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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4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너는 청함 받은 자냐, 택함 받은 자냐?(마22:14~22)

1084호 · 2021-02-14

어느 나라나 세법이 있습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특정한 목적을 위해 국민에게 징수하는 금전을 말하는데, 이를 어기고 탈세를 하면 국가로부터 많은 제재가 있고, 재산을 압수당하기도 합니다. 당연히 대한민국에도 세법이 있고, 우리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사는 한 이 세법을 준수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2장에 예수님도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라고 말씀하심으로 법을 준수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마22:21).

천국은 말 그대로 하늘나라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늘나라의 시민권자입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의 세법을 준수해야 할 의무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일조입니다.

다들 돈 얘기하면 자라목이 되는데, 사실 십일조는 축복의 씨앗입니다. 국가에 세를 바치면 국가가 그것으로 국민을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하고, 복지 향상을 꾀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십일조를 하면 우리에게 엄청난 축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말3:11~12). 네가 하는 모든 일에, 네 나라와 기업에, 네 교회와 가족에, 그리고 네 삶에 황충이 끼지 않게 하사 때를 따라 실한 열매를 맺으며 복되게 해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십일조의 기원은 창세기 14장에 아브라함에서부터입니다. 그 당시에 그돌라오멜이라는 폭군이 소돔 고모라 왕과 일전을 벌였는데, 소돔 고모라 왕의 참패로 소돔과 고모라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재산이 다 탈취 당했고, 그 때 소돔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의 조카 롯도 그 처자와 함께 잡혀가고 말았습니다. 조카 롯이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고는 아브라함이 318명의 군대를 거느리고 출전해서 야음을 틈타 그돌라오멜 왕과 그 연합군을 격파하고 대승리를 거둡니다. 그래서 빼앗겼던 것을 다 찾아 돌아올 때에 소돔 왕이 마중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살렘왕 멜기세덱이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히브리서 7장에 멜기세덱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이 주는 떡과 포도주를 받고 그가 얻은 것 중에 십일조를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에게 드렸습니다. 그러자 멜기세덱은 손을 들어 지극히 높으신 천지의 대주재 하나님의 이름으로 아브라함을 축복했습니다.

야곱도 하나님께 십일조의 삶을 서원했습니다. 야곱이 브엘세바를 떠나 하란으로 가는 중에 해가 져서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유숙하는데, 꿈에 사닥다리가 보이고 그 사닥다리를 통해 하나님의 사자들이 땅과 하늘에 왕래하는 것을 봅니다. 또한 그곳에서 야곱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이에 야곱은 잠에서 깨어 이곳을 하나님의 집 ‘벧엘’이라 이름하고 하나님 앞에 서원합니다. “야곱이 서원하여 가로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사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양식과 입을 옷을 주사 나로 평안히 아비집에 돌아가게 하시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창28:20~22). 그랬더니 하나님이 그를 축복하사 금의환향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십일조란 10개의 소득 중 1개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100만원 벌면 10만원 하나님께 드리고, 닭이 알을 열개 낳으면 한개는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내 것 중의 1/10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열 개 중에 하나를 하나님께 드리는 겁니다. 사람들이 십일조를 못 드리는 것은 다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돼지가 새끼 낳은 것까지는 드리는데, 소가 새끼를 낳으면 못 드리는 겁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많은 선교사를 각 나라에 파송하여 물질적인 지원을 하고 있는데, 그들 중에는 풍족한 자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자도 있습니다. 왜 그럴까 하고 제가 진단하건대, 그들이 십일조를 하느냐 안 하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거기서 십일조를 떼서 보내는 자들은 다 넉넉하여 오히려 지원금을 사양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자들은 지원금을 받고도 여전히 쪼들립니다. 그들 말인즉슨 어차피 그 돈으로 주의 일을 하는 건데 새삼스럽게 십일조를 떼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공무원은 세금 안 냅니까?

말라기 3장 7절에는 하나님이 “내게로 돌아오라.”고 거듭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방법은

‘회개하라.’가 아니라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말3:8)고 하십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십일조는 영적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는 우리의 소유가 다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신앙고백입니다. 선악과를 따먹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었듯 말입니다. 그래서 십일조를 현대판 선악과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3장에는 예수님께 십일조를 잘 하고도 야단맞은 자들이 있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마23:23). 바로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인데, 그들은 박하나 회향 같은 중요 소산물의 10분의 1은 엄격히 드렸습니다. 그런데 정의(義), 사랑(仁), 믿음(信)은 온데간데없이 형식과 의식만 지켰기 때문입니다. 십일조는 만물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믿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제가 예수를 믿은 지 한두 달 쯤 되었을 때의 일이니 거의 40여 년 전의 일입니다. 그때 사업이 왕성할 때라 천만 원 넘는 십일조를 당좌어음으로 드렸습니다. 사실 목에 힘 좀 주고 폼도 좀 잡고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자랑삼아 어느 집사님에게 했더니, 그분 하는 말이 “당연한 일을 했는데 무슨 자랑입니까?”라고 면박을 줬습니다. 그 말에 창피하기도 하고 깨닫기도 했습니다. 맞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일은 자랑할 일이 아닌 마땅한 일입니다.

요즘 청년 아이들이 첫 열매와 십일조를 들고 기도를 받으러 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제가 장담컨대 그들의 앞길은 탄탄대로일 것이고, 천사와 천군이 도울 것이며, 그들을 위해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 생각지 못한 축복들이 예비 되어 있을 것입니다. 기한 전에 떨어지는 일이 없을 것이며, 불황 중에도 호황을 맞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감히 하나님을 시험하면 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시험해보라’고 하신 것이 딱 하나 있는데, 바로 십일조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3:10). 왜 하나님께서 스스로를 시험대에 올려놓으셨는가하면 이는 ‘십일조를 심으면 약속한 모든 것을 꼭 준다.’고 확증하기 위함입니다.

축복받고 싶지요? 잘 살고 싶지요? 십일조하면 됩니다. 목사가 이런 설교하면 돈 내라는 것 같지만, 아닙니다. 이건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입니다. 정답을 보고도 문제를 못 풀면 어리석은 자가 아닙니까! 내비게이션이 있는데 길을 헤맨다면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은 십일조를 안 하는 자들에게 ‘도둑놈!’이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자비가 넘쳐도 도둑놈에게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베풀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일조는 선택사항이 아니라 우리의 의무입니다. 의무를 다하고 권리도 주장하는 법, 도둑놈 되지 말고 십일조 드려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받아 누립시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닫으면 열 자가 없고

하나님이 열면 닫을 자가 없다

현대판 선악과는

바로 십일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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