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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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8호 목차 › 세상을 보는 창

응답의 도구

1038호 · 2020-01-19
청춘, 그 아름다운 이름

교회 신문에서 간증을 읽거나 아는 사람이 겪은 것, 혹은 모르는 사람의 간증을 건너들을 때마다 가슴이 뜨거워지곤 합니다. 뜨거워진 가슴 한구석에는 부러움도 있습니다. 특히 제가 많이 부러워하는 간증의 종류는 가장 필요한 것을 가장 필요한 때에 받았다는 간증입니다. 예를 들면, 쌀이 떨어져서 당장 오늘 저녁 가족들 먹일 밥도 지을 수 없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 눈물로 애통하며 기도하는 중에 밖으로 나가보라는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이 들려 바깥에 나가보니 대문 앞에 쌀 한 포대가 놓여 있었다는 간증. 밀린 기도처 월세를 낼 돈이 없어서 얼음장처럼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려서 열었더니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서있었고, 그가 말하길 어젯밤 꿈을 꾸었는데 하나님이 이곳에 드리라고 했다며 건넨 봉투에는 천 원도 틀리지 않고 정확히 밀린 월세만큼 들어있었다는 간증. 교회 건축의 잔금 날, 한참 부족한 재정 상태임에도 돈 많은 성도를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붙잡으며 죽으면 죽으리라는 심정으로 잔금을 치르러 가는 길에 뒤에서 누가 불러 뒤돌아보니, 어떤 성도 한 분이 급히 감사할 일이 생겨서 헌금을 드린다며 전해주었는데 그것이 딱 잔금의 부족한 금액이었다는 간증. 가장 필요한 것을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게, 너무 늦지도 너무 이르지도 않게, 정확히 주시는 하나님의 응답은 매번 들어도 놀랍습니다.

하나님만 믿고 의지하던 마음도 마지막 쌀 한 톨까지 떨어지고 나면 원망으로 바뀌기 쉽습니다. 잔금 전날까지 애통하다가도 잔금 당일이 되었는데도 아무런 응답이 없으면 좌절하게 됩니다. 절박함의 수위가 발끝에서 무릎, 어깨를 넘어 머리까지 잠겨오면 더 이상 희망이 보이지 않아 포기하게 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하나님을 붙잡은 사람들의 굳건한 믿음을 보면 탄복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그 순간 이루어지죠. 어린 시절, 물질로 어려웠던 적이 많았던지라 이와 같은 간증을 들을 때면 놀랍고 부럽고 위대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예배를 드리는 중에 새롭게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하나님께 응답받은 분들만 복되다고 생각했었는데요, 하나님의 귀한 도구가 되어 절박한 분들께 기도의 응답을 전한 이름 모를 누군가도 정말 복 받은 분들이구나, 하고 깨달아졌습니다. 힘겨운 가정에 쌀 한 포대를 몰래 놓고 간 누군가. 하나님의 꿈을 무시하지 않고 전혀 모르는 기도처에 문을 두드려 선뜻 귀한 물질을 건넨 누군가. 내일도 내일모레도 아닌 오늘 딱 그 순간에 감사헌금을 드린 누군가. 바로 하나님의 응답을 전한 사람들. 그 사람들의 손길은 얼마나 놀랍고 감사하고 위대한지요.

예전에는 하나님께 응답해달라는 기도가 대부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새는 주님의 도움이 필요한 어떤 이에게 주님의 응답을 전하는 손길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대문 앞에 쌀 한 포대기를 놓고 가는 손길, 목마른 사람에게 물 한 컵을 건네는 손길, 물질이 갈급한 곳에 보탬이 되는 손길이 나의 손이 되게 해달라고 말이죠.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계획 속에 내가 있다는 건 얼마나 감사하고 복된 일인지요.

2020년에는 하나님께 응답받는 자녀를 넘어, 하나님이 믿고 쓸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의 응답을 전하는 귀한 도구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신은혜

dopal0203@naver.com

부르심의 소망

중보기도자

하루의 십일조를 기도로 드리겠다고 결단하고, 매일 세 시간씩 기도하기를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입니다.

기도하던 중에 총회장 목사님을 만나는 상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총회장 목사님은 제게 물으셨습니다. “하루에 기도를 몇 시간 하지?” 그 순간 저는 어깨를 한껏 세우고 당당하고 자신 있게 ‘세 시간’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제 얼굴은 ‘저 잘하고 있지요? 어서 칭찬해주세요.’라는 표정으로 상기되었습니다. 목사님은 “그래? 그럼 한 시간 더 해!”라고 말씀하셨고, 저는 눈을 번쩍 떴습니다. 상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었습니다. 세 시간도 너무 힘든데 네 시간이라니…. 제가 잘못들은 거라 생각하고 얼버무리려 하자, 마음이 불안해졌습니다. 그래서 저는 할 수 없이 네 시간씩 기도하게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를 말씀해주셨습니다.

‘나는 너를 중보기도자로 불렀다.’고 하시며 제 기도를 많은 사람들을 위해 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무겁고 막중한 임무라 부담도 되었지만, 각 사람의 사정을 알고 있는 성령님을 의지하여 방언으로 기도하며(고전2:10~11), 그렇게 저는 중보기도자가 되었습니다.

중보기도자로서 제 특기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영적 싸움입니다. 지쳐있을 당사자에게 보호막을 씌워주고 그 앞에 서서 제가 대신 악의 영들과 싸우는 것입니다. 당사자가 다시 기운을 차리고 이길 때까지 말입니다.

다른 하나는, 당사자가 평상시 하나님께 잘했던 일을 제가 대신 아룀으로 하나님으로 기억나시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게 관찰력과 기억력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감동받으실 만한 일들을 보거나 듣게 하십니다. 저는 그것들을 기억하고 있다가 그 당사자에게 기도가 필요한 순간이 오면 그 일들을 하나님께 상기시켜드리는 기도를 합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순종하며 보내온 시간이 벌써 5년이 되어갑니다.

설을 3주 앞둔 월요일, 신문에 글 쓸 차례가 되었다는 국장님의 연락이 저에게는, 이번 설에도 우상과 처절한 싸움을 하는 성도님들을 위해 중보기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들렸습니다.

거대한 영적 전쟁을 앞두고, 결코 가볍지 않은 거룩한 부담감을 안고, 처음 저를 중보기도자로 부르신 하나님의 음성을 떠올리며 이 글을 씁니다.

엘리야는 혼자서 우상을 섬기는 450명의 바알 선지자들 앞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이고 이들을 칼로 쳐 죽였습니다. 그러나 이세벨의 보복을 경고한 사자를 만난 후 혼자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도망쳤습니다. 그런 엘리야에게 하나님께서는 바알에게 무릎 꿇지도 입을 맞추지도 아니한 자 칠천 인을 남겨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왕상18:20~19:18). 저는 이들이 엘리야를 위한 중보기도자였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번 설에도 엘리야처럼 홀로 우상과 싸울 성도님들을 위해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칠천 인의 중보기도자들을 예비하셨으리라 확신합니다. 그중에 한 명인 저는 3주 동안 제 몫을 다해 중보기도 할 것입니다. 제 기도가 튼튼한 갑옷이 되어 성도님들의 마음을 보호해주기를, 제 기도가 엘리사의 불말과 불병거(왕하6:17)가 되어 성도님들을 지켜드릴 수 있기를 간절히 구할 것입니다.

지금 치르고 있는 희생은 장차 올 영광과 족히 비교될 수 없을 것입니다(롬8:18). 저는 그 희생을 하나님 앞에 또 한 번 아뢰며 대한민국을 위해 중보기도하겠습니다.

박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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