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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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계획

1040호 · 2020-02-02
아름다운 인생

인생은 퍼즐이다. 이미 완성된 그림을 조각조각 만들어 그것을 다시 맞추는 퍼즐 같은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내 인생의 그림도 이미 그려져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의 기도로부터 시작된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어머니는 나를 두고 하나님께 서원하셨단다.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해달라고, 더욱이 총회장 목사님께서 방송국을 만든다고 하셨을 때 방송국에서 쓰임 받게 해달라고 기도하셨다고 한다.

나는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그저 퍼즐 한 조각씩을 맞춰가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영상에 관심이 많았고, 그쪽으로 진로를 선택했다. 도중에 ‘이 길이 맞는가’ 하는 갈등도 있었지만, 내 달란트가 그쪽임을 깨닫고는 곧장 직진했다. 교회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프리랜서로 활동하기까지 다양한 경험을 했다. 내게 주신 이 달란트를 하나님의 일에만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주의 종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나중에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때 왜 내가 이 길을 가고 있는지 알게 되었고,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에 놀랐다. 나의 인생 과정이 왜 그랬는지 퍼즐 조각이 맞춰지니 이해되지 않던 것들이 이해되었다.

요즘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영화 ‘기생충’의 대사 중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라는 대사가 생각난다. 하나님은 이미 다 계획을 갖고 계신다. 이미 완성된 퍼즐 그림을 알고 계신다. 다만 그것을 조각내어 우리에게 던져주시는 것이다. 완성해보라고. 퍼즐 맞추기는 조각이 많을수록 어렵고 힘들다. 몇 번 뒤집어엎어야 한다. 그러나 과정은 있으나 결과는 아름다운 그림이 아닌가.

지금 우리의 모습은 하나님이 이미 그려놓으신 모습으로 가는 과정이다.

이은성

To Be Succeeded

순종

약국에서 예쁜 모양의 입술보호제를 발견한 딸아이가 갖고 싶다고 한다. 옆에 있던 아들도 로봇이 달린 같은 제품을 갖고 싶어 하는 눈치다. “넌 예전에 썼던 거 있으니까 확인해보고 사자.”고 하니 잠깐 실망하는 듯하더니 “알겠어요!” 한다. 이어서 “엄마는 저희랑 하는 약속 잘 지키시잖아요. 기다릴 수 있어요.” 하는데, ‘아, 이 아이가 엄마를 믿는구나.’ 라고 생각하니 기뻤다.

어린아이의 작은 순종에도 부모 마음이 이처럼 기쁜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 믿음을 보이고 순종할 때 하나님은 얼마나 기쁘실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본토, 친척, 아비를 떠나는 것이 그러했고, 100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말씀에 순종한 것이 그러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람들의 비웃음과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무려 100여 년 동안 방주를 지은 노아와 구해주지 않으실지라도 우상을 섬기지 아니 하리라며 풀무불을 택한 다니엘의 세 친구는 하나님의 자랑이 되었다. 구름떼같이 많은 믿음의 선친들은 환경도, 사람도, 심지어 자기 자신의 능과 지식, 감정까지도 철저히 하나님 말씀 아래에 두었기에 기꺼이 순종할 수 있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 우리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 삶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을 주로 인정할 때 순종할 수 있고, 순종할 때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경험하게 되며, 그리할 때 우리의 믿음은 날로 자라난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대하시는 것은 우리가 어린아이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요,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는 것이다(엡4:13).

나의 원대로 하는 것이 좋은 듯하나 결국 하나님이 옳으시다는 것을 우리는 삶 가운데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통해 확인하곤 한다. 그럼으로써 완전하신 하나님 앞에,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는 그분의 말씀에 복종하고 그분의 뒤를 따라가는 것을 배워간다. 아들이신 예수도 순종하심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신 것처럼(히5:8~9), 죄인 되었던 우리에게도 베풀어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아들의 온전함에 나아가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아버지의 기쁨이 나의 기쁨임을 고백하며, 아버지가 뜻하신 곳에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순종하여 주님과 함께 걷는 삶이 되기를 소망한다.

이국진 사모

생명의 말씀

토끼와 거북이

교회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차량운행 구간에 삼거리가 있다. 신호체계를 잘 알기에 신호가 바뀌면 쏜살같이 1등으로 출발할 때가 있다. 그러면 쾌감을 느낄 뿐 아니라 그다음 구간부터 순차적으로 신호들이 열려 가속을 내어 달리는 구간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다음 신호변경에 시간차가 생겼다. 서둘러 출발해봐야 소용없도록 만든 것이다. 신호의 템포가 맞지 않으니 속도를 늦춰 어정쩡하게 달리다 말다를 반복하고, 나보다 한 박자 늦게 출발한 차들에게 도리어 추월당한다. 그때마다 “빠른 경주자들이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전9:11)라는 말씀이 떠오른다. 빨리 출발해서 시간을 단축한 듯 했으나 오히려 가속할 수 없는 중간 구간이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 빠른 출발보다 제 때에 출발해야 오히려 가속도를 붙여 달릴 수가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빨리빨리’라는 경쟁문화에 익숙하여 달리다가 때로는 나 자신을 잊어버린다. 다 자기에게 맞는 템포와 때가 있는데 말이다. 남과 비교하며 조바심 낼 것 없이 자기 템포를 충실히 유지하면 된다. 그러면 곧 가속도의 시간이 온다. ‘신속 정확’이 아니라 ‘정확 신속’이다. 느려 보여도 정확한 한 템포 한 템포들이 축적되면 결국 신속해진다. 나에게 맞는 템포를 충실히 따르다 보면 결국 선착하게 된다. 남들보다 빨리 출발했으나 중간 과정이 의미가 없다면, 서두른 것이 독이 되기도 한다. 토끼가 왜 거북이에게 추월당했는지 깊이 유념할 일이다.

연말 방송연예대상에서 어느 신인상 2관왕 수상자의 소감이 인상 깊게 회자되어 옮겨본다. “나는 느린 사람이다. 말도 느리고 행동도 느리고 삼수도 했고 아나운서 준비도 29살이 다 돼서 준비를 시작했다. 그런 나에게 올 한해 너무나 빠른 속도로 많은 분께서 사랑을 주셔서 감개무량했다. 하지만 나랑은 어울리지 않는 속도다. 빠른 속도에 취하지 않고, 나의 속도, 나에게 어울리는 속도를 잘 찾아서 한 걸음 한 걸음 나가겠다.”

그렇다! 남들보다 한 템포 느려도 괜찮다. 나만의 템포, 나를 향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자! 그 시간은 버려진 시간이 아니라, 목적지를 향해 가속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다.

송직화 목사

빛이 되리라

위험 감수

얼마 전, ‘위험 감수’에 대해 기가 막힌 정의를 내린 멋진 글을 보았다. 인도의 1세대 글로벌 사업가이자 2009년 타임지 선정 세계 가장 영향력 있는 100대 인물에 뽑힌 로니 스크류밸라의 글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위험 감수란 남들이 안전한 길을 선택할 때 자신은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돌진하는 것이고, 예상되는 손실보다 보상에 더 큰 가치를 두는 것이다.’

이 글대로라면, 자신은 남들과는 다르게 안전한 길을 따라가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남들이 안주할 때, 자신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돌진했다는 말이다. 그의 책을 읽어보면, 과연 그의 삶은 평탄치 않았다. 수차례 실패를 경험하고 바닥부터 다시 일어선 경우도 여러 차례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성공하였고, 마침내 부와 명성도 얻게 된다.

안전한 길에서 벗어나 예측이 불가능한 미지의 영역으로 나아가는 발걸음 앞에는 늘 두려움과 마주한다. 그러나 이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하면 그 길로 나아갈 수 없고, 이 두려움 앞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겁을 먹고 안전한 길로 회귀한다. 결국 성공은 이 두려움을 이겨내느냐, 이겨내지 못하느냐에 달려있다.

지금 우리 앞에 어떤 두려움과 마주하고 있는가? 내 한계를 시험하는 어떤 어려움이 앞을 가로막고 있는가? 두려움 앞에 무릎 꿇지 말고, 내 스스로를 이기고 넘어서기 위해 담대하게 한걸음씩 전진하자. 우리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우리를 돕는 하나님이 늘 우리와 동행하시고, 우리를 위해 기도하신다. 그분을 힘입어 두려움을 쫓아내고, 잃어버릴 수 있는 손실보다 더 큰 보상과 상급을 기대하며 돌진해보자.

지금 이 순간이 바로 우리에게 ‘위험 감수’가 필요한 정확한 그때이다.

장명훈 집사

jjoshua@hanmail.net

한라에 핀 샤론의 꽃

성실, 꿈을 이루는 재료

어쩜 ‘성실함’이라는 단어는 지금의 저성장 시대에서 매우 홀대받는 개념이 아닐까 싶다. 고도로 자본주의화 된 시스템이 장악하는 사회, 이기주의가 난무하는 사회에선 ‘열심히 해봤자 남 좋은 일 해주는 것’이 되고 개개인의 노력이나 성실함은 착취되거나 소진당할 뿐, 개인 차원의 노력보다 시스템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성실하다’란 말을 들었을 때 그 말이 칭찬이나 찬사라고 느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뭔가 계속 열심히 하는데 눈에 띄는 결과는 나오지 않고, 언제나 책을 끼고 살지만 공부를 특출하게 잘하는 것도 아닌 그저 평범하고 무난하기 그지없는 사람에게 측은지심으로 하는 표현이라 생각했다. 이렇듯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랫동안 뭔가를 열심히 해서 조금씩 쌓아가며 이뤄가는 것보다 어느 순간 느닷없이 얻어지는 것에 더 열광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도 어느 시대에나 인간은 개인적인 차원에서 더 나아지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었고, 어떤 일을 하든, 어떤 사람을 보든 간에 ‘성실’, ‘부지런함’, ‘노력’과 같은 단어에 가치를 크게 부여한다. 또한, 성공에 있어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여긴다. 이는 사소하고 평범한 현상에 숨어있는 성공의 비결을 찾아내고, 일상생활에서 그것들을 수백 번 반복하는 것만이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밑거름이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미국의 신경과학자 다니엘 레빈틴은 여러 차례 연구를 통해 각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을 찾아냈다. 모차르트, 파블로 피카소, 아인슈타인, 비틀스, 스티브 잡스 등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들은 성공을 위해 최소 1만 시간 이상을 투자했다는 사실이다. ‘지독한 연습벌레’, ‘빙속의 여제’라 불리는 이상화 선수는 일곱 살 때 처음으로 스케이트를 신기 시작하여 선수가 된 이후 매일 새벽 4시에 기상하여 하루 평균 8시간씩 15년을 연습한 시점에 2014 소치동계올림픽 여자 500m 종목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뤄냈다. 자그마치 그녀가 스케이트에 투자한 시간이 4만3천8백 시간이다.

반면, 타고 난 천재 음악가 모차르트와 그의 경쟁자인 노력형 음악가 살리에르의 대결에선 언제나 모차르트가 압승을 거두어 살리에르는 아무리 노력해도 천재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한다는 그 신화는 다양한 변주를 거치며 우리를 매료시켜왔다. 어느 정도는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그러나 특출한 능력은 없지만,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우리에게 허락된 단 하나의 재능이 있다. 바로 ‘성실’이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시편37:3). ‘성실’은 하나님의 성품이다.

성실하신 하나님은 성실한 사람을 높이 들어 사용하신다. 열왕기상 3장 6절을 보면, 다윗은 성실하고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모든 일을 행한 자라고 솔로몬이 고백하고 있다. 그렇다. 하나님은 다윗의 성실한 성격을 보시고 목동이었던 그를 왕으로 세우셨다. 모두가 잘 알고 있듯 다윗은 목동이었을 때도 성실했고, 왕이 됐을 때도 성실했다. 그뿐만 아니라 사울 왕에게 쫓겨 다닐 때도 성실했다. 다윗은 어떤 환경에서도 변함이 없었다. 바꿔 말하면 성실하지 못한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불성실하다는 것이며, 주변 환경은 물론 자신의 모습과 삶조차도 돌보지 않는 게으른 사람이라는 말이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높이 들어 올리시기는커녕 그에게서 떠나라고, 상종 자체도 하지 말라고 데살로니가후서 3장 6절에 말씀하셨다.

성실(誠實, Sincerity), 정성스럽고 참됨을 일컫는 말이다.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최선을 다한 하루를 보내면, 얼어붙은 연못 밑에서 소리 없이 흐르는 물처럼 남의 눈에 띄지는 않지만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봄날 그 빛을 발하듯, 우리의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쌓아간다면 어느새 꿈에 가까이 도달하는 2020년이 되지 않을까.

Dr. 권정미

jmgood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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