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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0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모두 일어나 빛을 발하라 (잠24:30~34)

1040호 · 2020-02-02

인간은 주어진 시간, 주어진 환경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누군가는 이것을 ‘인생의 자본금’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한계 때문에 주저앉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을 뛰어넘는 방법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부지런함이 그 답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과 두 달란트,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누가복음 19장에는 므나로 비유했지요. 주인이 종들에게 각각에게 자본금을 주고 떠났습니다. 그러자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마25:16) 다섯 달란트를 남겼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마25:17)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이 두 사람은 부지런히 장사를 해서 이익을 남겼으니 더 나은 환경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그것을 땅을 파고 묻어뒀습니다. 게으름 피운 거지요. 그런 그에게 주인은 ‘악하고 게으른 종을 어두운 곳으로 내어 쫓으라’고 합니다.

한 시대의 맥을 그은 사람들, 꼭짓점 인생을 사는 사람들, 믿음의 선친들이 자본금이 많아서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부지런했기에 환경을 뛰어넘어 성공한 것입니다.

‘근면(勤勉), 성실(誠實)’은 성공한 자들이, 성공한 회사가, 성공한 나라가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것입니다. 고리타분하다 할 수 있지만, 근면 성실이 성공의 밑거름임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선친들도 다 근면 성실로 일관하였기에 역경을 이겼고, 목적을 이뤘습니다. 도망자 신세로 돌베개를 베고 잤던 야곱이 수많은 소 떼와 양 떼를 이끌고 금의환향할 수 있었던 것은 부지런했기 때문입니다. 임금을 착취하고 딸을 미끼로 노동을 강요한 외삼촌 밑에서도 부지런이란 무기로 엄청난 부를 쌓았던 것입니다. 그는 그 과정을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이와 같이 낮에는 더위를 무릅쓰고 밤에는 추위를 당하며 눈붙일 겨를도 없이 지내었나이다”

(창31:40).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52일 만에 재건할 수 있었던 것은 부지런히 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이같이 역사하는데 무리의 절반은 동틀 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창을 잡았었으며 그때에 내가 또 백성에게 고하기를 사람마다 그 종자와 함께 예루살렘 안에서 잘찌니 밤에는 우리를 위하여 파수하겠고 낮에는 역사하리라”(느4:21~22).

사도 바울도 사역을 감당하기 위해 부지런을 떨었습니다. 사도행전 후반부를 보면 바울을 통해 복음이 전파되는 지역의 지명이 계속 나옵니다. 수리아, 에베소, 가이사랴, 갈라디아 등…. 그의 말을 들어봅시다.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살전2:9). 그런 그는 우리에게도 이렇게 말합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롬12:11).

저는 비범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 제가 세계 72개국에 복음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지만, 정말 부지런을 넘어 바지런했기에 가능했습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편안함을 거부했습니다. 저는 하루 4시간 이상 자본 적이 없습니다. 시간이 아까워서 하루 두 끼만 먹었습니다. 그 시간에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고, 기도하고, 성경을 팠더니 오늘에 이릅디다.

제가 70 평생을 살았지만 게으른 사람이 잘 살고, 성공하는 것을 못 봤습니다. 결과만이 과정을 대변하는 것 아닙니까? 부지런과 게으름은 빛과 어두움 같이 상반되는 것임을 성경은 여러 번 말씀합니다.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잠10:4), “부지런한 자의 손은 사람을 다스리게 되어도 게으른 자는 부림을 받느니라”(잠12:24), “게으른 자는 그 잡을 것도 사냥하지 아니하나니 사람의 부귀는 부지런한 것이니라”(잠12:27), “게으른 자는 마음으로 원하여도 얻지 못하나 부지런한 자의 마음은 풍족함을 얻느니라”(잠13:4), “네가 자기 사업에 근실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잠22:29)….

우리는 영·혼·육의 부지런을 떨어야 합니다. 먼저 영적인 부지런을 떨어야 합니다. 귀신들이 모여서 기독교인들을 실족시키는 방법에 대해 회의를 했습니다. 기독교인을 죽이자는 의견도, 감옥에 가두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채택된 방법은 이것입니다. 기독교인들에게 예수도 믿게 하고, 기도도 하고, 성경도 읽게 하고, 전도도 하게 하는데, 단 오늘은 힘드니까 내일부터 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내일부터 하지.’ 이렇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게으름은 마귀의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그것을 알기에 성경은 ‘항상 선을 좇으며, 항상 기뻐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한 것입니다(살전5:15~17). ‘항상’, ‘쉬지 말고’는 ‘부지런히’라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혼적으로도 부지런을 떨어야 합니다. 주경야독(晝耕夜讀), 형설지공(螢雪之功), 이런 말들은 어려움 가운데서도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한 자들을 대변합니다. 요즘 소위 ‘한가 문화’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조금 일하고, 많이 쉬겠다는 것입니다. 아닙니다. 일할 수 있을 때 일하고, 배울 수 있을 때 배워야 합니다.

‘부지런하다’는 것이 아침 일찍 일어나 설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손발이 아니라 머리를 부지런히 쓰는 것이 더욱 유익한데, 이것은 혼이 충족되어야 가능합니다. 어떤 사람은 쇳덩어리로 엿을 바꿔 먹고 말지만, 어떤 사람은 그것으로 낫이나 호미를 만들어 팔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것으로 바늘을 만들어 팔아 몇 십 배의 이익을 남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머리가 바삐 돌아가야 가능합니다.

그리고 육적으로도 부지런을 떨어야 합니다. 자기관리에 부지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요즘 병원 심방을 자주 가면서 느끼는 것인데,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가 병든 자입디다. 먹지도 못하고, 정신도 오락가락하고….

이 세상에서 가장 성공했다는 애플사의 스티브 잡스가 병들어서 말하기를 “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침대는 병원 침대, 즉 병상이다. 젊어서는 죽어라 돈 벌고, 병드니 죽어라고 돈 쓴다.”라고 했다는데, 백번 옳은 말입니다.

건강할 때 부지런히 운동하고, 보약도 건강할 때 부지런히 먹어 건강을 돌봐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육체이기 때문입니다. 육체가 있어야 영도 담을 수 있고, 혼도 담을 수 있습니다. 육체가 있어야 상급도 쌓을 수 있지요. 아브라함의 나이가 175세에 나이가 많아 기운이 진하매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갔고(창25:7), 이삭이 180세에(창35:29), 야곱은 기운이 진하여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다고 하였습니다(창49:33).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수명을 건강하게 다 살고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자동차는 부모가 사줄 수 있지만 관리는 내가 해야 하듯, 하나님이 주신 육체는 우리가 관리해야 합니다.

잠언 31장에 보면 현숙한 아내는 곧 부지런한 여인임을 말씀합니다. 부지런한 여인이 가정에 들어오면 남편은 물론이요 자식까지, 그의 식솔들까지 영화를 누리게 되나 게으른 여인이 집에 들어오면 가족은 물론이요, 가산(家産)까지 곤두박질치게 될 것입니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자가진단 해봅시다. 게으른 사람인지, 부지런한 사람인지 말입니다. 게으르면서 세상 탓, 부모 탓이나 하고 있지는 않은지, 지시해야 일하는 머슴사상을 가지고 있지 않은지, 매번 늦어 허둥대는 시간의 노예로 살고 있지는 않은지. 만일 그렇다면 그런 나와 싸워야 합니다. 누가복음 13장에 3년 동안 실과가 없는 무화과나무를 주인이 찍어버리려고 하자 과원지기가 말하길 부지런히 거름을 주고 기를 테니 말미를 달라고 간청합니다. 주님께, 사장에게, 주인에게 찍혀 버리기 전에 게으름을 떨치고 부지런을 떨어야 합니다.

성공은 편안함을 포기한 자의 몫입니다. 2020년, 우리 모두 일어나 빛을 발합시다. 할렐루야!

부지런한 자의 밭에는

잡초가 있을 수 없다

게으름은 악이요

인생의 독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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