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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6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물속에서 물을 찾는 어리석은 물고기(시81:10~13)

1056호 · 2020-07-05

“나는 너를 애굽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네 하나님이니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하였으나 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이 나를 원치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내가 그 마음의 강퍅한대로 버려두어 그 임의대로 행케 하였도다 내 백성이 나를 청종하며 이스라엘이 내 도 행하기를 원하노라”(시81:10~13).

물속에서 물을 찾는 어리석은 자가 누구입니까? 바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목사요, 장로요, 권사요, 집사들입니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물속에서 물을 찾는 물고기처럼 어리석기 그지없습니다. 물속에는 물고기를 위해 물과 먹이가 다 예비된 것처럼, 우주 안에는 인간들을 위한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건만 입을 벌리지 않아 곤고하게 살고, 빈곤하게 살고 있습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7:7~8)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어느 한도 내에서 구하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디까지만 찾으라.’고 한계를 긋지도 않으셨고, ‘몇 번까지만 두드리라.’고 횟수를 정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계속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다 주신다고 약속했습니다. 즉 입이 찢어지도록 크게 벌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입을 못 벌리는지 압니까? 왜 못 구하는지 압니까? 인간의 지식과 지혜와 상식이란 잣대로 하나님을 재기 때문입니다. “아, 이건 구해서 될 게 아니야.”, “이건 하나님이라도 절대 해결 못해.” 하며 자칭 하나님이 되어 결론을 내리기 때문입니다. 곧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하는 겁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오산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쥐꼬리만 한 지식이나 상식 속에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분의 능력은 무한하셔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시는 분이며(눅18:27), 그가 하시는 일은 신묘막측(神妙莫測)해서 우리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시139:14). 또한 그분의 생각은 우리와 달리 높디높아 우리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사55:8~9). 제 아들도 저를 이해 못하는데 감히 피조물인 인간이 조물주인 하나님을 판단하고 이해하겠습니까? 예수님이 안수했더니 선천적 소경이 눈을 뜬 일, 이해 안 되지요.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시체가 살아나고, 마리아가 사내 없이 아이를 낳은 일도 과학적으로나 논리적으로도 설명할 수 없지요. 그러나 순종하면 이해가 됩니다. 천사가 나타나 마리아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했을 때 이해할 수 없었지만,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1:38)라고 순종하자 자신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는 놀라운 기적을 맛보게 되었지 않습니까. 이론과 논리 대신, 지식과 상식 대신,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눅1:37)고 고백하고 순종하면 점차 이해의 폭이 넓어지게 됩니다.

“나도 육체를 신뢰할만하니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내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빌3:4~6). 이는 사도 바울의 화려한 이력서입니다. 누구와 견줘도 꿀리지 않을 만큼의 지식과 상식이 풍부했던 사도 바울이 하나님을 만나고는 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겨 버렸습니다. 왜 버렸는지 압니까?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3:8~9), 바로 이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인간의 지식과 이론으로는 하나님을 알 수 없기에 이것을 버려 하나님을 얻은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고후10:5).

하나님 앞에서는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냥 달라고 떼쓰는 어린아이가 되세요(마11:25). 어디 아이들이 부모 주머니 사정 봐줍디까? 뭐 사달라고 해서 안 사주면 밥 안 먹고 땡깡을 놓습니다. 너무 비싸니 다른 거 사준다고 하면 길에 드러누워 떼굴떼굴 구르며 울어댑니다. 동일합니다. 하나님 사정 봐 드릴 필요 없습니다. 그냥 입을 크게 벌려 달라고 하면 됩니다. 바랄 수 없는 걸 바라고, 달라고 금식하고, 울며 기도하면 다 주십니다. 구하지 않아서 못 얻는 것이지, 하나님의 능력이 안 돼서 못 얻는 게 아니라는 겁니다. 악한 부모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으로 다 주려고 할진대 하물며 하나님이시겠습니까(마7:11)?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지식이나 상식, 이론, 논리를 버리세요. 그리고 남들이 보면 무식하다 할 정도로 입을 크게 벌리세요. 그러면 경수가 끝난 90세의 할머니가 아들을 낳은 것처럼 기적 같은 일이 당신에게도 일어날 겁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합니다(히11:6). 그런데 믿음이 뭡니까? 바랄 수 없는 것을 바라는 것 아닙니까? 바랄 수 없는 것, 누가 봐도 허무맹랑해 보이는 일을 간구하면 하나님은 그런 크신 일을 능히 이루실 것을 인정한 당신을 기뻐하시고 이를 이뤄주실 것입니다. 암을 낫게 해달라고 하세요. 나도 다른 사람처럼 좋은 집 달라고 하세요. 유학 보내 달라고 조르세요. 내 형편 보지 말고, 세상사람 말 듣지 말고 입을 크게 벌리세요.

열왕기하 4장에는 선지자의 생도 아내가 빚 때문에 아들이 종으로 팔리게 되자 엘리사를 찾아가 도와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때 엘리사가 뭐라고 합니까?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라 빈 그릇을 빌되 조금 빌지 말고”

(왕하4:3).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많이 빌리라고 했고, 하나님은 그 그릇만큼 기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되 풍성하게 주시길 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릇을 조금 준비하니 그것밖에 못 받는 겁니다. 종재기만한 그릇을 준비하니 그 분량만큼만 주시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엡3:20)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4:19)고 했습니다. 그러니 입이 찢어질 정도로 벌리세요. 정욕대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면(약4:3) 하나님이 분명히 채워주실 것입니다.

자기를 낳아주신 부모 앞에 자존심을 내세우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건만 하물며 우리를 사랑하사 당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십자가에 대신 죽게 하신 하나님 앞에서 무슨 자존심 타령이겠습니까? 자식을 살리기 위해 자존심을 버린 수로보니게 여인(막7), 자신의 원한을 풀기 위해 재판장을 계속 찾아간 과부(눅18), 여행 중에 찾아온 친구에게 먹을 것을 주려고 밤늦게 친구의 집 문을 두드린 사람(눅11)처럼, 자존심을 버리고 하나님께 어린아이처럼 구하면 인생의 얽힌 문제가 풀어질 것이고, 빈 곳간이 넘치게 될 것이며, 아픈 마음과 몸이 치료를 받을 것입니다.

저는 입을 크게 벌렸습니다. 철산리에서 목회를 하면서 세계를 교구 삼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지금 72개국에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사지가 마비되었을 때도 고쳐달라고 입을 크게 벌렸고, 지금은 70이란 나이가 무색하게 40대 기력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반드시 그 기도가 이뤄질 줄 저는 믿습니다. 여러분도 저처럼 구하세요. 하늘과 땅과 땅 아래를 주관하시는 예수님이 성령으로 함께 하사 반드시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고전2:9).

할렐루야!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성경은

인생의 나침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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