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흔적을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편모슬하에서 어머니의 학대와 온갖 어려움과 역경 속에서 청소년기를 보냈었고, 1989년 우종분 님의 인도로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그때의 저는 첫 아이를 임신 중이었고, 술과 외박은 기본이고 온갖 것으로 속 썩이는 남편과 힘든 결혼 생활을 이어가던 때였습니다. 둘째 아이를 출산한 후에도 산후조리를 교회 집사님 댁에서 그분들의 보살핌과 사랑 속에서 했습니다. 그 후로도 여기에 차마 쓸 수 없는 남편의 못된 행각들이 계속되어 저는 이혼을 수십 번, 수백 번 생각했으나 교회 집사님 두 분의 기도와 보살핌이 있어 이혼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나의 삶은 포기하고 오직 아이들을 위해서만 살기로 작정했습니다. 아버지 없이 자라고 힘겹게 살아온 나의 삶이 아이들에게 되풀이되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나만 참으면 저 아이들이 눈에 눈물 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며 아이들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겠노라고 결심했습니다. 특히 우종분 권사님께서 저에게 ‘너는 이혼하면 네 삶은 좀 편할지 몰라도 네 아이들 설희와 영록이는 어떻게 되겠냐?’고 하시며, 아이들은 한쪽 부모의 사람이 아닌 엄마 아빠의 사랑 속에서 성장해야 한다고 저를 만류하셨습니다. 이혼하지 않겠다는 결심은 했지만 내 삶은 없었고 오직 아이들이 성년이 될 때까지를 바라며 기도하며 인내하였습니다. 특히 전 남편의 술취함과 여러 정황상 집에 들어갈 수 없을 때마다 우종분 권사님 집에 가서 아이들과 함께 잠을 자고 같이 울며 기도했습니다. 권사님은 아픈 저희들을 보살펴주셨습니다.
우리 아이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권사님의 기도와 권면 속에서 모두 건강하게 성장하여 사회의 일원으로 자립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늘 어떻게 하면 권사님의 사랑과 은혜에 보답할까 기도하며 내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권사님을 섬기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작년 가을쯤 권사님을 뵈었는데 몹시 야위고 힘들어 보였습니다. 어디 아프냐고 여쭤보니 신장이 안 좋았는데 심해진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 인터넷에서 신장기증에 대해 검색한 결과 타인도 이식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되었고, 권사님께 걱정마시고 투석보다 이식이 나으니 투석 받지 말고 내가 신장을 드릴 테니 언제든지 그때가 되면 나에게 먼저 말해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올여름부터 부쩍 살이 빠진(10kg이상) 마르신 권사님을 뵈었고, 밥맛도 없고 소화가 안 돼 설사를 하고 죽만 드시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권사님께 여쭤보니 다니던 병원에서 빨리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하셨다기에 제가 빨리 삼성병원에 예약하라고 말씀드려 9월 5일 제가 모시고 가서 진료받았고, 그날 우리 두 사람의 혈액을 채취하였고, 그후 이식이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 사실이 너무도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항상 그분에게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받기만 하였는데 제가 그분을 위해서 작은 무언가라도 드릴 수 있다는 사실에 기쁘고 감사했습니다. 그분의 사랑에 조금이나마 보답할 수 있어서 너무도 기쁘고 감사합니다. 두려운 마음은 하나도 없고 오직 제 마음은 하루빨리 이식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져서 권사님의 건강이 회복되고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 서로 기도하며 의지하며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면서 천국가는 그날까지 섬기며 그분과 함께 살아가고 싶을 뿐입니다. 부족한 제가 예수님의 흔적을 갖게 해주셔서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며칠 후면 수술에 들어갑니다. 부디 수술이 잘 되기를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