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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6호 목차 › Text 주일설교

복을 받으려면 불신의 고리를 끊어라

1036호 · 2020-01-05

몇 해 전인가, 저에게 주일마다 밥을 해주는 권사님이 심장병으로 쓰러져 중환자실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때 저는 지방 집회에 가는 중이었지만 이 소식을 듣고는 먼저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살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저는 중환자실에서 그 권사님에게 안수를 하며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 딸을 살려주십시오. 이 딸이 종을 위해 수고한 것을 주님이 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꼭 살려주셔야만 합니다.” 그렇게 간곡하게 기도를 드렸더니 하나님이 그 딸을 살려주셔서 지금까지도 저에게 밥을 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기도를 많이 합니다. 이번에 이현구 장로가 쓰러졌을 때도 저는 병원에 찾아가서 이렇게 절박한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이 장로가 교회를 위해 물질을 쓰고 애쓴 것을 기억하시고, 예전처럼 건강하게 해주세요.” 그랬더니 하나님이 마비된 몸을 정상으로 돌려주셨습니다.

또 우리 어머니가 나이가 많아 회복이 불가하다고 의사들이 말했을 때도 저는 “하나님, 우리 어머니가 비록 늦게 믿기는 했지만, 아들 셋과 딸 하나를 주의 종으로 바친 것을 기억하시고 부서진 다리뼈가 다 붙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제 기도를 들어주셔서 지금은 의사도 놀랄 만큼 회복되어 식사도 잘 하십니다.

히스기야도 이런 기도를 한 적이 있지요. 히스기야가 그의 재위 14년이 되었을 때 밖으로는 산헤립이 침공했고, 자신은 죽을병에 걸렸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사38:1)고 통고합니다. 벼랑 끝에 선 히스기야는 이 말을 듣자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합니다.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여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추억하옵소서”(사38:3). 이에 여호와께서 선지자 이사야가 궁궐을 나가기도 전에 마음을 돌이키사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 오년을 더하고 너와 이 성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겠고 내가 또 이 성을 보호하리라”(사38:5~6)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증표로 해 그림자가 뒤로 십도 물러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에 대해 무엇을 추억하셨을까요? 히스기야는 즉위하자 곧 종교개혁을 단행하여 산당을 비롯한 모든 우상을 제거했습니다(왕하18:1~7). 그는 아하스에 의해 닫혀 있던 성전의 문을 열고 이것을 수리했고, 또 유월절을 부활시켰습니다. 또 그는 모세의 놋뱀이 우상 예배의 대상이 되어 있음을 알고 그것도 제거했습니다. 히스기야는 주의 목전에 선히 행한 자신을 추억해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의 공적을 내세운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의 계명 안에 행하였음을 하나님께 진심으로 아뢰고 하나님의 은총을 기대한 것입니다.

여러분, 고넬료의 구제와 그의 기도를 기억하고 계신 하나님(행10:4), 과부 두렙돈을 보신 하나님(눅21:2), 귀한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여인을 기억하신 하나님(마26:13)은 우리도 다 보고 계실 뿐 아니라 우리의 행위를 모두 기억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시139:1~4)라는 말씀대로 하나님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던 나다니엘의 마음까지 읽으신 하나님이 아니십니까?

창세기 22장에 보면 하나님으로 하여금 추억하고, 하나님께 기억된바 된 사람이 나옵니다.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이 백세에 낳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한 사건입니다. 아브라함은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을 받고도 반문하거나 지체하지 않고 아들 이삭만을 데리고 모리아산으로 갑니다. 거기서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칼을 들었을 때 하나님이 황급히 아브라함을 불러 저지시키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창22:16~18).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확실히 기억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는데, 아브라함은 이 중차대한 일을 아내와 의논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 그랬는가 하면, 아내 사라는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소유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아내와 의논했더라면 아브라함은 절대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에 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역사를 일으킬 때면 가장 가까운 사람이 방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10:36)고 하신 것입니다. 왜냐? 믿음은 모든 자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살후3:2). 또한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26~27)고도 말씀하셨는데, 이는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를 원수로 생각하라는 말이 아니라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믿음의 결단이 필요할 때는 불신하는 자들과의 고리를 끊어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믿음의 역사를 일으키게 되고,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악한 마귀는 가장 사랑하는 사람, 가장 가까운 사람을 들어 믿음의 역사를 막습니다. 그들은 타당한 말로, 위로와 걱정과 사랑스러운 말로 믿음의 역사를 막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한나가 남편 엘가나의 위로를 받고 안주했더라면 사무엘이란 아들을 얻는 믿음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 역시도 걱정하는 가족들의 말을 들었더라면, 어머니의 연세를 고려하고 정에 연연했더라면 믿음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억된바 된 자들은 믿음에 타협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아내나 남편을, 부모와 자식을, 상사를 기쁘게 한 것이 아니라 오직 푯대를 향하여 질주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런저런 이유로 타협하는 자들에게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마10:37).

여러분,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타협하지 않는 믿음, 침륜에 빠지지 않는 믿음, 불신하는 자들과의 고리를 끊는 단호한 믿음을 기억하십니다. 그래서 그들이 기도할 때에 “그래, 그때 네가 애쓴 것 다 기억한단다. 너의 소원을 이뤄줄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2020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올해 하나님이 기억하실 수 있는, 기뻐하실 수 있는 일을 해봅시다. 믿음의 결단이 필요한 순간에 흔들리지 맙시다. 물론 그때 주위 사람들이나 가족들이 만류하겠지요.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고, ‘나이를 생각하라’고, ‘애들 생각하라’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그때 불신하는 자들과의 고리를 끊고 믿음으로 올곧게 나가면 하나님이 당신의 믿음을 기뻐하사 기억하실 것이고, 당신에게 무한한 축복을 내리실 것입니다. 당신으로 인해 불신하던 자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들도 이 축복에 합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어머니를 보고 믿음이 없던 우리 형제들이 하나님을 신뢰하게 된 것처럼 말입니다.

거듭 말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타협이 있지만 믿음만은 타협이 없습니다. 할렐루야!

신앙은 결코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좁은 길이

가장 편한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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