔서 목사님을 통해, 또한 성도들의 수없는 간증들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신다. 성령님은 보지 못한 것을 보게 하고, 듣지 못하는 것을 듣게 하며, 할 수 없는 것도 하게 하는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영이시기에 초대교회 때뿐 아니라 현시대에도 동일하게 우리 믿는 이들과 세상 자녀를 구분 짓는 능력과 지혜, 또한 생명의 근원이 되신다. 이것은 세상은 보지도, 듣지도, 받아보지도 못한 놀라운 비밀이고, 또한 우리가 나 자신의 능과 힘이 아닌 하나님을 의지케 하며, 나아가 세상이 우리를 볼 때 무언가 여유 있어 보이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그 성령님과 동행하며, 우리 모두 일어나 빛을 발하는 2021년이 되기를 기도한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3:5~6).
이국진 사모
새로운 기준
최근 뉴스에 ‘New Normal’이라는 단어를 자주 보게 됩니다. ‘New Normal’은 비정상적으로 여겨졌던 현상이 일상이 된 것을 나타냅니다. 예를 들면, 마스크를 쓰며 생활하는 것이 우리의 새로운 일상입니다.
새로운 일상을 계속 비정상적으로 여기는 것과 새로운 기준으로 받아들이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마스크 쓰는 일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과거를 그리워하며 불편함을 느낄 것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기준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더 편한 마스크를 찾는 등 방법을 찾을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제한된 인원으로 예배를 드리고, 집에서 기도하며, 온라인으로 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생활을 새로운 기준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저는 대학부 안에서 영혼을 섬기는 직분을 맡고 있습니다. 초반에 저는 이 상황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버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설교를 듣고 생각을 바꿔 매주일 온라인 모임을 준비했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코로나 이전보다 오히려 더 많은 친구가 매주 온라인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고, 저번 주에는 1년 중에 가장 많은 인원이 모였습니다. 코로나를 핑계로 삼지 않고 방법을 찾으니 생각지도 못한 영혼들을 불러주신 것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지 못해도, 기도하는 시간이 줄어도 ‘어쩔 수 없지. 코로나 끝나면 다시 열심히 하자.’라고 생각했다면, 이제 이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비정상적인 상황에 놓여있다고 생각하면 내 속에 있는 문제의식을 느낄 수 없습니다. 문제가 외부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늘 변화합니다. 그 변화를 기회로 삼을 것이냐, 위기로 삼을 것이냐,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이냐, 회피할 것이냐는 내 마음에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성공은 IQ(감성지수)나 EQ(지능지수)에 의한 것이 아니라 AQ(역경지수)에 달려있다 할 것입니다.
모두가 ‘각자의 신앙도 챙기기 힘든 시기’라고 말할 때 ‘지금이 부흥하기 가장 좋을 때’라고 말씀하시는 목사님처럼 ‘New Normal’에 적응하고 이겨내 승리하는 자들이 됩시다.
장수정
사람들은 일확천금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로또복권이나 비트코인, 주식, 부동산에 너나 할 것 없이 뛰어들어 과열 조짐을 보이고 열풍현상으로 이어질 때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1,000원 주고 산 로또복권으로 407억 원 당첨금을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게 부자가 되었으면 행복한 삶을 살아갈 것만 같았는데 한 방송사의 탐사보도를 보면 역대 복권 1등 당첨자들 중에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단란했던 가정이 깨어지고, 사기를 당하고, 폐인이 된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고 합니다.
죽으면 한 푼도 가지고 가지 못하는 거액의 돈이 우리 행복의 조건이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우리 인생을 망가지게 하는 독소가 들어있습니다. 814만 5,060분의 1의 확률에 기대를 걸고 일장춘몽의 꿈을 꾸지만 100% 확률의 놀랍고도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천지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죽은 뒤에도 영생복락의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복된 소식이 있습니다.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은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진짜 대박이요, 로또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로또복권에 당첨되려면 마감시간 전에 복권을 구입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천국에 갈 수 있는데 우리 인생은 언제 마감될지 모릅니다. 시종을 알지 못하는 인생, 지체하지 말고 지금 예수님을 영접해야 합니다.
상화평 목사
sanghwapyung@hanmail.net
나는 손을 아낀다
나는 손이 부드럽다. 피부가 깨끗하다.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다. 부끄러움을 고백하려 한다. 내가 존경하는 매형은 손을 아끼지 않는다. 집안일을 할 때나 청소할 때는 우선 손을 아끼지 않는다. 더러운 것들도 손으로 닦으면서 일한다. 일꾼이다. 나는 더러운 것에는 일체 손을 대지 않는다. 그런 기본적인 것에도 인색하니 살신성인의 도를 어찌 행할 수 있으랴.
신학교 시절, 대기업을 사직하고 신학교에 입학한 젊은 신학생이 단을 설치하는 일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으면서 말했다. “나는 이초석 목사님의 교리나 설교가 좋아서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날 피부가 곪아 문드러진 성도의 고름을 손으로 닦아내시면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고 평생을 따르리라 작정했습니다.”
‘배움의 끝은 실천이다.’ 말씀하시는 목사님. 그러나 본능적으로 나를 아끼고 버리지 못하는 이 그릇은 어찌해야 합니까? 신학교 시절, 나를 따르는 장애인 아이를 품에 안아주지 못했습니다. 체육관 바닥에서 몸을 못 움직이는 장애인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예배드리는 전도사의 모습은 성모를 연상케 했습니다. ‘너를 버려라’ 말씀하셔도 뿌리 깊게 박혀있는 이 못난 애착은 미련스럽게도 버리질 못합니다. 눈 먼 장애인과 지낼 때도 모든 것이 사랑으로 행해지지 않았습니다. 정신지체인과 생활할 때도 마음이 열려있지 못했습니다. 의무였습니다. 시늉이었습니다.
전도사 시절, 기도원집회를 마치고 목사님 곁을 지나칠 때 말씀하셨다. “야, 이제는 너를 버려라.”, “아, 예. 어려운 일이지만 노력해보겠습니다.”, “야, 이놈아. 그냥 버리면 되지 뭐가 힘들어?”
‘내 설교는 쉽다. 실천이 어렵다.’ 항상 말씀하신다. ‘그 실천이 참 어렵습니다.’ 나는 이 못난 손조차도 아끼는데 온 몸 바쳐 성도를 사랑하시고 하나님께 순종하시는 모습을 뉘라서 쫓아갈 수 있을까. 매일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바울처럼 경각을 지니고 깨어계신 모습에 나는 한없이 부끄럽고 못나서 괴롭다. 이 뿌리 깊은 자기애를 어찌하랴. 게으르고 타성에 젖기 쉬운 우리에게 목사님의 질타는 추상같다. 이제 목사님의 진두지휘하시는 말씀을 따라 변화해야 한다. 이대로는 안 된다. 빛을 발해야 된다.
이광주 목사
책의 힘
‘한 권의 책을 읽은 사람은 두 권의 책을 읽은 사람에게 지도받게 되어 있다.’
위 문장은 노예해방을 위해 일생을 바쳤던 미국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험 링컨이 맘에 새기고 인생의 모토로 삼았다는 명언이다.
실제 그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학교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어머니마저 그가 10살 때 일찍 돌아가셔서 가정교육 환경마저 좋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주변 상황에 동요되지 않고 위 명언을 떠올리며 어릴 적부터 열심히 성경과 다방면의 책을 읽었고, 책벌레, 독서광이라는 별명까지 얻을 정도로 독서에 심취했다. 그리고 결국 그는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어 독학으로 변호사가 되고 주의원, 하원의원을 거쳐 마침내 미국 대통령이 된다.
책은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 책을 쓴 그 저자의 인생과 지식과 경험이 그 책 한 권에 송두리째 녹아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책 한 권을 읽으면 저자 인생의 엑기스를 모두 흡수해낼 수 있다. 그러한 책을 다방면으로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물을 흡수한 콩나물이 쑥쑥 자라듯이 우리의 지식과 교양과 비범함과 천재성도 함께 자라난다.
안타깝지만 우리나라 15세 이상 국민의 40%가 일 년에 책 한 권도 읽지 않는다는 통계가 있다. 그만큼 바쁘고 경쟁적으로 사느라 마음의 여유가 없는 걸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위 명언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 어떨까? 지배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라는, 그리고 세상의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라도 올해는 다시 한 번 핸드폰보다 책을 손에 잡는 그런 저와 여러분이 되었으면 좋겠다.
장명훈 집사
jjoshua@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