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德)
사회적으로 상당한 위치에 있고, 재력도 막강한 어느 성도가 전화를 해서는 한탄 섞인 어투로 “목사님, 제가 어딜 가서 마음 편히 쉴 곳이 없네요. 나를 반갑게 받아줄 사람이 없네요.” 한다. 그의 말끝에 나는 “이봐요. 마당발이면 뭐하겠소. 내가 쉬고 싶을 때 나를 받아줄 사람이 없다면 무슨 소용 있겠소. 손만 크면 뭐하겠소, 베풀지 못하는 손은 수치스러운 손이 아니겠소. 이 모든 것은 당신 부덕의 소치요. 내가 덕을 쌓지 못한 탓이요.”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통감하듯 “그런가 봅니다.”라고 했다.
덕이 부족하여 남에게 많이 베풀지 못하고, 남을 배려하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필요할 때 그들이 내 필요를 채워주지 못하는 것 아니겠는가. 인과응보(因果應報)는 이럴 때 쓰는 말이다.
누가복음 16장에 한 청지기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허비하며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주인이 청지기의 비리를 알고는 채근하자 청지기는 ‘쫓겨나면 이제 뭐 해 먹고 살지? 어디 가서 살지?’ 하며 자신의 앞날을 생각했다. 그러나 생각해봐도 딱히 할 일도 없고, 딱히 갈 곳도 없었다. 그러던 그가 ‘바로 이거야’ 하고 무릎을 쳤으니, 그것은 바로 주인에게 빚진 자를 불러다 빚을 삭감해주는 일이었다. 청지기인지라 장부를 관리하고 있을 터, 기름 백 말을 빚진 자를 불러 오십 말이라 쓰라 하고, 밀 백석 빚진 자를 팔십 석이라 쓰라 했다. 이렇게 함으로 자기가 쫓겨났을 때 그들이 자기를 기쁨으로 영접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주님은 이 청지기를 지혜롭다고 칭찬하셨다. 맞다. 물론 불법적인 내용이 다소 있지만, 남에게 많이 베풀면 나도 그만큼, 아니 그 이상 대접받는다는 것이다. 주님은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7:12)고 말씀하시며, 이를 율법이요, 선지자라고 하셨다. 구약의 정신이며, 대강령이라는 뜻이다.
이제 나를 돌아볼 시간이다. 내가 곤고할 때 선뜻 내게 쉼터를 제공해줄 사람이 있는가? 있다면 당신은 덕을 쌓은 사람이요, 없다면 이제부터 덕을 열심히 쌓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