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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52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공짜는 사람을 무기력하게 한다(살후3:10~13)

1052호 · 2020-06-07

요즘 젊은이들은 일자리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사업주들은 일할 사람이 없어서 애가 탄답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조화랍니까? 이 말인즉 젊은이들이 조금 험하고 힘든 일은 안 한다는 겁니다. 편안한 일, 조금 일하고 돈은 많이 받는 일, 시간적인 여유가 많은 일을 찾으니 일이 없는 겁니다.

여러분, 제가 70여 평생을 살아봤는데 정말 세상에 공짜는 없습디다. 공짜에는 독이 있습디다. 옛말에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고 했는데, 그러나 양잿물 마시면 죽습니다.

호주에는 세계 최대의 정어리 통조림 공장이 있었습니다. 이 공장 주변에는 갈매기가 그야말로 떼로 몰려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갈매기가 죽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런가 하고 조류학자들이 분석해보니 이 갈매기들이 정어리 공장에서 나오는 내장 같은 것을 배급받듯 먹다가 정어리 공장이 문을 닫으니 먹지를 못해서 아사(餓死)한 것입니다. 조금만 날면 바다에 먹거리가 지천이건만 사람들이 던져주는 먹이에 길들여져 굶어 죽으면서도 그 자리만 고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생력을 상실했기 때문입니다.

자생력을 상실한 사람들도 많습니다. 정부에서 주는 지원금이나 바라고 있고, 일확천금이나 바라며 복권이나 사는 사람들 말입니다. 덩치는 부모보다 큰데 아직도 캥거루처럼 부모의 도움으로 사는 자들이 많습니다. 안 됩니다.

사도 바울은 그런 자들에게 일침을 놓습니다.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3:10). 일하기 싫습니까? 먹지도 마십시오. 노력하기 싫습니까? 그렇다면 현실에 만족하고 지금 그대로 사십시오. 이건 제 말이 아니니 오해 마십시오. 대사도인 바울의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받을 권, 곧 성도들이 공급하는 것으로도 넉넉히 살 수 있었지만, 그는 천막 짓는 일을 하며, 자족하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주어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살후3:8~9)고 당당하게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도 엿새 동안 일하시고 하루를 쉬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는 출애굽기 20장 9~10절 말씀에 통해서도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 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라고 했습니다. 시편 128편 2절 말씀에도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라고 하심으로 열심히 일한 자가 잘 되고 형통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가 세계를 메주 밟듯 다 다녀봤는데, 가난한 나라는 가난한 이유가 다 있습디다. 게을러요. 일 하나 시키면 세월아 네월아 합니다. 점심 먹고는 두어 시간 오수를 즐기느라 가게며 공공기관이며 다 문을 닫습니다. 그래놓고 잘살기를 바란다면 말이 안 되죠. 우리나라가 어떻게 이리 발전했습니까? 변변한 자원도 없고, 국토는 남북으로 갈리고, 잘린 국토 중 70% 이상이 산으로 둘러싸인 나라가 어떻게 세계 열 손가락에 꼽히는 경제 대국이 되었느냐 이 말입니다. 바로 부지런히 일하고, 부지런히 배워서 오늘이 된 거 아니겠습니까? 다들 한강의 기적이라고 하지만, 기적이 아니라 우리가 애쓴 결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하는데, 가진 게 없어서 못한다고 합디다. 게으른 자들은 늘 이렇게 핑계를 대지요(잠26:13). 그러나 최고의 자산이 젊음이요, 부지런 아닙니까? 그것만 있으면 못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잘 생각해보세요. 내 인생의 강도는 다름 아닌 게으름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강도를 방치하면 내 인생의 미래는 없습니다.

학벌이 좋으면 뭐합니까? 인물이 좋으면 뭐합니까? 부지런해야지요. 좋은 머리와 학벌을 가만둬서 썩히는 것은 세계적인 명차인 벤츠를 차고에 그대로 방치해놓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녹슬고 말지요. 인생도 그렇습니다. 열심을 내서 일하고, 도전해야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자고로 열쇠도 자주 써야 윤이 나고, 문이 잘 열리는 법입니다. “무딘 철 연장 날을 갈지 아니하면 힘이 더 드느니라”(전10:10).

집고양이들은 야성을 완전히 잃어서 주인이 주는 먹이나 먹고, 그 품에서 애교나 부리며 삽니다. 쥐를 앞에 놓아두면 오히려 무서워 도망간답니다. 본성을 잃은 겁니다. 자고로 우리는 이 세상을 지배하고 정복하고 다스리게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하나님이 애초에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8).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본성을 잃었습니다. 왜요? 게을러서입니다. 여러분, 뭔가를 정복하고 다스리려면 필수항목이 부지런입니다. 게을러서는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다스림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잠12:24).

“내가 증왕에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본즉 가시덤불이 퍼졌으며 거친 풀이 지면에 덮였고 돌담이 무너졌기로 내가 보고 생각이 깊었고 내가 보고 훈계를 받았었노라 네가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 하니 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

(잠24:30~34)는 말씀처럼 게으른 집의 밭은 잡초가 무성하고, 게으른 집의 담은 무너져있고, 게으른 집 아이는 꼬질꼬질합니다. 그러나 부지런한 집은 반지르르하지요. 잠언 31장에는 현숙한 여인은 부지런한 여인임을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야성을 잃은 고양이, 편해 보이지만 그건 고양이가 아니라 사람의 장난감에 불과합니다. 그렇게 살고 싶습니까? 정상에 도전하느라 땀도 흘려보고, 눈물로 씨도 뿌려보고, 밤새 번민과 고뇌도 해보고…. 한 번 뿐인 인생 이렇게 멋지게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80의 나이에도 헤브론을 달라고 도전한 갈렙처럼 나이를 초월한 열심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신성(神性)도 회복해야 합니다. 로마서 12장 11절 말씀에는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고 했습니다. 주의 일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목사, 참 편합니다. 대접받고, 성도들이 목사 말이라면 정말 잘 듣습니다. 그런데 편한 것에 취해 있다 보면 신성을 잃게 됩니다. 야성을 잃은 고양이 꼴 납니다. 목사는 열심히 말씀과 기도에 전무해야 합니다(행6:4). 그래서 신성, 곧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14:12)는 말씀을 이뤄야합니다. 예수님도 낮에는 귀신을 쫓고 병을 고치며 복음을 전하시다가 밤이 되면 밤이 맞도록 기도하시고, 미명에도 기도하시며 열심을 다해 일생을 사셨습니다. 고로 목사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은 예수님을 본받아 주의 일에도, 일상에도 열심을 내야 합니다.

여러분, 게으름은 악입니다. 악은 곧 마귀입니다. 이걸 잘라내지 않으면 결국 지옥 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성경에는 일하지 않는 사람들은 가난하게 되고(잠10:4). 패가망신하게 되고(잠18:9), 있는 것도 빼앗기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25:26~28). 그러니 게으른 나와 싸워 이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장수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무위도식하면 뇌도, 몸도 망가지나 일을 하면 성취의 기쁨과 함께 육체도 건강해지는 법입니다. 이제 국가가 날 위해 뭔가 해주기를 바라지 말고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까 생각하고 노력해봅시다. 교회가, 부모가 나에게 무엇을 해주기를 바라지 말고 열심히 노력하고 열심히 일해서 교회를 위해, 부모와 가족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세요.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이는 외인을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살전4:11~12). 할렐루야!

게으름은 악이요

게으름은 무책임이다

야성(野性)을 잃은

고양이가 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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