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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1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네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라(눅17:12~17)

1071호 · 2020-11-15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을 찾으라면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열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열정은 ‘최선’과 동일어이고, ‘열심’, ‘열성’과도 통하는 말입니다. 또한 성경 속 의미를 따지면

‘충성’이란 말과도 흡사합니다. ‘열정(熱情)’, ‘열성(熱誠)’, ‘열심(熱心)’ 모두 뜨거울 열(熱)을 쓰고 있습니다. 뜨거운 마음이 솟구쳐야 뭔가를 이룰 수 있다는 겁니다.

반대로 열정을 잃은 사람, 열심이 없이 대충하는 사람, 요동하는 바다 물결처럼 요동하는 마음을 가진 자에게는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마태복음 13장의 마음을 밭에 비유한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는 씨만 좋아도 소용없고 밭도 좋아야 결실을 많이 맺는다는 말씀입니다. 길가에 씨가 떨어져도, 돌밭에 떨어져도, 가시떨기 위에 떨어져도 안 된다는 거지요. 즉 열성이나 열심, 충성된 마음이 아닌 태만하거나 끈기, 인내가 없는 마음을 뜻한 것입니다. 그런 밭에서는 소출이 있을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19장에는 어느 주인이 열 명의 종에게 한 므나씩 주고 먼 길을 떠난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인이 돌아와 회계하니 어느 종은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고, 어느 종은 다섯 므나를 남겼습니다. 그런데 어느 종은 한 므나 받은 것을 그대로 간직했다가 주인에게 돌려줬습니다. 이들의 결과가 이렇듯 다른 것은 열정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입니다. 이것과 동일한 내용의 이야기가 마태복음 25장에 있는데,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긴 종은 ‘바로 나가’ 장사를 했다고 했습니다. ‘이익을 남기고 말리라.’는 열정이 있었기 때문에 갑절의 이익을 남긴 것입니다. 반면 땅에 묻어준 자도 있지요. 왜요? 그 안에 열정이 없기에 의욕마저 없었던 것입니다. 뜨거워야 움직이거든요.

여러분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입니까? 당신의 마음을 자가진단해보세요. 아직도 뜨거운 무언가가 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는지, 아니면 냉랭해져 있지는 말입니다.

저는 목회를 시작하면서 피운 열정이 36년이 지난 지금까지 식지 않고 있습니다. 그 열정이 세계 72개국에 복음을 전하게 한 것입니다. 열정은 우리로 하여금 꿈을 꾸게 하고, 목적에 이르게 합니다. 로켓 끝에 불이 붙으면 앞으로 날아가는 것처럼 말입니다. 열정 없이는 아무리 위대한 비전이나 거대한 꿈도 이루어낼 수 없습니다. 느헤미야가 52일 만에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한 것은 그에게 열정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예루살렘 성벽은 무너진 채 그대로 있었고 성문은 불타 소실된 상태였습니다. 백성들은 성벽 재건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에 절망에 빠져 무력한 상태였습니다. 거기에 열정이 가득한 느헤미야가 등장한 것입니다. 내가 먼저 불이 붙어야 남에게도 불을 붙일 수 있는 법, 느헤미야의 뜨거운 열정은 고스란히 백성에게 전해졌고, 백성들과 함께 52일 만에 대사를 이룬 것입니다. 그럼요, 느헤미야 같은 지도자가 있을 때 비전이 있는 단체와 교회와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적보다 무서운 것이 무능한 지휘관이요, 그런 자에게는 한시라도 빨리 지휘봉을 빼앗아야 그 단체가, 그 국가가 살아나는 법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슨 열정을 잃어버렸나요? 먼저는 기도의 열정을 잃었습니다. 목회 초반의 우리 성도들은 기도로 밤을 지새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예전 같지 않습니다. ‘기도의 부족은 모든 것의 부족’이라고 누누이 말씀드리고 있건만, ‘기도로 하나님을 움직이는 자가 가장 위대한 자’라고 말씀드렸건만 기도의 열정이 식었습니다. 예레미야 29장에는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29:12~13)고 하셨고, 예레미야 33장에도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33:3)고 하셨습니다. 기도도 열정적으로 해야 하나님이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한나의 부르짖는 기도가 하나님이 닫아놓은 태의 문을 열었던 것 아닙니까.

두 번째는 주의 일에 대한 열정을 잃어버렸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예전에는 아이들이 어려도 주의 일 하는데 게으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애들도 다 커서 자립하고 독립했건만 ‘시간이 없다’, ‘나이가 들어서 힘이 없다’ 하면서 안 합니다. 다 핑계지요. 자고로 열정을 잡아먹는 놈이 있는데, 그놈이 게으름입니다. 그놈은 습관처럼 핑계를 입에 달고 살며, 열정을 사그라지게 하는 독버섯 같은 놈이요(잠26:13), 열정의 불이 타오르려고 하면 물을 확 끼얹어 꺼버리는 최대의 적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우리를 독려합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12:11).

천국은 예수 이름을 부르면 가지만, 상과 면류관은 얼마나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일하느냐, 얼마나 최선을 다하느냐로 평가됩니다. 제가 괜히 밤낮없이 주의 일에 올인하는 게 아닙니다. 열 고을의 왕이 되고자 몸을 불사르고 있는 것입니다. 행여 불이 꺼질세라 저를 채찍질하고, 기름을 붓습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열정이 식은 자들을 향한 무서운 경고의 메시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계3:15~16). 누가복음 19장과 마태복음 25장의 주인도 열정을 잃은 종을 어둠에 내어 쫓고 죽이라고 한 것처럼, 하나님도 나태하고 게으른 자를 토해버리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3:19). 이것이 지금 열정을 잃은 당신이 해야 할 일입니다. 누차 다시 말하지만, 불이 꺼지기 전에 기름을 부어야 합니다. 자그마한 불씨만 있어도 태산을 사를 수 있으니까요.

사랑으로 해도 열정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남의 허물이 보이지 않고, 남을 정죄하지 않게 됩니다. 눈이 멀어버리니까요. 성경은 말씀합니다.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4:8). 하나님은 그 아들을 죽이기까지 우리를 열정적으로 사랑하셨습니다(요3:16). 그 하나님은 우리도 열정적으로 당신을 사랑하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마22:37)고 말씀하십니다. 사도 바울처럼요. 하나님을 향한 사도 바울의 사랑이 얼마나 뜨거웠던지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로도 끊을 수가 없어, 그는 스스로 험산준령을 넘으면서도 복음을 전했고, 마침내 순교자의 반열에 들어갔습니다(롬8:35).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는 게 있지요. 아직 마음에 열정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불은 거의 다 꺼져 가는데 그것도 모르고 ‘그때는 그랬지.’ 하며 낭만에 젖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래선 안 됩니다(계3:17~18). ‘그때 그랬지’ 하며 과거에 사로잡혀 살 것이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뜨거운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사명에 부도내지 않는 방법은 열정을 고수하는 방법 외에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도 열정적으로 일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사9:7).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도 열정적으로, 열심을 가지고 일하신다는 뜻입니다. 하물며 우리겠습니까?

저는 마가복음 2장에 나오는 중풍병자 친구를 둔 네 명의 동지를 좋아합니다. 길이 없으면 길을 개척해내는 벤처정신이 너무 좋습니다. 그 정신은 열정에서 나오는 겁니다. 세상의 모든 명작과 명품은 열정이 이뤄낸 산물 아닙니까?

희망은 여러분을 버린 적이 없고, 꿈이 여러분을 버린 적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열정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열심을 내지 않기 때문에 희망도, 꿈도, 미래도 당신에게 등지고 달아난 것입니다.

오늘 내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되찾읍시다. 할렐루야!

내가 불이 붙어야

남도 붙일 수 있다

울타리를 헐 때는

울타리 칠 때를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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