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을 잃으면 이별뿐이다
회개하고 첫사랑을 되찾자
“목사님, 우리 교회는 예배가 너무 길어요. 예배 좀 짧게 해주시죠.”
“뭐? 예배가 길다고? 자네 예전에 연애할 때는 애인과 만나 밤새웠었지? 전화 끊네.”
“네…?”
우리 교회가 예배시간이 너무 길다고 나름 목사님께 교회부흥을 위해 조언한다며 어느 장로가 한 말이라고 한다. 목사님은 지난 수요예배를 통하여 이 전화통화를 소개하시며 모두가 듣고 깨닫길 바란다고 말씀하셨다.
“여러분들이 사랑하는 애인과 첫사랑을 나눌 때 어땠습니까? 시간 불문, 거리 불문이었죠? 몇 시간씩 전화통 붙들고 이야기하고, 밤을 새어가며 사랑을 속삭이고, 애인이 만나자면 거기가 어디든 시간, 거리 불문하고 달려가지 않았던가요? 여러분이 예수를 처음 만나 첫사랑에 불탔을 때 어땠나요? 밤새 기도하고 철야하고 전국에서, 심지어 외국에서까지 예배에 참석하겠다고 달려오지 않았던가요? 예전에 학생체육관 금요철야예배에 나오셨던 분들은 기억할 겁니다. 밤을 새워 예배를 드리고 곧바로 직장에 출근해서도 피곤한줄 몰랐다며 기뻐하지 않았던가요? 성령에 충만하여 영적 신랑 예수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기도하고 철야하고 전도했었죠? 그런데 ‘예배나 기네, 거리가 너무 머네’ 한다는 것은 이미 영적 병이 든 겁니다. 첫사랑이 식은 거죠.
첫사랑을 잃으면 이별뿐입니다. 그런데 영적 신랑 예수와의 이별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수와의 이별은 지옥입니다, 지옥! 실컷 예수 믿고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는 어리석은 자가 되려는 겁니까?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누굴 위해서 하는 게 아닙니다. 바로 나 자신의 구원과 영생을 위해 하는 겁니다. 죽는 순간까지 예수를 나의 구원자로 믿고 사랑하며 그분의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쳐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천국을 유업으로 받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신앙생활이 좁은 길(마7:13~14)이라고 말씀하신 겁니다. 나를 따라오려거든 부모, 처자, 형제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해야 한다고 하신 겁니다
(눅14:26). 편안하다, 안일하다 하다가는 어느 새 악한 마귀의 속임수에 빠지는 줄도 모르고, 개구리가 물이 따뜻하다고 퍼져 있다가 삶아지는지도 모르고 죽는 것처럼,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귀신에게 사로잡혀 세상과 짝하다 지옥으로 미끄러져 가는 겁니다.
예수님이 첫사랑을 잃은 자에게 뭐라고 경고하셨습니까?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2:4~5). 회개하고 첫사랑을 회복하라는 겁니다.
한번 스스로 돌아봅시다. 직장을 달라, 사업터를 달라, 결혼하고 싶다 애통하며 기도할 때는 울며불며 뜨겁게 난리치더니 정작 응답을 받고는, 아무리 사람이 화장실 가기 전과 후가 달라진다지만, 하나님께서 내 일 좀 해주라 하면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빠져나가려 합니다. 누가복음에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하나님의 잔치에 초청했는데 밭을 사서 나가봐야 하고, 소를 사서 시험해봐야 하고, 장가들어서 못 간다 합니다. 예수님이 뭐라 하셨나요? 초청을 거부한 자들은 단 한사람도 천국잔치를 맛볼 수 없다고 딱 결론을 내버리십니다(눅14:16~24). 하나님이 자유의지를 주셨으니 여러분 마음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거야 말릴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 자신을 돌아보고 내가 어디서 떨어졌나 심각하게 점검해봐야 합니다.
영적 신랑 예수와의 행복한 결혼을 파괴시키려는 악한 마귀의 궤계에 속지 말기 바랍니다. 첫사랑을 잃은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첫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신랑 예수와 이별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합니다. 바라건대 천국을 향한 긴 여정에서 단 한사람도 낙오되는 자가 없기를 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은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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