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은 사람을 따라 다닌다(창39:1~9)
운명은 만남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집터가 좋아야, 선조의 묘를 잘 써야 복을 받는다고 생각하지만, 지혜로운 자를 만나면 지혜를 얻듯, 복 있는 자를 만나야 복이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시1:1~3).
성경은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 자’라고 말씀합니다. 곧 정직한 자요, 진실된 자가 복 있는 사람입니다. 복은 그런 자를 좇아다니며, 그런 자를 만나야 집 안에, 기업에 복이 들어옵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요셉입니다. 요셉이 애굽의 종으로 팔려 보디발의 집에 들어갔을 때 보디발의 집이 복을 받았고(창39:5), 그가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으로 옥에 들어가자 전옥이 복을 받았으며(창39:21), 요셉이 애굽의 국무총리 대신이 되자 애굽이 복을 받았습니다(창41:48~49). 요셉이 정직했기에 복이 그를 좇아다닌 겁니다.
정직(正直)은 바를 정(正), 곧을 직(直)으로, 마음에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바르고 곧음을 말합니다. 곧 정직은 의인의 표요, 정직은 성도의 의무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많은 꾀를 낸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전7:29). 아담이 마귀의 꼬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었을 때 하나님이 그를 지적하자 그는 정직 대신 꾀를 발휘해서 ‘당신이 주신 여자’ 때문이라고 핑계를 댔습니다(창3:12). 그래서 복이 떠난 겁니다. 정직하지 못해서요.
그러나 요셉은 정직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잘 생기고 젊은 요셉을 유혹했습니다. 요셉이 마음만 먹으면 보디발 몰래 얼마든지 그 여인과 정분이 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더 편안한 생활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 자기를 가정 총무로 세워준 보디발의 은혜를 저버릴 수 없다며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창39:9)하고 유혹을 뿌리쳤습니다. 이로 인해 누명을 쓰고 옥에 갇혔지만 정직한 자가 마땅히 받을 복을 받았습니다.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특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케 하느니라”(잠11:3).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애3:38). 하나님은 정직한 자를 기뻐하셔서 정직한 자를 자랑하시며(시64:10), 그의 장막을 흥하게 하시며(잠14:11), 정직한 자의 기도를 기뻐 들으시고(잠15:8), 하나님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며(시15:1~2), 하나님의 얼굴을 보게 하시고(시11:7), 정직한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않으시며(시84:11), 흑암 중에도 빛을 보게 하시고(시112:4), 그의 길을 평탄케 하십니다(사26:7). 정직한 자를 복이 따라다니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 예닐곱 가지가 있는데, 하나님은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미워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거짓된 혀’요,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입니다(잠6:16~19). 왜냐하면 거짓말을 하는 것은 이미 마귀에게 속했기 때문입니다(요8:44). 제가 미워하는 사람을 우리 집에 들이지 않듯이, 하나님도 미워하는 자를 하나님 나라를 들이지 않기에 정직하지 못한 자가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계21:8).
사울을 보십시오. 그가 아말렉 군대를 치고 전리품을 취해 돌아옵니다. 분명 여호와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통해 모든 소유를 진멸하라고 명령하셨는데 말입니다. 사무엘이 왜 그랬느냐고 묻자 사울은 거짓말로 이를 둘러댑니다. “그것은 무리가 아말렉 사람에게서 끌어 온 것인데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 하여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을 남김이요 그 외의 것은 우리가 진멸하였나이다”(삼상15:15). 정직하지 못한 대가가 어땠습니까? 그는 결국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고, 왕권도 박탈당했으며,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거짓말로 베드로를 속인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즉사하지 않았습니까(행5:1~11).
반면 다윗은 충신의 아내를 취하기 위해 묘안을 짜내어 그를 죽이지만, 하나님이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질타하자 그는 둘러대지 않고 바로 사실대로, 정직하게 회개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 자가 된 것입니다. 죄의 대소를 따지자면 다윗의 죄가 더 클 수도 있으나, 정직한 자와 거짓된 자의 결과는 이렇게 다른 것입니다. 다윗의 아들 솔로몬도 그의 아비를 가리켜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의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저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왕상3:6)라고 하나님 앞에 당당히 말했습니다. 사람이니까 잘못할 수 있지요. 그러나 거짓으로 둘러대지 않고, 꾀부리지 않고 회개하면 다 용서하시는 것입니다.
목회 초기의 일입니다. 제가 몸을 돌보지 않고 집회를 다니다보니 아주 쇠약해졌습니다. 그때 박 목사님이란 분이 제게 ‘제발 건강을 돌보라’며 웅담을 쥐어주시면서 웅담의 효능을 좋게 하기 위해서는 소주 반잔과 함께 먹어야 한다고 귀띔해주셨습니다. 어느 집회를 마치고 성도들과 함께 식당에 가다가 웅담을 먹으려는 생각에 성도들을 먼저 식당에 보내고는 저 혼자 슈퍼마켓에 들어갔는데 그만 주인이 저를 알아보는 바람에 소주 달라는 말을 못하고 껌만 사가지고 나왔습니다. 식당에 들어가서 성도들에게 자초지종을 말했더니 성도들이 소주 반잔을 시켜주면서 웅담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화근이 되고 말았습니다. ‘목사님이 술을 먹었다’는 소문이 교회 안에 돈 것입니다. 저는 고민했습니다. ‘먹었다’고 하자니 시험 들 성도들이 눈에 아른거리고, ‘안 먹었다’고 하자니 거짓말이 되고 해서 말입니다. 그러나 저는 주일날 단에 서서 담대히 말했습니다. “저, 술 먹었습니다.” 그랬는데 성도들이 박수를 치는 게 아닙니까! 우리 목사님이 정직하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정직을 말하는 것이 때론 용기를 필요로 하지만, 그것이 모든 것의 방패가 되고, 그것이 옳은 길임을 그때 깨달았고, 정직하게 살려고 지금까지 애쓰고 있습니다. 거짓말을 못하지는 않지만, 안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시편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거짓을 미워하며 싫어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 주의 의로운 규례를 인하여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시119:163~165). 왜냐하면 정직은 빛이요, 거짓은 어둠이기 때문입니다. 어두운 곳에서는 이것저것이 다 장애물이지만, 빛이 들어오면 장애물이 오히려 디딤돌이 되듯, 정직한 자에게는 만사형통의 복이 따르게 됩니다.
하나님은 다 보고 계셔서 그분의 눈을 피할 수 없습니다(시139:3). 그런데 그 앞에서 무엇을 속일 수 있습니까? 거짓은 그 순간뿐입니다. 다 드러납니다.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눈 깜짝일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
(잠12:19). 그러니 요셉처럼 누명을 쓰더라도 정직으로 일관하며,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히 행합시다. 속이는 저울을 하나님은 아시고, 보고 계십니다(잠11:1). 그래서 사람을 쓸 때 똑똑한 자보다 정직한 자를 써야 합니다. 사위를 볼 때도, 며느리를 볼 때도 요셉처럼 정직한 자를 들여야 집에 복이 들어옵니다.
자신을 경영하지 못하면 사람에게도, 하나님께도 인정받지 못합니다. 매번 늑대가 나타났다고 거짓말하던 양치기 소년처럼 신용불량자가 되어 파산하고 말 것입니다. 경영은 관리요, 관리는 점검일진대 이제부터 거짓을 묻어버리고 자신을 점검하여, 우리 중심에 정직이 있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뜻을 이룹시다(시51:6). 자녀가 정직하게 행하면 부모가 유쾌하듯, 우리의 정직으로 인해 하나님도 유쾌하실 것입니다(잠23:16).
할렐루야!
진실은 빛이요
거짓은 어두움이다
똑똑한 자보다
정직한 자를 써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