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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7호 목차 › 세상을 보는 창

스토리가 있는 삶을 살기

1057호 · 2020-07-12
세상을 보는 창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3가지 스토리가 존재해야 한다. 나의 이야기, 그분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이다. 첫째로, 나에게 주신 은혜의 이야기, 즉 나의 이야기(My Story)가 있어야 한다. 요즘 SNS으로 맛집 찾기가 유행이다. 누군가 먹어보고 맛있다고 사진이나 동영상을 올리면 난리가 난다. 먹어봤기에 자신 있게 올리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복음 또한 사람들에게 전해지는데 내가 맛보지 못한 복음이라면 그 복음은 힘이 없다.

맛을 보아 아는 복음이 나에게 필요하다. 내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는지, 하나님이 내 인생을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고난당할 때 하나님이 어떻게 도우셨는지 좋으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이 가진 희망을 설명하여 주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답변할 수 있게 준비해 두십시오”(벧전3:15).

둘째로,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난 예수님의 이야기(His Story)를 알아야 한다. 유대인의 하브루타 교육의 핵심이 ‘말할 수 없는 것은 아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다. 내 입으로 말할 수 없다면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이야기할 뿐만 아니라 십자가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복음대로 삶을 살아내야 한다. 예수님의 순종과 섬김의 삶을 살아낼 때 우리의 이웃들이 질문하게 될 것이다. 나는 죽고 예수님이 내 삶에서 살고 계심이 나타날 때 우리의 이웃들은 주님의 몸 된 교회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셋째로, 비신자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우리들의 이야기(Our Story)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나의 이야기, 그분의 이야기를 가지고 비신자들에게 다가가서 복음을 들려주어야 한다. 나의 이야기를 말하여 희망을 전해주고, 예수님의 이야기를 말하여 주님을 영접하도록 도와야한다.

하나님은 복음이 우리의 이야기가 되기를 원하신다.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떨고 있는 수많은 이웃들에게 내가 하나님을 경험한 나의 스토리와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그분의 스토리는 비신자와 함께 우리의 스토리를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정금 전도사

책을 펴다

상실은 새로운 기회

1642년, 영국 동부지역 울스소프에서 유복자로 태어난 아이가 있었다. 그러나 그 아이의 생은 그렇게 순탄하지 않았다. 아이가 겨우 말을 배우려고 할 때 어머니는 다른 남자와 재혼했고, 그래서 아이는 자라면서 사과나무 아래 혼자 앉아 있을 때가 많았다. 그 후 아이는 천신만고 끝에 열망하던 대학에 들어가 학업을 마쳤다. 그의 꿈은 박사였다. 하지만 그가 박사학위 과정에 들어가려고 할 때 그가 사는 지역에 흑사병이 창궐하여 그 지역의 모든 대학이 문을 닫았다. 그는 꿈꾸던 모든 것이 상실됨을 느꼈다.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이게 뭐람.”

그는 사과나무 밑에 앉아 낙담한 채 박사학위라는 꿈을 잃어버린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그때 사과 한 개가 톡 떨어졌다. 갑자기 떨어지는 사과를 보며 “왜 사과는 옆으로 안 떨어지고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걸까?” 하고 그는 의문을 던졌다. 이 의문이 인류 과학사의 흐름을 바꿨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의 이름은 아이작 뉴턴이다. 이처럼 세기의 법칙은 낙담의 현장에서 탄생했다.

꿈을 잃었다고 절망할 일이 아니다. 절망하던 자리에서 떨어지는 사과를 바라보라. 떨어지는 사과를 보며 새롭게 의문을 가졌던 뉴턴처럼, 낙심하는 그 자리에서 새로운 도약을 꿈꿔라. 상실이 새로운 기회로 사과처럼 떨어지리라. 상실은 절망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이다. 포기는 자살이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시42:5).

이초석 목사 저서 ‘사랑이 무르익어야

결혼에 골인한다’ 중에서

참된 깨달음

때 늦은 후회, 있을 때 잘해

나는 지금 십자가 밑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 주시고, 함께 동고동락했던 어머니가 지난달 소천하셨다. 하염없이 눈물이 흐른다. 나의 나태함과 게으름, 그리고 딸이라는 이름으로 어머니를 향해 거침없이 던졌던 망령된 나의 언행들…. 늘 어머니께 소홀하고도 스스로 위안을 삼으며 “다 그렇지. 난 그래도 이만하면 잘하는 거야. 이웃과 지인들도 효녀라고 칭찬이 자자한데…. 그래도 난 최선을 다하고 있어.”

그런 내가 어머니 소천 후 발가벗겨진 진실 앞에 서게 된다. 결국 처절한 후회와 회개만이 나를 뒤흔들어 놓는다. 겉과 속이 다른 이중인격자, 남들의 시선을 염두에 둔 위선적인 행동들…. 나는 어머니께 늘 천국에 대한 소망을 전하곤 했다. 하지만 실상은 ‘이제 그만 가셔도 된다.’는 암시적인 것이었고, 속된말로 ‘이제 그만 가시면 좋겠다는…’, 아무리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치장해도 내 속마음은 ‘나도 힘들어요. 이제 그만…’,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이 모양 이 꼴일까?

‘한 부모는 열 자식을 거느려도 열 자식은 한 부모를 못 모신다’고 했던가? 긴 병에 효자 없다더니…. 그렇게 효심 지극한 형제들도 하나둘 지쳐가는 듯 어머니께 향한 마음과 사랑이 옅어져 갔다. 자식들이란 다 이런 것인가!

내 어머니는 우리 육 남매를 키울 때 힘들다고 ‘이제 그만 가라’고 한 적 없었고, 손발이 다 부르트도록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이며 종이로 코를 닦으면 코가 헌다며 어린 우리들의 콧물을 입으로 빨아 키우셨다. 난 그 어머니의 그 모습이, 그 사랑이 너무 좋아 사진처럼 내 눈에 고이 담아 지금까지도 간직하고 있건만….

뇌경색으로 쓰러져 중환자실에 들어가셨을 때 나는 아직 어머니를 보내드릴 준비가 안 되었다고 주님께 울며불며 조금만 더 곁에 머물기를 간구했다. 무엇을 위한 준비? 인간적인 정을 끊어내는 그런 게 아니었음을, 그 준비는 어머니께 필요한 게 아닌 나에게 필요했음을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내 일생에 단 한 번, 단 한 사람으로 내게 보내주신 이름,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이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엡6:1~3).

다시는 내 생애에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내게 오실 분은 없다. 그리고 “부모를 공경하라”는 이 말씀의 축복도 더 이상 내게 머물지 않을 터, 후회가 되어 울고 또 울었다

내게 유일무이한 이름 어머니, 그분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과거라는 시간 속으로 흘러가 버렸다. 머잖아 천국에서 홀연히 변화된 개체의 모습으로 우리는 다시 만나게 되리라.

부모님은 ‘살아서는 서푼이고 죽어서는 만 냥’이라는 말이 있다. 살아생전 부모님의 모습을 철없는 자식들은 서푼의 초라함으로 보다가 세월이 흘러 부모님의 모습이 서푼이 아니라 만 냥이었음을, 아니 만 냥이 아니라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이었음을 깨달을 때쯤 부모님은 이 세상을 떠나고 그 은혜는 갚을 길이 없어진다.

때늦은 후회보다 더 아픈 건 없다. 후회 없이, 통곡 없이, 회개 없이 보내드리는 것을 나는 준비해야 했다. 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 없다 해도,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부모님께 효를 다하고 공경하는 것이 자식으로서 마땅한 도리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 도리마저도 놓친 듯싶어 후회라는 아픔을 감당하고 있다.

지금, 여러분 곁에 부모님이 계시다면 기회가 있음으로 감사하고, 지금 이 순간 내가 아버지, 어머니라 부를 수 있음에 더욱 감사함으로 공경하고, 그래서 부모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모든 축복을 다 상속받으시길….

김정옥 전도사

jcc0115@naver.com

나도 건강할 수 있다

온전한 용서에서 건강이 온다

자연의학 및 심리학 박사인 알렉산더 로이드와 암 전문의인 밴 존슨의 공동 저서 ‘힐링 코드’에는 병의 근본적인 원인이 영적이고 정서적인 것에서 출발한다고 말합니다.

현대의학으로 치료가 잘 되는 질환이 있는가 하면, 의학의 발전에도 원인도 정확히 알 수 없고, 치료가 잘되지 않는 질환들이 정말 많습니다. 특히나 암, 면역질환, 마음의 병 등이 더욱더 치료가 어렵기도 합니다.

저자인 암 전문의 밴 존슨은 암의 원인을 중금속, 바이러스, 세포의 산소부족, 대사성산증(산과 염기의 균형이 깨지는 질환), 정서적·영적 문제가 결합해 암이 발생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우리 몸은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평상시와 다른 몸의 신호체계가 작동하기에, 평소와 다르게 세포에 영양, 산소, 무기질, 필수지방산을 흡수하지 않고 노폐물과 독소를 밖으로 내보내지 않게 됩니다. 이러한 이유로 세포에 독소가 쌓여 성장과 치유가 일어나지 않게 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스트레스는 세포 내에 존재하는데, 양자물리학적으로 이러한 세포의 스트레스 상태는 우리 몸에 파괴적인 에너지 진동수가 나오게 한다고 합니다. 이로 인해 소화기관, 두뇌의 지적기능, 면역기능에 필요한 혈류순환이 방해가 되어 우리 몸의 약한 곳에서 질병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암 전문의인 밴 존슨은 암의 원인을 세포 기억에서 비롯된 스트레스라고 주장합니다. 그는 심각한 건강문제에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이 관련되지 않은 경우를 본 적이 없다고 합니다. 주기도문에도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말씀이 있듯이, 본인이 만나본 암 환자 중에서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의 문제를 가지지 않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용서를 하지 않는 것이 건강에 치명적인 의미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용서하지 못하게 되면 화, 짜증, 누군가를 피하는 행위 등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으며, 내가 용서를 하면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죄에서 해방된다고 느끼기 때문에 더욱더 용서를 못하게 되며, 온전한 용서는 그의 잘못을 판결하려는 나의 마음으로부터 그를 놓아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사랑은 궁극적으로 모든 건강의 근원이며, 내분비계가 건강문제를 촉발하는 도화선 역할을 하는데, 그것을 막아주어 어떠한 질병과 증상도 발생하기 어렵게 한다고 합니다.

저자는 다음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가 어려운 질병이나 문제에 대한 치료에 효과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며 하루에 3번씩 책에 나오는 동작과 함께 실천을 권유합니다.

“알거나 알지 못하는 부정적인 이미지, 건강하지 못한 믿음, 파괴적인 세포기억 그리고 와(나의 고통이나 질병을 구체적으로 표현) 관련한 모든 신체문제를 발견하고 드러내서 하나님의 빛, 생명, 사랑으로 나를 가득 채워 치유하기를 기원합니다. 또한 이 치유의 효과가 100배 이상 확대되기를 기원합니다.”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비교하는 마음, 슬픔과 우울함, 조바심, 부정적인 마음, 불안함 등은 마음뿐 아니라 육체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주기에, 습관적이고 반복적인 마음의 문제를 주님 앞에 솔직하게 내려놓고 기도를 통해서 주님의 위로와 사랑과 평안이 있기를 바랍니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4:23).

Dr. 설재현 집사

kseolmed@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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