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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3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의욕을 좀먹는 마귀를 대적하라(행20:17~24)

1053호 · 2020-06-14

소경 바디매오에게는 ‘꼭 눈을 뜨고야 말겠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예수님의 소식이 들렸고, 예수님이 오셨을 때 그는 주위에서 뭐라고 하든지 목청껏 예수를 불러 소원을 이뤘습니다. 여리고로 가는 예수님 앞에 어찌 소경이 바디매오 한 사람뿐이었겠습니까? 그러나 바디매오가 다른 소경과 다른 것은 바로 눈을 뜨고야 말겠다는 의욕이 늘 불일 듯 일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소경들은 ‘오늘 먹을 것이나 빌어먹자.’ 하며 살았지만, 바디매오만은 눈뜨고자 하는 의욕을 불태워 마침내 소원하는 바를 이뤘습니다(막10:46~52).

수로보니게 여인은 귀신 들린 딸이 고침을 받는 꿈이 있었습니다. 그 여인은 예수님만 만나면 딸이 나음을 입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예수님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녀의 면전에 대고

“개 같은 여자여, 어딜 감히!”(막7:27)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그 여인은 “개라고 하셔도 좋습니다. 내 딸만 고쳐주십시오.”(막7:28)라고 했습니다. 의욕 앞에서 자존심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그런 그녀의 믿음을 극찬하셨고, 소원을 이뤄주셨습니다(마15:28).

이렇게 ‘뭔가 하고야 말겠다’, ‘뭔가 이루고야 말겠다’는 마음 자세를 일컬어 의욕(意欲)이라고 표현합니다. 의욕적인 자들은 앞에 장애물이 생기면 더욱 의기충천하여 그것을 뛰어넘고 뜻을 이룹니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사도 바울이 결박과 환난이 기다리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조금도 흔들림 없이 달려가며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고 공언한 것은 어떠한 불가능의 조건도 자신의 불타는 의욕, 복음전파에 대한 의지를 꺾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의욕이 넘치는 자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요한복음 5장에 38년 된 병자가 나옵니다. 그는 베데스다 연못물이 동할 때 제일 먼저 그 물에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이든 낫는다는 얘기를 듣고 수없이 이를 시도했지만 병으로 인해 거동이 자유롭지 못한 상태인지라 도와주는 사람이 없어 물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반복되다 보니 의욕은 바닥을 쳤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찾아오십니다. 오셔서 그에게 먼저 하신 말씀, “네가 낫고자 하느냐”(요5:6). 그는 뒤통수를 맞은 듯 정신이 번쩍 났고, 살고자 하는 의욕이 되살아났습니다. 그때야 예수님은 그에게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하시며 그의 병을 고치셨습니다.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의 미래를 맡기실 때도 그러셨습니다. 40년 동안 광야에서 양치기로 산 모세에게 의욕이란 없었습니다. 그저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인생을 세월에 맡긴 채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이 그에게 이스라엘 백성의 수장이 되어 그들을 이끌고 애굽을 탈출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목적도 의욕도 없이 살던 모세는 당연히

‘못해요, 안 돼요.’ 할 수밖에요. 그러나 하나님이 열 가지 재앙을 통해 ‘할 수 있다’는 마음을 주시고, 의욕을 생성케 하사 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쓰셨습니다. 적보다 무서운 것이 의욕을 상실한 지휘관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의욕이 상실된 자들의 공통점은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의욕을 좀먹은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늘 말하지 않습니까? “이자가 두려운 자는 사업을 하지 말고, 이혼할까 두려운 자는 결혼하지 말고, 펀치 맞는 것이 두려운 자는 챔피언의 꿈을 버리라.”고 말입니다. 두려워하는 순간 귀에 아무것도 안 들리고, 눈에 아무것도 안 보이고, 몸도 움직여지지 않습니다. 10명의 정탐꾼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보고한 것을 보십시오. 두려우니 자신들이 메뚜기 떼처럼 보이는 겁니다. 그러나 담대한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이 내 밥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성경에 기록된 담대한 자들을 보십시오. 하나님을 섬긴다는 이유로 당장 풀무불로 던져질 위기 앞에서 사드락과 메삭, 아벳느고는 “느브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단3:16~17)라고 했고, 예루살렘 성을 재건하던 느헤미야는 도비야와 산발랏이 훼방하고 협박하자 “너희는 저희를 두려워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느4:14)하고 백성들을 독려했고,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이 하나님을 능멸하며 이스라엘 사람들을 협박할 때, 어린 다윗은 맷돌을 가지고 싸우러 나가며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17:45)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담대할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졌거늘 그런 상황이 왜 두렵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에게는 확고한 믿음, 곧 하나님이 언제나 나와 함께 한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두렵지 않았던 것입니다.

“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오직 너는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 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수1:5~9). 이 말씀은 제가 목사 안수를 받은 후 처음 들은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이 말씀은 지금도 제 마음에 살아 저를 움직입니다. 36년 물 없는 사막, 눈 덮인 산야와 같은 길을 걸었지만, 정말 수없이 많은 핍박과 온갖 크고 작은 사건 속에서도 늘 담대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이 말씀이 나를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데 뭘 못하겠습니까? 하나님이 성령으로 내 안에 거하시는데 뭐가 안 되겠습니까? 두려워하니까 그 틈을 타고 귀신이 들어오는 겁니다. 돌을 명하여 사람이 되게 하시고, 마른 막대기에서 싹이 나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만물과 만인을 부리시는 이가 나와 함께 하신다는데 두려워하는 게 이상한 거 아닙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가로되 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히13:6).

여러분, 만물은 다 들을 귀가 있습니다. “태양아 멈춰라.”고 여호수아가 명하니 태양이 아얄론 골짜기에 머물렀고

(수10:12), “파도야 잠잠하라.”고 예수님이 명하시니 파도가 잔잔해졌습니다(막4:39). 예수님이 “나사로야 나와라.” 하시니 죽은 나사로도 베에 싸인 채로 무덤을 나왔습니다(요11:43). 믿는 자에게 주신 성령, 곧 예수 이름으로 오신 성령을 힘입어 만물을 명하면 다 복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단, 담대해야 합니다. 두려워 떨면 그것의 올무가 될 뿐입니다(잠29:25). “내가 예수 이름으로 명하니 집은 팔려라.”, “내가 예수 이름으로 명하니 암은 물러가라.” 반드시 명령한 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자녀에게, 성도에게, 친구에게 의욕을 불어넣는 말을 하세요. ‘넌 안 돼.’ 그러지 말고, ‘넌 할 수 있어.’, ‘넌 무엇이든 잘 될 거야.’ 이렇게 말해주세요. 그래야 의욕이 넘치고 미래를 향해 도전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히10:39). 할렐루야!

의욕은

넘지 못할 벽이 없다

두려움을 정복해야

의욕이 샘솟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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