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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8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해산의 수고를 아끼지 말라(갈4:19~20)

1038호 · 2020-01-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음성을 변하려 함은 너희를 대하여 의심이 있음이라”(갈4:19~20).

이것은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한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다시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복음으로 잉태하여 낳는 첫 번째 해산의 수고를 했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4:15).

사도 바울은 복음의 불모지였던 갈라디아, 에베소, 빌립보, 골로새, 그 밖의 아시아 지역과 유럽 선교의 교두보였던 마케도니아 지역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기까지 해산의 수고를 이미 겪었습니다. 그 해산의 고통이 얼마나 격하고 심했는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이 되었도다”(고전4:11~13)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이 해산의 수고를 다시 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구원받고 거듭난 성도들의 마음과 인격과 영혼과 삶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새겨지기까지’ 그들을 양육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에베소서 4장 13절에 표현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라는 말과 일치합니다.

출산하는 고통은 대단한 거지요. 옛 어른들은 아이를 낳으러 갈 때 댓돌 위의 신발을 다시 보고 들어갔다고 합니다. ‘살아서 저 신발을 다시 신을 수 있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른들은 이런 말도 합니다. “그래도 애기가 뱃속에 있을 때가 편하지. 나와 봐라.” 낳고 나면 더 큰 수고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게 바로 다시 하는 해산의 수고입니다. 자식을 길러본 분들은 잘 알 겁니다. 사람 하나 만드는 게 얼마나 힘든지 말입니다. 사람다운 사람, 사람 구실하는 사람을 만들려면 엄청난 인내와 희생이 따릅니다. 그래서 제가 누구나 부모는 될 수 있지만, 부모다운 부모가 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영적 자식을 낳는 일도 동일합니다. 안 믿는 자를 교회에 한 번 데리고 가는 것도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닙니다. 정말 해산의 고통이 따릅니다. 그러나 교회에 왔다고 바로 성도가 됩니까? 아닙니다. 젖 먹이고, 이유식 먹이고, 아장아장 걸을 때 넘어지지 않도록 보살펴야 하고, 미운 일곱도 지나야 합니다. 사춘기도 겪어야 하고…. 간 쓸개 다 빼놓고 사랑과 진리로 훈육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언제까지요? 그들이 성도다운 성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다시 하는 해산의 고통’이라고 너무 잘 표현했습니다.

문제아나 패륜아들은 그들이 타고난 심성이 나빠서라기보다는 부모들이 제대로 양육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낳기만 했지 제2의 해산의 수고를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적 자식도 낳아놓고 돌보지 않는다면 어찌 될까요? 문제아는 없습니다. 제2의 해산의 수고를 포기한 문제의 부모가 있을 뿐입니다.

저는 지금도 철산리에서부터 저를 따라온 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제가 직접 찾아가지 못하니 꿈속에 찾아가 그들을 인도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제가 여러분을 정말 해산의 수고로 낳았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제게 한 말 되하고 되한다고 하는데 제가 왜 그러겠습니까? 행여 잘못된 길로 갈까 봐, 행여 다치고 아플까 봐, 행여 넘어질까 봐 아비의 심정으로 말하다보니 그런 겁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으라고, 입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일그러트릴까 봐 그러는 겁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시며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낳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 하셨다고 그 후로 우리에게서 손을 놓으셨습니까? ‘이제 알아서 커라’ 그러셨습니까?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당신의 이름으로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셔서 여전히 우리를 지키시고, 가르치시며, 인도해주고 계십니다. 그뿐 아니라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계속 기도하고 계십니다.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8:34).

여러분, 공든 탑도 무너집디다. 계속 공들이지 않으면 무너지고 맙디다. 우리의 영도 계속 공들이지 않으면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칠 수 있습니다(갈3:3).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 5장에 ‘계속’, ‘항상’ 기도하고, 선을 좇고, 성령 충만함을 입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영적 수고가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형상이 나타날 때까지, 온전한 크리스천이 될 때까지 말입니다.

영적인 것만 그런 게 아닙니다. 만사가 다 그렇습니다. 연초가 되면 많은 계획을 세웁니다. 그중 하나가 다이어트일 겁니다. ‘올해는 살 좀 빼보리라, 올해는 배에 왕(王)자를 만들어보리라’ 작정합니다. 그래서 굶고 운동하고 심지어 약을 먹으면서 살을 뺍니다. 지방을 빼는 해산의 고통이지요. 그래서 성공했는데 문제는 여기부터입니다. 목표한 체중까지 뺐다고 거기서 멈추면 바로 요요가 와서 이전보다 더 찝니다. 그래서 다이어트는 빼고 나서부터가 더욱 애를 써야 하는 겁니다. 제2의 해산의 수고가 수반되어야 완성단계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가끔 안수로 병이 나은 자들 중에 다시 병이 들어 찾아오는 경우를 봅니다. 왜 그럴까요? 처음 병에 걸렸을 때는 병 낫기 위해 금식도 하고 기도를 많이 합니다. 그래서 안수를 통해 병이 낫습니다. 문제는 낫고 나면 기도 안 한다는 겁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더 센 일곱 귀신이 들어와 전보다 못하게 되는 겁니다(마12:45).

가정다운 가정을 꾸리는 것도, 교회다운 교회를 만든 것도, 기업다운 기업을 만든 것도, 국가다운 국가를 만드는 것도 해산의 수고로 비유될 만한 수고가 따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혼하게 되고, 교회가 시끄럽고, 기업이 도산하게 되고, 국가의 존립이 위태롭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목표를 정해놓고, 혹은 무슨 일을 시작해놓고 어느 정도 안정되면 안일해집니다. 그것은 마치 비행기가 이륙하기 위해서 최고의 속도로 달리다가 이륙 후에는 엔진을 꺼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럼 비행기가 추락하고 말지요. 대학에 수석 입학한 자들이 수석으로 졸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원하는 대학에, 그것도 수석으로 입학하고 나서는 손을 놓아버렸기 때문입니다. 아이만 낳아놓고 안 기른 겁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살전5:3).

여러분, 성공은 편안하기를 포기한 자들의 몫입니다. 또한 첫사랑을 잃지 않는 자들이 성공의 주인이 됩니다. 성공하고 싶습니까? 올해는 꼭 목표를 이루고 싶습니까? 그러려면 출산하는 고통도 이겨내야 하고, 낳은 후 기르는 수고도 마다하지 말아야 합니다. 게으름을 버리고, 부지런히 수고하면 지금은 비록 새우잠을 자더라도 고래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7:13~14). 할렐루야!

성공하기 원하면

편안함을 포기하라

눈물로 씨를 뿌려야

실한 열매를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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