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주께 맡기라
모두 주께 맡기라
“걱정의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고, 걱정의 30%는 이미 일어났던 일이 또 일어날까 미리 걱정하는 것이며, 22%는 너무 사소해서 무시해도 좋은 일이다. 걱정의 4%는 바꿀 수 없는 일이거나 어쩔 수 없는 일이고, 걱정의 4%는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일이다.”
정신과 의사 조지 윌튼이 ‘Why Worry?’라는 책에서 걱정에 대해 말한 내용이다. 성경에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마6:34).
그러나 인간은 나약한 존재라 우리가 염려하지 않기로 작정하고 원한다고 해도 염려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염려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우리의 걱정과 근심, 모든 염려를 우리가 하지 말고 모두 전적으로 주께 맡기면 된다. 주님은 우리의 염려를 꼭 우리가 원하는 방식대로 해결해주시는 게 아니다. 주님이 보시기에 합당하면 응답해주실 것이고, 아니라면 그래도 괜찮도록 우리의 마음과 태도를 변화시켜 주신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 근심과 걱정과 염려로 가득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을 주 앞에 내려놓을 때 우리 삶에 평안이 찾아오리라.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잠16:3).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11:28~30).
김성일
cre8tor@naver.com
변질(變質)은 한 순간이다
다시 대면예배를 드리게 되었지만, 지난봄에 이어서 생각지도 않게 또다시 두 달간 영상예배가 지속되며 비대면예배가 장기화되었을 때, 이제는 예배의 본질을 잃지 않으면서 형식과 방법에 있어서는 변화(變化)와 혁신(革新)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했다.
변화와 변질(變質)은 다르다. 변화가 시대적, 사회적, 환경적으로 적응을 필요로 할 때 그에 발맞추어 부수적인 것들을 새롭게 바꾸는 것이라면, 변질은 주어진 상황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그의 본질마저 왜곡시켜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변질되지 말고 변화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꼭 예배만이 아니라 예배에 참예하는 주체인 사람도 동일하다.
그런데 변질되지 않는 것은 변화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시대적인 요구랍시고, 상황과 환경이 그럴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변질을 합리화하는 경우를 우리는 성경 속 인물들과 현재의 삶 가운데서 종종 발견하게 된다.
사무엘상의 주요 등장인물이자 백성들의 요구로 이스라엘 최초의 왕이 된 사울은 변질된 사람 중 하나다. 그는 처음 왕으로 기름 부음 받을 때만 해도 스스로를 작게 여기던 겸손한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하여 선지자처럼 예언을 하기도 했고,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방 민족들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왕이 된 지 2년째 되던 해, 블레셋과의 전쟁 가운데서 사무엘 선지자가 늦게 오고 백성들이 흩어진다는 이유로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사무엘 대신 자기가 번제를 드려버린다. 그리고 아말렉을 쳐서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도 온전히 순종하지 않는다. 결국 하나님은 사울을 왕으로 삼은 것을 후회하셨고, 다윗의 영원한 대적으로 살다가 비참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하신다.
사울처럼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으며 능력을 나타내던 자도 한순간에 변질된다. 목사님은 변질되지 않으려면 기도를 쉬지 말라고 누차 말씀하셨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자고 있던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던가. “시험(유혹)에 들지 않게 깨어서 기도하라”(마26:41). 변화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만, 변질되는 것은 한순간이다. 변화되진 못할망정 변질되지 말자. 변질되면 들어갈 곳은 오직 쓰레기통뿐이다.
신혁주 전도사
마음을 지키는 법
요즘 나의 최대 관심사는 ‘내 마음을 지키는 법’이다. 작년 가을, 공황 발작을 겪고 난 이후로 나는 가끔 불처럼 활활 타올랐다. 활활 타오르는 나의 분노와 열기는 주위 사람들은 물론, 나 스스로까지 다 태우곤 했었다. 자존감은 바닥을 쳤고, 삶의 긍정적인 면은 찾기 어려웠다. 몇 번의 고비를 넘기면서 이것이 의지의 문제만은 아님을 인정하고, 의사의 처방에 따라 약을 먹기 시작했다. 삶의 끈을 찾기 위해 강렬하게 의지했던 하나님의 말씀과 내 심신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는 남편의 격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의 처방으로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평온한 상태로 지내고 있다.
살다 보면 누군가를 원망하고 탓하는 일이 참 많다. 억울한 일도 많고, 때론 인생이 허무할 때도 있다. 왜 그럴까? 불같은 시간을 지나 물 같은 평화 속에 있는 지금, 그때를 돌아보면 이유는 단 하나, 내 마음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하나님. 저의 억울함을 주님께 맡깁니다.” 하며 타오르던 분노와 절망에 울부짖던 어느 날, ‘머리 위의 숯’이 떠올랐다. 그렇게 찾은 잠언에서 나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고, 내 마음을 다스리고 지킬 수 있었다. “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그리하는 것은 핀 숯을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 네게 갚아 주시리라… 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잠25:21~28).
‘핀 숯을 그의 머리에 놓는다’는 말씀은 하나님이 하실 일이요, 내가 해야 할 일은 분내고 원망하는 일이 아니라 원수를 용서하고, 더 나아가서는 원수를 사랑하는 일이었다. 그것을 하기 위해서 내 마음을 제어하고, 내 마음을 지키는 일은 내가 해야 한다는 뜻이리라. 참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서 나는 오늘 다짐해본다. ‘미워하지 말자. 원망하지 말자. 탓하지 말자.’
그래서일까. 지금은 잔잔한 바다를 지나는 것처럼 마음이 평안하다. 오늘도 내일도 나는 기도하며,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며 내 마음을 지킬 것이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전훈지
ppjee@hanmail.net
일기를 쓰시나요?
2005년 9월 11일 일요일, 저의 일기장 첫 페이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이제 나도 이초석 목사님과 이시대 목사님처럼 일기를 쓰기로 했다. 이시대 목사님께서 오늘 설교 중에 말씀하셨다. 성공하고자 한다면 일기를 쓰고 저축을 해라.’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강산이 변하고도 남을 시간이지만 저는 변함없이 일기를 쓰고 있습니다. 노트를 펼치고 한 글자 한 글자 손으로 씁니다. 지금 무엇 때문에 괴로운지, 또 기쁜지, 오늘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기록하다 보면 결국엔 다 감사로 끝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문제를 해결해주실 것을 알기에 감사하고, 그러한 믿음이 제게 있음에 감사합니다. 오늘의 기쁨과 행복도 그냥 찾아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셨음을 알기에 더욱 감사하지요.
일기의 힘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과거에 썼던 일기를 다시 펼쳐보면 그 안에서 깨달아지는 것이 참 많습니다. 당시에는 저를 무척 힘들게 했던 문제들이 지금에 와서 보면 전혀 걱정할 일이 아니었거나 아니면 모두 해결되어 있음을 발견합니다. 최근 한 달 전 일기장만 보더라도 저는 소변에서 미세한 혈이 나와서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병원에서 주는 약을 먹었지만 차도가 없어서 초음파 검사를 했는데 이상한 점은 발견되지 않아서 일주일 후에 소변 검사를 다시 하기로 했지요. 기도하며 일주일을 보냈고 다시 소변 검사를 했는데 여전히 미세한 혈이 있어서 CT촬영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신장, 방광, 자궁을 검사한 결과, 이상 없음 소견이 나왔습니다. 가끔 일상에 불만이 생길 때면 그때의 일기를 펼쳐봅니다. 모든 불만은 사라지고 그저 건강함에 감사가 나옵니다.
2019년 8월 9일 일기장에는 저의 좋은 습관, 나쁜 습관, 그리고 갖고 싶은 습관이 쓰여 있네요. 주일예배 때 목사님께서 습관을 적어보라고 한 말씀을 듣고 실천한 것입니다. 나쁜 습관은 13가지가 적혀 있는데요. 1년이 지난 지금, 그중 7가지 나쁜 습관을 고쳤습니다. 갖고 싶은 습관 3가지 중의 하나는 운동하는 습관이었는데, 어느새 아침저녁으로 20분씩 스트레칭 하는 습관도 몸에 배었습니다. 고치고 싶은 5가지 습관도, 갖고 싶은 2가지 습관도 머지않은 때에 고치고 갖게 되리라 믿습니다. 일기장에 기록해 두었고, 중간 중간 펼쳐보면서 점검하고 있으니까요.
아침에 일어나면 성경을 한 페이지씩 읽고 있습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한 기록과 욥의 시련이 담긴 기록, 다윗의 시를 읽으며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습니다. 과거에 제가 쓴 일기 또한 저를 되돌아보게 하고 겸손하게 하며 많은 것을 깨닫게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도 일기를 씁니다.
신은혜
dopal0203@naver.com
이기고도 진 사람 vs 지고도 승리한 사람
vs 이기고 승리한 사람
2018 호주오픈 남자단식 16강전에서 정현 선수가 맞붙은 선수는 바로 자신의 우상이었던 노박 조코비치 선수였습니다. 최근 조코비치는 부상 이후 다소 주춤해지긴 했지만 세계 랭킹 1위를 수차례 차지한 선수입니다. 정현 선수는 그와의 경기에서 3대 0으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세계적인 선수 조코비치의 패배였습니다.
조코비치 선수가 정현에게 패한 후 한 기자가 다가가 인터뷰를 했습니다.
“아직 부상에서 회복되지 않으셨나 봐요? 무명의 선수에게 패한 것은 부상이 원인이지요?” 이때 조코비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승자의 승리를 그렇게 폄하하지 마십시오! 부상은 선수에게 늘 있는 일이고, 그것도 실력의 일부입니다. 훌륭한 경기를 한 정현 선수, 축하합니다. 그는 이길 자격이 있었습니다. 그는 실력으로 나를 이겼습니다. 이번 경기를 뛸 수 있어서 행운이었습니다. 내년에 멜버른에서 만납시다.”
진 것이 기분 좋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자신보다 어리고 세계 랭킹도 한참 아래인 선수에게 졌으니 자존심도 많이 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솔직히 패배를 인정하며 정현 선수를 격려하고, 감사를 표하는 조코비치를 보며 선수로서 경지에 오른 대인배구나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지고도 이긴 사람입니다.
또한 노박 조코비치와 로저 페더러가 벌인 2019년 윔블던 테니스대회 남자단식 결승전은 세계적인 윔블던 테니스대회 역사에 빼놓을 수 없는 클래식 매치였습니다. 영국 런던 윔블던의 올잉글랜드클럽에서 열린 2019년 윔블던 남자단식 결승에서 조코비치는 페더러를 세트스코어 3-2로 물리쳤습니다. 윔블던에서 통산 5번째 우승을 차지한 조코비치는 그 가운데 세 번이나 결승에서 페더러를 꺾고 정상에 오르는 묘한 인연을 이어갔습니다. 이날 조코비치와 페더러의 결승전은 4시간 57분이나 소요됐습니다. 그나마도 올해 개정된 규정 덕에 5시간을 넘기지 않았습니다.
윔블던은 지난해까지 마지막 세트의 경우 타이브레이크 없이 한 선수가 2게임차 이상 듀스로 앞서야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2019년부터 게임스코어 12-12가 되면 타이브레이크를 치르도록 규정이 바뀌었고, 1점 승부로 경기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날 조코비치와 페더러의 경기는 5시간을 넘기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이날 조코비치는 5세트 게임스코어 7-7에서 자신의 서브 게임을 내줬고, 이어진 페더러의 서브 게임에서도 40-15로 끌려갔습니다. 연달아 두 포인트를 따내야 듀스를 만들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조코비치는 포핸드 실책과 자신의 위너를 묶어 위기에서 벗어났습니다.
이날 영국 팬들은 어쩌면 마지막 우승 기회가 될지도 모르는 로저 페더러를 더 많이 응원했습니다. 테니스장 입장 팬들은 ‘로저 페드로’를 더 많이 외쳤고 응원하였기에 조코비치는 멘탈 측면에서도 무척 초초하고 착잡했습니다. 마지막 세트에서 12대12 동점이 되면서 듀스가 아닌 한 점 승부로 경기규칙이 바뀐 결과 결국 조코비치가 승리했습니다. 페더러는 이날 실제 포인트에서는 218-204로 오히려 조코비치를 앞서고도 세 차례 타이브레이크를 모두 패하며 분루를 삼켰습니다.
조코비치는 결승전 경기 후 ‘내가 치른 가장 힘든 경기 중 하나’라며, “모두 페더러를 응원하는 함성 속에서 정신적으로 오늘 경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런 세계적 경기에서 한 명은 져야 한다. 이 위대한 세기적 경기를 승패의 승부로만 결론을 내야하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다.”고 힘들고 절박했던 소감을 밝히며 상대 선수인 페더러를 간접적으로 치켜세웠습니다. 조코비치는 이기고 정말로 승리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정말 멋있는 크리스천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이기고도 지는 사람, 지고도 이기는 사람, 이기고 진실로 승자로 인정받는 사람, 이렇게 세 가지 부류가 있습니다. 우리 예수중심교단 성도들은 위의 세 가지 부류 중 어떤 삶과 신앙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모든 것이 Coram Deo(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의 삶입니다! 오늘 주님이 우리 각자에게 물어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기고 진실로 승리하느라 핍박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신우신경외과 재활의학과
(메디스템 줄기세포센터)
대표원장 안계훈 집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