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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5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감정으로 감정을 잠재울 수 없다(약3:1~12)

1055호 · 2020-06-28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하나님 말씀이 곧 하나님이십니다. 같은 이치로 말은 곧 그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을 볼 때 학벌이나 미모나 경제력 같은 거 안 봅니다. 말을 들어봅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훤히 보이지요. 그 사람의 인격도, 교육 정도도, 가정상황까지도 다 파악됩니다.

명견이 무엇입니까? 짖을 때 짖고, 짖지 말아야 할 때 짖지 않는 것이 명견입니다. 명마가 무엇입니까? 달리라면 달리고, 멈추라면 멈추는 것이 명마입니다. 그런데 아무 때나, 아무 말이나 막 내뱉는, 짐승보다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로 인해 평생 쌓은 공적이 순간 무너지고, 싸움이 나고, 구속되는 사람들을 우리는 허다하게 봅니다.

저도 본시 칼 나간다 총 나간다 하는 성격이어서 말의 실수도 많았고, 그로 인해 손해도 많이 봤습니다. 개도 한 번 두들겨 맞은 구멍에는 안 들어가는 법, 안 되겠다 싶어서 목회 초에 조그마한 자갈을 입에 물고 다녔습니다. 자그마치 3년 정도 물고 다녔습니다. 그랬더니 사람이 바뀝디다. 말에 조급하지 않고 신중하게 되고, 말을 아끼게 됩디다. 지키지도 못할 약속은 애당초 안 하게 됩디다. 그러니 자연 실수도 줄고, 손해도 안 보고, 사람의 신뢰도가 높아집디다. “우리가 말을 순종케 하려고 그 입에 재갈 먹여 온 몸을 어거하며”(약3:3).

거미줄을 없애려고 밤낮 빗자루 들고 다녀봐야 아무 소용없습니다. 거미줄을 만드는 거미를 잡아야 하듯, 말을 잘하려면 그 근본을 고쳐야 합니다. 말의 근본은 바로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말은 입으로 하지만, 그것의 근본은 마음입니다. 고로 말이 악하다는 것은 생각이 악한 것이고, 말이 곱다는 것은 고운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증표이지요. 절대 악한 마음에서 선한 생각이 나올 수 없습니다.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실과로 나무를 아느니라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마12:33~35). 병 속에 오렌지 주스가 들어있으면 오렌지 주스가 나오지 토마토 주스는 나올 수 없습니다. 병에 오물을 넣어놨으니까 오물이 나오는 것처럼, 말이란 생각의 외형이라는 것이죠. 그러므로 마음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마음의 밭을 엎는 방법은 오직 성령 충만으로만 가능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마음의 밭을 갈아 쓴 뿌리를 제거해야 근본이 맑아지고 선해집니다. 거기서 선한 말, 아름다운 말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운명이 바뀝니다.

인생은 말(言)이라는 말(馬)을 타고 다닙니다. 누에가 자기 몸에서 나오는 실로 자기를 돌돌 말 듯, 말이 운명을 굴레 씌웁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18:21), “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잠6:2). 다 내가 하는 말이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말씀입니다.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 사공의 뜻대로 운전하나니”(약3:4), 배의 방향이 작은 키에 의해 정해지듯 인생의 향방도 보이지 않는 혀로 인해 정해진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결정타가 되는 한 말씀이 있는데, 바로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민14:28)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말한 대로 해주겠다고 하시는 겁니다. 생사화복이 나의 말에 달렸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자식에게, 남편에게, 아내에게 ‘나가 죽어라.’, ‘빌어먹을 놈’ 그럴 겁니까? 그게 운명이 되는데요. 자식이 빌어먹고 살았으면 좋겠습니까? 남편에게 ‘당신은 안 돼’라고 말했다면 당신 부부는 ‘안 된다’는 말(馬)을 함께 탄 겁니다. 그러니 사업이 안 되고, 시험에 안 되고, 인생이 안 되는 것입니다. 잘 되면 하나님이 안 계시는 것이지요.

미술가가 붓을 들고 어떤 그림을 그릴 것인가, 작곡가가 오선지를 앞에 두고 어떤 곡을 작곡할 것인가 역시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당신의 생각이 말로 표현되는 것이며, 그 말이 당신의 인생을 명작으로 만들 수도, 아니면 졸작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말은 예술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꼭 말씀드리고픈 것은 감정으로 감정을 잠재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건 목회 초, 제주도에서 바다를 보며 깨달은 진리입니다. 거센 파도가 바위에 부딪치니 둘 다 아스러지는 소리를 내며 고통 받는 것을 봤습니다. 그러나 파도가 모래사장에 밀려오니 그렇게 거셌던 파도도 조용히 모래에 묻혀 방글방글 웃었습니다. 한쪽 감정이 사나울 때 맞받아치는 언사는 결국 공멸을 자초할 뿐이라는 겁니다. 허나 부드러운 말은 상대의 노를 잠재울 수 있는 명약입니다. 그래야 상생하게 되고요. 성경은 말씀합니다.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15:1).

요즘 북한이 우리나라에 차마 입에 담기도 어려운 폭언을 퍼붓고 있습니다. 듣자니 화도 나고 기가 막혀 말문이 막힐 지경입니다만, 그렇다고 이것을 되받아칠 필요가 없음은, 그렇게 되면 더 큰 악을 낳게 될 것이고, 이는 공멸을 자초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갈5:15). 거센 파도를 잠재우는 방법은 모래 같은 마음을 갖는 겁니다. 마음을 넓혀 우리가 참고 감정이 수그러들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지혜입니다. 가진 자가 베풀고, 받아줘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고 하십니다. 악을 선으로 갚으라고 하시며, 더는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고 하십니다(롬12:20). 또한 마태복음 5장에는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마5:39~42)고 하십니다.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해보려고 애쓰는데 저쪽에서 우리의 진실을 잔인하게 짓밟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사실을요. 틈만 나면 핵을 운운하며 투견처럼 덤벼들고,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 저들이란 것을요.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듯 하나님도 다 보고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원수 갚는 일일랑 나에게 맡기고 너는 내 말에 순종하여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롬12:19). 그러니 감정을 격화시키는 말과 행동을 자제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합시다(마5:44). 어쩌면 저들이 가지고 있는 핵보다 무서운 핵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미움이라는 핵인지 모릅니다. 그걸 제거해야 우리에게 평화통일이 한 걸음 다가올 것입니다.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살전5:15).

여러분, 당신은 지금 어떤 말을 하고 있습니까? 말이 씨일진대 그 씨가 자라 열매를 맺게 됩니다. 당신 인생에 가시나무가 가득하다면 그건 누구 탓도 아닙니다. 당신이 과거에 가시나무 씨를 뿌렸기 때문입니다. 가시나무를 심고 무화과를 거둘 수 없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우리가 말의 실수가 없으면 ‘온전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약3:2). 그만큼 어렵다는 거지요. 그러나 기도하면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가 주렁주렁 열릴 것이고, 그에 따라 우리의 말이 달라질 것이고, 더불어 우리 인생도 달라질 것입니다.

할렐루야!

인생은

말을 타고 달린다

말이 변하면

세상이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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