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배기보다 장맛이 좋아야한다
지난 수요예배에서 목사님은 사울과 다윗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민족이나 기업이나 가정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주시는지 말씀하셨다.
“오늘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울이라는 사람이 하나님을 역행하는 순간에 변화가 아니라 변질이 되더니 악신이 임했다고 이야기합니다. 반면에 하나님이 택한 다윗에게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기름을 붓자 하나님의 신이 임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신을 받았던 사울이 버림받았다는 겁니다. 무슨 얘기냐? 아무리 목사, 장로, 권사, 집사라도 첫사랑을 잃으면 악의 영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런데 이것을 분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문제가 있는 겁니다. 우리는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라 악한 영과의 싸움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잃는 순간, 악신에게 사로잡히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항상 여러분들에게 첫사랑을 잃지 말라고 강조하는 것입니다.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신 예수님, 베데스다 연못가의 중풍병자를 고치신 예수님께서 동일하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예수님은 일흔 번의 일곱 번이라도 죄를 용서는 하시지만,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말하는데 변하지 않는 만고의 진리가 뭐냐? ‘뚝배기보다 장맛이다’ 이겁니다. 뚝배기가 아무리 좋아도 장맛이 시원찮으면 소용없습니다. 뚝배기 그릇이 좋다고 맛이 나는 게 아니라 장 자체가 좋아야 된장찌개가 맛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장이 변질되어버리면 아무리 좋은 뚝배기에 끓여도 제 맛이 날 수 없습니다. 변절자, 바로 사울은 변절했기에 버림받은 겁니다. 변화가 아닙니다. 변질됐기 때문에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겁니다. 아무리 일류 음식도 변질되면 음식쓰레기통에 들어갈 뿐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쓰시던 사람도 변질되어버리면 버림받았다는 것이 성경이 간증하는 내용입니다.
뚝배기도 좋고 장도 좋다면야 금상첨화겠지요. 많은 결혼상담을 하는데, 문벌이 좋고, 학벌이 좋고, 인물이 좋고, 등등 수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나는 다 듣고 난 후에 단 한마디로 종결지어줍니다. 아무리 문벌이 좋고, 학벌이 뛰어나고, 인물이 수려하고, 그런 뚝배기보다 장맛, 곧 마음이 고와야 한다고 말이죠. 집은 좀 좁아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좁은 사람과는 살 수가 없는 겁니다.
새로운 왕에게 기름을 붓기 위하여 이새의 가정을 찾아간 사무엘에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사람들이 보는 것과 다르다. 나는 용모와 신장을 보지 않는다. 그는 이미 내가 버렸다.’ 소름끼치는 이야기 아닙니까? 나는 정말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내가 세운 목사, 장로에 대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실 때입니다. 그러나 가라지라도 그냥 내버려두라 십니다. 가라지 뽑다 알곡 상할까 두려우니 추수 때까지 그냥 두라고 하십니다. 그러니 성령의 충만함을 잃으면, 첫사랑을 잃으면 버림받은 사실조차 모르고 그 삶에 되는 꼬락서니가 없는데도 사울이 마지막 전쟁터에서 죽기까지 끌려 다닌 것처럼 악신에게 끌려 다니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는 겁니다. 곧 지옥으로 끌려가는 겁니다.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항상 기도에 힘쓸 것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부족은 모든 것의 부족’이라고 유언처럼 기도원에 새겨놓은 것입니다. 어서 돌이키기 바랍니다.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서는 안 됩니다. 이는 인간관계에서도 우리의 영적 생활에서도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 변질되어버리면 인생 종 치는 겁니다.
변하지 않는 만고의 진리, 뚝배기보다 장맛이 좋아야 합니다. 제발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지 말기 바랍니다. 소가 없는데 아무리 외양간 고쳐봐야 무슨 소용입니까? 때늦은 후회로 눈물 바가지 되지 말고 항상 하나님 편에 서서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성령 충만한 삶, 구름 없는 아침 햇살 같은 복을 누리며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은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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