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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멜로의 전쟁

1069호 · 2020-11-01
세상을 보는 창

마시멜로의 전쟁

한 심리학자가 유치원생 600명에게 실험을 했다. 자기 앞에 있는 마시멜로를 15분 동안 먹지 않으면 하나를 더 주거나 그 아이가 원하는 것을 준다는 약속을 하였다.

15분 동안 보여준 아이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당장 그것을 먹는 아이, 그것을 만지작거리는 아이, 눈앞의 마시멜로를 아예 안 보려고 엎드린 아이, 그것을 잊으려는 듯이 딴청을 부리는 아이들도 있었다. 이 연구의 완성은 먼 훗날에 있었다. 이 아이들이 자랄 때까지 추적한 연구는 어릴 때 자제력을 보인 아이들이 나중에 공부도 잘하고, 좋은 직장에 취업했으며, 인간관계,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도 우수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 실험은 “만족지연능력”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만족지연능력”이란 자신의 만족을 유보시킬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데, 이 능력을 다른 말로 그 사람의 자제력 또는 의지력이라고 할 수 있다.

마시멜로 연구는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토록 하였다. 더 높은 성취를 위해 현재의 재미도 있고 아깝기도 한 것을 희생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삶의 방식이다.

우리의 삶에도 이 마시멜로의 전쟁은 매일 벌어진다. 마시멜로 전쟁은 아침부터 시작된다. 더 잠을 자고 싶다는 마시멜로와 이 잠에서 일어나야 더 좋은 날을 맞이할 수 있다는 가치가 아침부터 충돌한다. 그냥 편하게 쉬고 싶다는 마시멜로와 훗날 건강을 약속하는 운동도 서로 싸움을 한다. 마시멜로 전쟁은 이처럼 우리 모든 삶 구석구석에서 일어난다. 무엇을 선택해야 옳겠는가.

영적인 세계에 있어서도 마시멜로 전쟁이 있다. 피곤하니까 기도를 건너뛸 것이냐 아니면 무릎을 꿇을 것이냐, 인터넷으로 예배를 드릴 것이냐 성전에 나갈 것이냐? 그러나 진정한 만족은 눈앞의 마시멜로를 찾을 일이 아니다. 만족을 지연시킬 능력이 있어야 한다. 즉 영적 의지력이 높아야 한다는 것이다.

마시멜로를 취하면 당장 좋지만 금방 후회하고 곧 비참해진다. 영혼육의 성공을 위해서는 마시멜로를 넘어있는 진정한 가치, 하나님의 원하심을 볼 수 있는 분별력, 눈앞의 마시멜로를 거절하는 의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정금 전도사

jungkm@nate.com

내 동반자

주 안에서의 삶

삼위일체 하나님

기독교인 중에서도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잘못된 신학을 가진 분들이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바른 신학적 이해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실상 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삼위일체(th-ree Persons in one Body) 하나님이 누구신가 물으면,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 그리고 성령님이 한 몸을 이루신다고 말합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떻게 세 분 하나님께서 한 몸 안에 계시냐는 질문에는 답변이 다양합니다. 왜냐하면 세 분이신 하나님이 한 몸을 이룬다는 것은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해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류 기독교 삼위일체 신학에서는, 세 분은 각각 구별된 인격(three Persons)의 ‘신’이시며 각각 다른 역할을 하시지만, 하나로 연합되어(unity) 계심을 믿습니다.

터툴리안(Tertullian, AD 155~230?)은 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세 분 하나님은 한 본질과 상태이시며 능력이 동일하시나(one in substance, condition, and power), 형태와 외관 정도가 다르시다(three in form, aspect, and degree). 세 분 안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그래서 비록 세 분은 하나로 연합되어 계시지만(요14:10~11, 16:13~15), 예수님께서는 ‘아버지는 나보다 크시다’(요14:28)라고 말씀하십니다.

세 분은 창세전부터 함께 계셨으며, 천지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말씀(하나님의 아들)과 성령님은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나오셔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창1:1~3). 즉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만물이 만들어지고, 성령님께서는 만들어진 것이 생동하도록 하셨다고 봅니다. 성 바실(AD 330~379)은 하나님 아버지는 창조물이 존재하도록 하셨고, 아들은 창조를 실행했고, 성령님은 그 창조 사역을 완성하셨다고 표현합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 1절을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라고 하지만, 2절에 나오는 것처럼 아무 형체도 없고 빈 상태였었습니다. 즉 처음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신 것은 존재를 위한 기초를 준비하신 것입니다. “우주의 끝은 물로 되어있다.”고 아인슈타인이 말한 대로, 초기 상태에는 물만이 있었던 듯합니다. 그래서 2절 끝에 “하나님의 신(성령님)이 수면 위를 운행하셨다(hovering)”고 나옵니다. 이것은 암탉이 알을 품고 부화하려 할 때, 알을 계속 굴려주면 그 안에서 열이 나고 에너지가 생성되어 병아리로 부화되듯, 성령님께서 우주 수면 위에서 만물이 탄생되도록 역사하고 계셨습니다. 3절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물을 차례로 만드셨고, 성령님께서는 그 창조된 만물이 생동력이 있도록 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세 분 하나님의 사역은 다르셨습니다.

구원 사역 때에도 삼위일체 세 분의 사역이 다르셨습니다. 먼저 하나님 아버지는 천사를 마리아에게 보내시어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할 것을 알려주시고, 그 후에 성령님을 마리아에게 보내십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말씀이 마리아에게 잉태되게 하셨습니다(눅1:35). 드디어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요1:14). 그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십니다. 그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들의 대표로서, 만민이 지은 모든 죄를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구원의 길을 여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나 자신의 죄를 담당하시고 돌아가신 것을 믿을 때에만, 그 믿는 자의 속에서 예수님의 죽으심이 참 효과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세 분 하나님의 사역이 다르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이 끝난 것도, 구원이 완전히 이루어진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성도들이 믿음을 지킬 수 있도록 도우실 또 다른 보혜사, 즉 성령님(요14:16)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교회를 출석한다고 모두 성령을 선물로 받은 것은 아닙니다. 요한복음 14장 15절 말씀처럼, 주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지키는 자에게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요14:21). 그 성령님이 오셔서 내주할 때, 비로소 구원의 보증을 받은 성도가 되는 것입니다(엡1:13~14; 고후1:21~22). 이것을 ‘성령세례’라고 부릅니다(행1:4~5). 세 분은 하나로 연합되어 분리되실 수 없기 때문에, 성령님이 우리 안에 오셨을 때, 예수님과 하나님 아버지가 하늘 보좌에 계실 지라도 또한 성령님을 통하여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요14:23).

결론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은 각각 다른 세 인격이시면서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기에 성경에서도 미스터리라고 표현합니다(골1:26~27; 2:1~3; 엡3:2~6).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예들이 있습니다. 터툴리안은 나무로 설명했습니다. 즉 나무 자체는 하나님 아버지, 나무의 뿌리는 아들 예수님, 나무의 열매는 성령님. 열매를 맺기 위하여 나무는 뿌리를 내리고, 결국 열매를 맺어서 많은 사람들이 그 열매를 먹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즉 많은 믿는 자들이 성령님을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이처럼, 세 분 하나님은 한 분(전지전능하신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권문선 선교사

신앙에세이

사람들은 몰라요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른들은 몰라요~’

어릴 적 듣던 이 노래를 이제는 아이를 키우며 듣게 된다. ‘어른들은 몰라요’란 제목의 노래를.

과연 어른들만 모를까? 상대방이 겪고 있는 상황과 그 사람의 마음은 당사자와 하나님 외에는 알지 못한다. 간접적으로 귀동냥으로 듣거나 그간 봐와서 머리로는 인식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사람이 처한 상황과 그 심정은 직접 비슷한 상황을 겪어보지 않고서는 진정 헤아릴 수 없다. 그렇기에 상대방을 쉽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 전해 듣고 보는 것은 단지 일부이고, 그 나머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신앙생활과 믿음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어느 정도 성경적 지식이 쌓이고, 내 삶에 약간의 여유가 생기면, 다른 사람의 상황과 믿음을 쉽게 판단하는 오류를 범한다. ‘네가 그리하여 기도 응답을 못 받고, 이러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한다’고 진단을 내린다.

환자에게는 위로가 아닌 치료가 필요하다. 하지만 치료를 하는 사람은 담당 의사와 간호사면 충분하다. 이 사람, 저 사람 다 치료를 해대면 그 상태는 더 악화될 뿐이다. 그래서 그 주위 사람들은 치료가 아닌 위로와 격려, 중보 기도를 해줘야 한다.

나날이 갈리는 세상 풍조 속에서 사람들은 점점 더 서로에게 강퍅해질 것이다. 이러한 풍조를 저지하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 중 하나는 바로 상대방을 공감하며 배려하는 마음이 아닐까? 사도신경에서 말한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 그것은 이 공감대 형성에 달려 있고, 그 공감대 형성은 이 말씀에 담겨있는 듯하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마22:39).

박찬영 집사

post.naver.com/imsofriendly

나도 건강할 수 있다

코로나 가운데 건강한 면역 준비하기

건강한 면역은 코로나19에서 우리를 지켜줍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폐를 침입하고 다른 장기에 합병증을 일으키는 질환으로서, 일차 관문이 폐를 튼튼하게 해주는 면역력 강화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폐를 튼튼히 하는데 첫 번째, 가벼운 조깅과 유산소 운동입니다. 주님이 주신 몸을 사용함으로써 더욱 건강하게 육체를 관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코로나로 인해서 집단적인 운동을 하는 것은 마스크를 꼭 쓰고 해야 하며, 가벼운 산보나 조깅으로 규칙적으로 땀을 내어줌으로써 폐의 순환을 원활히 하고 몸속 노폐물을 배출시키는 것은 폐의 면역에 중요한 방법입니다.

두 번째, 폐에 좋은 음식으로는 쉽게 온도변화에 따라 기침이나 비염이 있는 경우는 건강(말린 생강)차를 마시면 장이 따뜻해지면서 폐도 따뜻해지는 효과로 면역력이 회복됩니다. 평소 노란 가래나 누런 콧물이 종종 생기는 체질의 경우는 도라지 차를 자주 마시면 폐의 노란 가래나 콧물을 제거해주며, 목이 아플 때 통증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도라지는 천연 항생제의 효능이 있어서 신체의 어느 부위의 염증이 있을 때도 차로 마시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은행(열매)은 평소 구워서 먹으면 고소하고 맛이 좋은데, 기침을 줄여주고 대변을 원활하게 해줍니다. 평소 변비가 있는 체질로 기침이 지속될 때 은행(열매)를 간식으로 먹으면 면역에 도움이 됩니다.

세 번째, 코로나에 감염이 되거나 증상이 의심될 때 대한한의사협회 코로나 전담팀(1668-1075)으로 연락하면 증상에 따른 코로나 면역 한약을 격리 전후에도 무상으로 처방받을 수 있습니다.

네 번째, 지나치게 과로하거나 피곤해서 가벼운 잔기침이 나올 때는 한의원이나 약국에서 경옥고를 2~3주 복용해주면 폐가 과로로 인하여 건조해서 잘 낫지 않는 기침에 효과가 좋습니다. 코로나 이후에도 기침이 잘 낫지 않는 경우에 마른기침이라면 경옥고가 도움이 됩니다.

다섯 번째, 가벼운 미열이 있을 때 가볍게 넘기지 말아야 하며, 감기 양약과 동시에 형방패독산(가벼운 열감기), 갈근탕(몸살과 미열이 있는 감기), 배농산급탕(인후형 감기)등 약국이나 한의원을 병행함으로써 면역을 높이며 치료의 효과를 높일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작은 실천으로 건강을 지킵시다.

Dr. 설재현 집사

kseolme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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