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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7호 목차 › 성도들의 간증

This is the Church(이것이 교회다)!

1037호 · 2020-01-12

예수중심교회는 내게 교회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신학교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타 교단 신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바로 전도사 사역을 나갔고, 그것으로 종으로 가는 길이 탄탄대로로 열리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내가 꿈꾸며 펼치려던 종으로서의 포부는 그리 마음먹은 대로 쉽게 펼쳐지지 않았습니다. 내가 공부했던 지식과 현실 사이에는 쉽게 가늠할 수 없는 분명한 거리가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한동안 내가 가야할 길에서 더 이상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멈칫거리고 있던 중 우여곡절 끝에 예수중심교회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 만남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이 교회에 와서 첫 예배를 드렸을 때 그것은 내게 정말로 신선한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왜냐하면 ‘어? 이런 교회가 있었나?’ 하는 감정이 내 속을 파고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야릇한 감정이 감동으로 바뀌는 순간, ‘그래…, 내가 알아내자. 다른 사람들의 말은 그 사람들 생각이고 내가 확인하자’는 생각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알고 있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그 무언가가 이 교회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나는 조금 흥분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 교회에서만 배울 수 있는 진짜 실천신학이었습니다. 내가 주의 종으로서 꼭 알아야 할 그 살아있는 지식, 그것이 내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나는 내가 타 교단 신학교에서 4년 동안 학부과정에서 배운 것보다 단 1년간 이 교회에서 배운 지식이 훨씬 더 컸다는 것에 얼마나 큰 감사가 왔는지 모릅니다. 목사님은 성도들에게는 물론이요, 언젠가는 종의 사역을 본격적으로 수행해나가야 할 내게 진짜 필요한 영양소를 공급해주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예수중심교회로 둥지를 옮긴 지 만 2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기는 내게 교회가 아니라 내가 더 공부해야할 신학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내 발로 이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렸다는 것이 내게는 기적이었습니다. 타 교단 신학생 시절,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이단퇴치운동을 하고 있었고, 그 이단의 첫째 되는 경계 1호 교회가 바로 이 교회였습니다. 왜냐하면 학교에서 그렇게 배웠으니까요.

하나님은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방법으로 나를 이곳에 오게 하셨습니다. 당시 내게서 기타(Guitar)를 배우는 수강생들이 꽤 있었는데 내가 거래하는 악기점에서 어느 날 연락이 왔습니다. 교회 전도사님이라는 여자 분이 있는데 ‘찬양기타를 좀 배울 수 있을까’ 해서 나를 소개했다는 것입니다. 나도 한때 전도사 사역을 했던 터라 반가움에 선뜻 승낙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그 전도사님이 다니시는 교회가 예수중심교회라지 뭡니까!

‘오, 주여 아직도 젊은 분이 왜 하필 ㅠㅠ, 그래, 까짓거 찬양기타라니까 우선은 가르치자. 그리고 기회를 봐서 그 분을 회유시켜 정통교단으로 빼내오자.’

그렇게 시간이 좀 흘러갔습니다. 그러다보니 명색이 그래도 내 제자인데 미안해서라도 한번은 그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려줘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놈의 정 때문에 말입니다. 그래서 그 전도사님에게 그 교회 예배에 한번 참석하겠다고 했더니 ‘그럼 우선 오전에는 현재 다니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오후에 우리 예수중심교회를 오시는 게 어떻겠냐’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게 좋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그게 내 모든 걸 유턴(U-Turn)시키는 길인 줄 어찌 알았겠습니까. 하나님의 방법은 정말 신묘막측 그 자체였습니다. ‘이단퇴치운동을 하던 내가 이단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린다?’ 이건 정말 사건중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렇게 처음 이 교회에 와서 첫 예배를 드리던 순간, 나는 삽시간에 무너졌습니다. 찬양이 시작되자마자 내 두 눈에선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져 내렸습니다. 나는 이 눈물의 의미를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찬양사역만 17년 이상을 해왔었는데 그게 이미 한 8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찬양은 내게 산소호흡기 같은 것이었습니다. 내가 처음 교회에 발을 들여놓은 것도(물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지만) 찬양이 좋아서였고, 찬양 드릴 때 나는 주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벅찬 심장의 박동으로 오래전에 감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찬양 드릴 때 그렇게 많이 울었고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만남으로 그렇게 좋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차저차한 이유로 오랫동안 찬양사역을 중단했었는데 이 교회에 와서 오랫동안 못 뵈었던 주님을 만나는 감동에 펑펑 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그 후, 전에 다니던 교회의 집사님을 만났습니다. 그 집사님이 대뜸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내게 말합니다. “아니, 우짜다가 그래 이단 교회로 가셨대유?”

내가 뭐라 했겠습니까?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선 전혀 준비하지 못했던 말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이단? 집사님, 집사님이 직접 가서 확인해봤어? 그거 그렇게 함부로 얘기하는 거 아냐? 한번 확인해봐. 그 교회가 이단이라고?” 그 집사님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내가 전도사님을 말로 우찌 이길까나….”

하나만 더 얘기하렵니다. 내가 그동안 여러 교회를 전전하며 사역을 해왔지만 내겐 늘 갈급한 그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마셔도, 마셔도 알 수 없는 어떤 타는 목마름이랄까요? 그것은 다름 아닌 바로 목자를 만나지 못했다는 안타까움이었습니다. ‘목사님들은 이렇게 많은데 왜 목자는 없는 걸까?’ 이게 나의 목마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에 와서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은 우리 목사님, 저분이야말로 진정한 목자가 아닐까?’ 솔직히 그렇게 믿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러던 나의 그 기대를 완전히 충족시켜 준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2019년 12월 22일 주일예배였습니다. 목사님의 성역 35년 영상으로 보다가 ‘그래, 이 분은 진정한 목자, 바로 그분이다!’ 나는 내 무릎을 탁 치며 흥분했습니다. 왜 그랬냐고요? 자, 보세요. 아프리카에서 억수같이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세 시간동안이나 그 비를 다 맞아 가시면서도 끝까지 맡은바 책무를 다하시는 종, 그리고 또 하나는 시카고 목회자 세미나 중 호통을 치시며 그들의 안일한 정신자세를 고치시려는 장면을 보면서 나는 혼잣말로 주님께 고했습니다. ‘주님, 저분은 진짜 목자시네요, 맞죠? 아니 이 땅 어디에 저런 목자가 있습니까? 비가 저렇게 오면 백이면 백 다 비 때문에 못하니 연기하자 할 테고, 그런다고 뭐라 할 사람 아무도 없을 텐데 저 비를 세 시간이나 맞으면서도 흐트러짐 없는 저 자세. 오 주여, 누가 저리할 수 있을까요? 또 그 먼데까지 가셔서 저기 모인 분들도 목회자들인데 뭐 그리 혼낼 것까지는 안 하셔도 될 듯한데 누가 저리할 수 있을까요. 맞습니다, 맞습니다. 저분은 진짜 목자이십니다!’ 나는 드디어 목자를 만났습니다. 그 영상을 보면서 내 흥분은 그날 밤 잠자리에 들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예수중심교회는 내게 찬양을 찾아준 교회, 그리고 무엇보다 소중한 말씀의 진짜 영양소가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 진짜교회, 그리고 진짜 목자를 만날 수 있는 교회, 그래서 나는 이제 당당히 얘기합니다.

“This is the Church! This is a real Church! 이것이 교회다! 이것이 진정한 교회다!”

예수중심교인이 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전주 혁신예수중심교회

전요한 준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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