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알의 밀알이 되어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난 자녀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했다. 아이들을 양육하며 수고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나의 생각과 계획, 목표를 내려놓기까지 내적 갈등이 많았다. 지나면서 보니 ‘우리 부모님들이 이보다 더한 희생으로 우리 자녀들을 키우시고 가정을 세우셨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정이 파괴되고 있다. 가족 간에 범죄가 성행하고 있다. 자식이 부모를 죽이고, 늙은 부모를 내다 버리고, 부모가 자식을 학대하고, 형제간에 돈 문제로 칼부림을 하고…. 이는 인성교육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인성교육이란 사람됨과 관련되는 핵심적인 가치 또는 덕목을 말하는 것으로, 즉 효(孝), 정직,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등을 말한다.
인성교육의 지침서는 하나님 말씀이다. 어릴 때부터 하나님 말씀으로 양육할 때 효도하는 자식이 되고, 우애 있는 형제가 되며, 자라서 현명한 부모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찌니라”(신6:6~9)고 말씀하신 것이다.
또한 한 가정이 올바로 서기 위해서는 희생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나중엔 부모를 위해 자식의 되갚는 희생이 따라야 한다. 그것이 되지 않으면 자식을 사육하듯 할 것이고, 그것이 되지 않으면 부모가 짐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아동학대니 현대판 고려장이 횡행하는 이유다.
자녀는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는 주의 교훈과 훈계로 자녀를 양육하며, 남편은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듯 아내를 제 몸처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에 순종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와 문화를 초월한 변함없는 진리의 말씀이며, 피 값을 주고 사신 당신의 자녀들을 보호하고 축복하시기 위한 안전장치이자 아버지의 사랑의 외침이다.
기도와 말씀, 사랑과 섬김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가정과 가족 구성원은 현세대와 다음 세대에 걸쳐 어둡고 메마른 세상을 비추고 적시는 빛과 생명수의 통로가 될 것이다.
이국진 사모
복음 영업
제 대학교 친구 중엔 교회를 다녔다가 오랫동안 교회를 나가지 않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런 친구가 안타까웠지만 차마 다시 교회에 가야 한다고,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저 교회 다녔던 아이니까, 언젠가 이 친구도 하나님을 다시 만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올해 초 그 친구와 함께 여행을 갔습니다. 함께 비행기를 타고 이륙준비를 하는데 갑자기 친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난 항상 비행기 흔들릴 때마다 죽을까봐 무서워.” 비행기 타면 많이들 하는 말이었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그 말을 듣는 순간 ‘아차’ 싶었습니다. ‘우리는 한 치 앞도 모르는데, 이렇게 미루다가 이 친구가 하나님을 만나지 않고 죽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와 어색해질까, 제 말을 잔소리처럼 들을까 주저하기엔 복음을 전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결국 그 비행기 안에서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제 말을 들은 친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웃기만 했습니다. 여행이 끝나서도 그 친구는 결국 저와 했던 이야기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친구와의 사이는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됐었는데 얼마 전 친구한테 연락이 왔습니다. 친구가 듣고 싶은 찬양이 있는데 그게 기억이 안 난다며 생각나는 가사를 적어서 보낸 것입니다. 알고 보니 여행이 끝나고 제가 한 말들이 생각나 옛날에 듣던 찬양들을 다시 듣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목사님은 결혼식장에서 주례를 서실 때면 어김없이 복음을 전하십니다. 사람의 눈치를 보지 말고 하나님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목사님의 말씀을 그대로 행동으로 보여주고 계신 것입니다. 복음은 장엄한 선포입니다. 당장은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아도 언젠가 우리가 뿌린 씨앗이 싹을 피울 것입니다. 내 안에 계신 예수님을 삶으로 나타내며 그분을 전할 때, 예수님을 찾고 영접하는 영혼들이 생기기를 바라고 소망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롬1:16).
장수정
sjjang50@gmail.com
이름을 기억해주세요
이름을 잘 외우시나요? 저는 그렇지 못한 편입니다. 회사에서 여러 번 함께 일한 사람들의 이름도 종종 헷갈려서 언제부턴가 이름을 쏙 빼놓고 대리님, 차장님 등 직책으로만 상대방을 부르곤 했습니다. 세상에는 숫자에 약한 사람이 있듯이 저는 이름 외우기에 약한 사람이라고 자신을 변호하며, “전 사람 이름을 잘 못 외워요.”라는 말도 공공연하게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개그맨 유재석을 볼 때마다 제가 감탄했던 부분은 그의 유머감각이나 체력, 책임감 같은 게 아니라 이름을 외우는 능력이었습니다. 예능 프로그램에 신인 아이돌 그룹이 게스트로 출연하면 대부분은 그들의 이름을 몰라서 얼버무렸지만 그는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알고 불러주었지요. ‘오늘 처음 만난 유재석이 나의 이름을 알다니’, 당연히 감동할 수밖에요. 프로그램이 끝날 무렵까지도 신인들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 “저기~”, “야!”라고 부르는 다른 개그맨들과는 참 대조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이름을 잘 외우는 비법은 노력보다는 타고난 기억력에서 비롯된다고 믿었습니다. 유독 암기를 잘하거나 암산에 뛰어난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데일 카네기의 을 읽고서 그것이 얼마나 옹졸한 변명이었는지 깨달았습니다. 데일 카네기는 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집중하고 되풀이하는 시간과 노력을 싫어한다고요. 그래서 바쁘다는 핑계를 댄다고. 하지만 바쁘기로 치면 이분만한 사람이 있었을까요? 미국 대통령 루스벨트는 한 번 만난 정비사의 이름까지도 기억해서 다시 불러줄 정도로 정성을 들였다고 합니다. 자동차회사 크라이슬러는 다리가 불편한 루스벨트를 위해 특수한 자동차를 제작해 백악관에 가져갔습니다. 그날 크라이슬러 회장 체임벌린은 대통령에게 인사하며 자신이 데려온 정비사를 짧게 소개했습니다. 그러고는 손만으로 작동하는 자동차 사용법을 루스벨트에게 가르쳐주었지요. 루스벨트는 체임벌린의 이름을 계속해서 부르며 감사를 표한 것은 물론이고, 쑥스러움이 많아서 뒤로 물러나 조용히 있었던 정비사에게까지 악수를 청하고 그의 이름을 부르며 워싱턴에 와줘서 고맙다고 인사했다죠.
나폴레옹 3세는 왕실 업무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만났던 사람들의 이름을 모두 기억했다고 합니다. 머리가 좋아서 저절로 외워진 게 아니라 대화를 나누는 동안 상대방의 이름을 여러 번 읊조려보는 수고를 했고, 마음속으로 그 사람의 특징이나 표정, 전체적인 외모와 이름을 연관지어보려 노력했다고 합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대하는 일,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것이 아닐까요? 가장 쉽지만 어쩐지 가장 소홀하게 되지요.
여리고로 들어가시는 예수님을 보려고 나무 위에 올라갔던 키 작은 남자를 모든 사람이 그냥 지나쳤지만, 예수님은 걸음을 멈추시고 “삭개오야, 내려오라.”고 말씀하시며 그의 이름을 불러주셨지요. 그 다정하고 따뜻한 마음을 품으며, 저도 이제부터 만나는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려 합니다.
신은혜
dopal0203@naver.com
나의 라마 나욧
어머니께서는 다짜고짜 저의 손목을 잡아끌고 나가셨습니다. 가는 길에 사연을 털어놓으셨습니다. 대학교를 다니느라 집을 떠나 있었고, 어머니께서 자세한 이야기를 한 적이 없어서 그 정도인 줄은 몰랐습니다. 복잡한 일에 얽혀서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 할 정도로 경제적으로 매우 어렵게 되었고, 아버지의 직장까지 위태로운 상황이라는 것을 그제야 알았습니다.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는 해결할 방법이 없고, 오직 하나님만 이 문제를 풀 수 있으니, 총회장 목사님께 축복기도를 받으러 기도원으로 향한 것입니다. 매우 급박하여 미리 약속을 잡을 겨를도 없었기에 기도원에 가면 총회장 목사님을 뵐 수 있을지도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기도원에 도착하니 목사님께서 외출 중이셔서 사택 문 앞에서 기다렸습니다. 한참 뒤, 많은 사람들과 함께 걸어오시는 목사님을 보았습니다. 기도원의 일로 여러 사람들에게 어떤 지시를 하고 계셨고, 그 일에 몰두한 목사님을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어서 인사를 드릴 틈도 없었습니다. 목사님께서도 저와 어머니를 발견하지 못하고 무리에 둘러싸인 채 바쁘게 지나가셨습니다.
목사님을 반드시 뵈어야 했습니다. 목사님께서 그날 서울로 돌아가실 예정이라는 정보를 듣고, 기도원 정문을 나가서 마을을 지나 국도로 합류하기 전 좁은 길목에 섰습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그곳에서 기다리다가 목사님의 차가 나오면 목사님을 뵐 생각이었습니다. 목사님 차의 종류나 차번호는 몰랐고, 그저 검정 승용차라는 것만 알고 있었습니다. 검정 승용차 한 대가 저 멀리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길바닥에 무릎을 꿇고 차를 막았습니다. 좁은 시골길이라 차가 매우 느린 속도로 다녀서 크게 위험하지는 않았지만, 차가 멈춰 섰다가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 후 지나갔습니다. 저는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목사님이 만나주실 거라면서 어머니를 말렸습니다. 소용없었습니다. 검정 승용차가 나올 때마다 저도 어머니와 함께 무릎을 꿇고 차 막아서기를 반복했습니다. 그러다 길바닥에 꿇은 어머니의 무릎이 얼마나 절박한 마음인지,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호소임을 깨닫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더 이상 사람들의 시선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여러 대의 차를 보내고 몇 시간이 지나자, 또 검정 승용차가 내려왔습니다. 또 무릎을 꿇고 차를 막았습니다. 차가 멈추고 문이 열렸습니다. 놀란 총회장 목사님께서 다급하게 달려오셔서 울고 있는 저와 어머니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리고 보듬어주시며, 진심으로 위로해주시고, 사연을 다 들어주셨습니다. 또 온 정성을 다해 축복기도를 해주셨습니다. 그 후, 목사님의 축복기도대로 하나님께서는 국가기관과 준비된 사람들을 통해 도와주셨고, 고난 중에도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그 사건 이후에도 여전히 어려운 일이 있으면 총회장 목사님께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기도를 부탁드리고, 좋은 일이 있으면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을 피해, 선지자 사무엘이 있던 라마의 나욧에서 살았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사울과 그의 부하들이 다윗을 잡으러 왔다가 오히려 하나님의 영이 임해 예언을 하게 됩니다(삼상19:18~24). 이 장면을 묵상할 때마다 하나님의 참 선지자 사무엘을 멘토로 모셨던 다윗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가 참 크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리고 ‘나의 라마 나욧은 어디일까?’ 물으며 총회장 목사님을 떠올립니다. 하나님의 참 종을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총회장 목사님, 지금까지 어려울 때마다 믿음을 심어주시고,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가르쳐주시며, 늘 격려해주시고, 정성을 다해 축복해주신 은혜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과 목사님께 끝까지 의리 지키는 사람 되겠습니다. 이 글이 평생 나를 따라다닐 증거입니다. 목사님, 사랑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잠18:10)
정명관
vic-777@naver.com
혹시 나도 초기 증세?
들으면 누구나 아는 유명한 과학자가 했다고 전해지는 말이 하나 있는데, 이는 다음과 같다.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결과가 달라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정신병 초기 증세이다.”라는 말이다.
깊게 생각해볼만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새로운 결과, 혁신적인 성과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늘 해오던 같은 일만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이 땅에 살면서 우리가 바라고 기대하는 많은 일들이 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은 단기간에 그냥 이뤄지지 않는다. 긴 시간의 노력과 열정, 끈기, 도전, 용기, 운 등이 함께 필요한 법이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늘 똑같은 일만 하면서 제자리에 안주하는 것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 내 꿈과 목표가 있다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도전하고 바뀌어야 한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 변화할 때를 놓치면 또 뒤처질 뿐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많은 것들이 변하고 있다. 자연스레 언컨택트(Uncontact, 비대면) 시대로, 4차 산업혁명 시대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큰 변화의 회오리 앞에 과거의 것을 고집하는 고착된 사고는 개인에게나 단체에나 더는 유익하지 않다. 앞으로 바뀔 새로운 일, 직장, 사업, 관계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변화의 흐름을 놓치지 말아야 하겠다.
목사님께서는 뱀과 같이, 그리고 물과 같이 변화에 적응하는 사람이 되라고 늘 말씀하신다. 마태복음 10장 16절 말씀과 같이 세상에서 뱀과 같이 지혜로운 성도가 되자. 그래서 이제 더는 정신병 초기 증세에 머물지 않고, 변화하고 성장하고 발전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가 되자.
“변화를 두려워하면 현실에 만족하고 살아라.”고 하시는 목사님의 말씀이 새삼 귓가에 맴돈다.
장명훈 집사
jjoshua@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