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에 충실하자
짧은 역사의 싱가포르(Singapore)가 선진국으로서 강한 나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기본에 충실하여 바르게 살아왔던데 그 이유가 있다. 지도자가 바로 살고, 공직자도 바로 살고, 국민들이 바로 살아왔던 것이다.
성경은 교훈한다. “회리바람이 지나가면 악인은 없어져도 의인은 영원한 기초 같으니라”(잠10:25). 의인과 악인은 그 기초가 어떠냐에 따라 구별된다. 즉, 기본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사람에게는 각자의 맞는 도리가 있다. 부모에게는 부모로서의 도리가 있고, 자식은 자식으로의 도리가 있다. 스승은 스승으로서, 제자는 제자로서의 도리가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은 믿는 자로서의 도리가 있다.
가정에서 지켜야 할 도리는 가훈이고, 학교에서 지켜야 할 도리는 교훈이며, 회사에서 지켜야 할 도리는 사훈이다. 그렇다면 교회에서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 두말할 것 없이 그것은 말씀이다. 어려움을 당할 때 말씀으로 돌아가면 모든 문제는 쉽게 풀리게 되어있다. 성경은 로마서를 통해 그 말씀이 곧 믿음이라고 증거한다(롬10:17). 그리고 그 믿음은 의인된 그리스도인들이 살아나갈 근거라고 말씀하신다(히10:38).
세상이 어지러운 것은 모든 주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도리를 다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의 역할을 제자리에서 감당하지 않으면 이 세상은 어지러워질 수밖에 없다. 결국 이 세상이 어지러운 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세상이 어지러운 것, 가정의 질서가 없는 것, 교회에서 질서가 무너지는 것, 남 탓할 게 아니다. 내가 내게 부여된 도리를 다할 때 하나하나 바로 세워진다.
김상욱 목사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자
얼마 전 치과에 갔다. 병원 의자에 누워 영상을 찍어보신 의사 선생님이 설명을 해주시는데, 예전에 금으로 씌워놓은 사랑니가 상태가 좋지 않아서 뽑아야겠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치아와 잇몸 사이에 틈이 생겼고, 그 틈으로 계속 음식물이 껴서 여간 성가셨던 게 아니다. 이왕 치과에 간 김에 처음으로 스케일링까지 하게 됐는데, 치아와 잇몸 사이에 낀 치석을 제거하고나니 뭔가 묵은 때가 벗어지고 입안이 시원해지는 느낌이었다.
치료를 받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멀쩡했던 사랑니를 뽑게 된 것도, 스케일링을 하게 된 것도 치아와 잇몸 사이에 이물질이 낄 ‘틈’을 주었기 때문이라는 것. 혹시 나의 믿음에 있어서도 악한 것들이 역사할 ‘틈’을 주고 있지는 않은가? 마치 사랑니나 치석처럼 당장 눈에 보이지 않고 딱히 크게 불편하지 않아서 그냥 덮어놓고 살 만큼 사소하고 작은 틈 말이다.
대학생들과 청년들을 상담하다 보면 간혹 그런 경우가 있다. 믿지 않는 가족들에게나 학교나 직장에서 예배드리러 교회 간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은데, 친구 만나러 간다거나 다른 일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와도 되겠느냐는 것이다. 특히나 우리 교회는 워낙 유명한(?) 데다가, 요새는 코로나 사태로 교회 가는 것에 민감하신 분들이 많다. 하지만 나는 그럴 때 차라리 정직하게 말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라고 한다. 그 순간만 잘 넘겨보려고 거짓말을 하면 마귀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기 때문이다. 결국 나중에는 자기 믿음의 정체성까지 부인하게 만드는 경우도 생긴다. 사람들의 시선이나 손가락질이, 멸시 천대 핍박이, 불이익당하는 것이 두려워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하지 못하고 예수중심교회가 우리 교회라고, 이초석 목사님이 우리 목사님이라고 말하지 못한다면 당신은 이미 마귀에게 ‘틈’을 제공한 것이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 악(惡)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다. 작고 사소한 거짓말, 선의의 거짓말도 허용치 말고 범사에 정직하게 행하여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자.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4:25~27).
신혁주 전도사
복 있는 자의 승리
요셉이 형들의 손에 의해 애굽 상인에게 팔려간 것은 지혜로 말미암음이 아니다. 복으로 말미암음이다. 하나님이 요셉을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으로 팔려가게 하셨다. 만일 순순히 데려가고자 하셨다면 본인도 가지 않으려고 했을 것이고, 무엇보다 아비 야곱은 심히 사랑하는 아들이었기 때문에 결코 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요셉이 총리가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복은 지혜와 지식을 뛰어넘는다. 장수들의 비유에 ‘용장(勇將)보다 지장(智將)이 낫고, 지장보다 덕장(德將)이 낫고, 덕장보다 복장(福將)이 낫다’는 말이 있다. 복 있는 장수를 이길 장수는 없다. 복 있는 장수는 피 흘림이 없는 승리를 한다. 그것은 완전한 승리이다. 요셉이 애굽의 이방인으로서 나이 30세에 당시 세계 초일류 강대국의 실세 총리가 된 것은 그런 승리였다. 그가 그런 승리를 얻은 것은 복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복 주셨기 때문이다.
시편 1편은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은 사람에 대해 얘기한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이 주신 법을 주야로 묵상, 곧 되새김하는 사람이라고. 이 말씀 안에 ‘소유’는 하나도 없다. ‘어떤 상태’만 명시돼 있을 뿐이다. 복은 상태의 결과이다.
야곱은 형 에서보다 체격으로나 자질로나 부족했다. 그러나 야곱은 복을 택했다. 약졸들은 탓하기를 좋아한다. 배우지 못했고, 가진 것이 없고, 늙었다고.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많다면 탓하지 말고 야곱처럼 복을 택하자. 하늘의 상을 택하자.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택하자. 사람들은 환경을 따라 말은 바꾸지만, 하나님은 약속하신 말씀 때문에 환경을 바꾸시는 분이다. 내가 복 있는 자, 즉 복장(福將)이 되면 요셉 같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그 환경을 바꾸시어 범사에 형통케 하신다.
신앙은 부딪침에서 시작된다. 말씀이 내 이론 상식과 부딪쳐 깨어지고, 또 깨어져 나갈 때 곤고하고 아프지만 이 과정이 복 있는 사람, 곧 복장으로 변화시킨다. 우리 모두 복장이 되어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처럼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범사에 형통하기를 소망한다.
임택함 목사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라는 시에는 이 땅의 삶을 ‘아름다운 소풍’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잠시 다녀가는 소풍이기에 미련과 집착을 버리고 살아가자는 내용의 시입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고 말하리라.”
그의 시처럼 인생이 소풍이라면 아무렇게나 살아가도 괜찮습니다. 그런데 우리 인생, 한번 죽는 것은 하나님의 정하신 것이요. 죽은 뒤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엄밀하게 인생을 비유한다면 소풍이 아니라 출장입니다. 출장은 다녀와서 보고를 해야 합니다. 그 활동에 따라서 책망을 받기도 하고 포상을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출장 기간을 우리가 알지 못합니다. 언제라도 보내신 분이 부르시면 지체 없이 가야 합니다. 그래서 그날을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의 영생이 걸려있는 문제이므로 철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하늘로 돌아가고 싶다고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은 사람은 영생복락의 천국으로 가고, 믿지 않은 사람은 영벌의 지옥으로 갑니다. 이것이 천지만물의 창조주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입니다.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죽은 뒤에 깨달아서는 늦습니다.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노후를 준비하지만 지혜로운 자는 사후를 준비하는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구원을 받은 성도들은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천국의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상화평 목사
sanghwapyung@hanmail.net
변하지 않는 것
2012년도에 미국의 소셜미디어업체인 페이스북은 ‘인스타그램’이라는 아이폰용 사진공유앱을 10억 달러(1조 2천억원)에 인수했습니다. 이미 당시에 페이스북은 2009년부터 세계 3년 연속 1위(2017년까지 8년간 1위)의 소셜미디어로서 가장 많은 사용자가 있고, 많은 기업들이 마케팅페이지로 사용할 만큼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왜 굳이 필요 없는 업체를 사는지 의문이었으나, 인스타그램은 2016년 11월에 5위로 껑충 뛰어오르며 현재까지 유튜브와 엎치락뒤치락하고 있을 정도로 성공했습니다.
재미있는 건 소셜미디어의 흥망성쇠가 젊은 층의 선택에 따라 주류가 바뀌는 것입니다. 최근 서비스가 종료된 싸이월드는 한국에서 8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소셜미디어였습니다. 여기서 90년대 생으로 넘어가면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이 주 사용 매체가 되었고, 최근 2000년대 생들은 ‘틱톡’이라는 짧은 영상을 공유하는 어플을 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조금 어려우시겠지만, 각 세대가 이용하는 매체를 이해하는 것만큼 서로를 알기 쉬운 방법도 없습니다. 소셜미디어의 유행은 주된 사용자들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사진 하나에 글을 길게 쓰던 싸이월드나 페이스북에서 가벼운 사진을 올리고 짧은 글을 공유하는 인스타그램, 사진에서 영상으로 재미있는 표현을 하는 틱톡까지 점점 감정이나 의미를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형태로 변화해왔습니다.
분명 글을 길게 쓰고 읽으면서 깊은 의미를 파악하는데 즐거움을 느끼는 어른들은 짧은 영상이나 사진으로 의사를 표현하는 젊은이들에게 핀잔을 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미래를 계획하고 성실하게 살라는 진심 어린 충고보다 직접적으로 ‘사랑해’라고 표현하는 것이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훨씬 효과가 빠를 수 있습니다. 기원전 1700년경 수메르 점토판에서 발견된 ‘요즘 젊은 애들 버릇없어.’라는 고문서가 말해주듯, 예나 지금이나 윗세대와 아랫세대와의 표현방식이 달랐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사랑의 표현은 변함없습니다. 세대가 변하고, 문화가 변해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3:16)고 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젊은이나 나이가 든 분들에게나 너무도 잘 전달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속에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으니, 그것을 다른 어떤 표현과 바꾸겠습니까.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아니하신다는 사랑(요14:18), 여인이 그가 낳은 자식을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손바닥에 새겼다는 그 놀라운 사랑(사49:15~16)은 다른 어떤 말로도, 어떤 신세대의 말로도 대신할 수 없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저 그 사랑에 할 말을 잊을 뿐입니다.
김대화
realdialog@naver.com
마음으로, 입으로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오래전 많이 사용되던 정(情)을 강조한 제과 제품의 광고 음악이다. 그저 바라만 봐도 알 수 있다는 그 가사처럼 말해주지 않아도 내가 상대방의 마음을, 상대방이 내 마음을 알아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말을 해야 안다. 서로에 대한 마음속 바람과 기대치가 충족되지 않으면 오해와 갈등이 발생한다. 나를 사랑하면 혹은 ‘우리 사이에 이 정도는 말 안 해도 알아야지, 그걸 꼭 말해야 하나’ 하는 잘못된 생각이 화해도 가로막는다.
말을 해서 상대방이 그렇게 해주게 되면 감동도, 기쁨도 줄어준다는 이유로 말을 안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오래 지속하고 싶은 관계일수록 같은 말을 잔소리처럼 하는 것만 아니라면 말을 해주는 편이 좋다. 특히 보편적 사고방식이 다른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더욱 그렇다.
표현하지 않아도 마음만으로 충분했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언어를 주시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마음을 아시지만, 그럼에도 기도로 우리의 속마음을 털어놓기 원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을 주실 때도 말씀하셨다.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한다고(에스겔 36:37).
사랑과 감사, 사과의 마음이 있다면, 입으로도 전해야 마음이 통한다. 사랑한다는 말, 고맙다는 말에는 지나침이 없고, 미안하다는 말은 망설일 필요 없다. 우리 사이에 당연한 것을 기대하다 나중에 섭섭해 하는 것은 건강하지 못하다.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에게 지금 자신의 마음을 표현해보는 것은 어떨까. 진심은 통하게 되어 있다. 다만, 그대의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처럼 아름답게.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로마서 10:10).
박찬영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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